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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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p.57~p.58)


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  (p.163~p.164)


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  (p.291)


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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