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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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마다 종이 영수증을 꾸준히 받다 보면 소비 행위가 한결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하루에도 주머니 가득 쌓이는 영수증 더미를 보면서 아연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종이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소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보겠다는 구차한 명목이 아니라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말이다. 계산을 마침과 동시에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금액을 확인하는 정도의 단순한 용도에 그칠 뿐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던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마음속 죄책감을 없애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책에는 40세가 된 정신 작가가 서울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하는 2017년 3월 27일의 미국행 비행기 항공요금 937,800원의 영수증으로 시작된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정신의 영수증뿐만 아니라 배경 사진을 담당한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영수증과 사진을 모아 정신이 쓴 글과 함께 배치한 공민선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말이다.


"글을 한 번 쓰고 나면/몇 번을 수정해요//체에 거르면 고운 것들이 내려앉듯이/수정 후에는 고운 글이 됩니다//체에 남아 있는/거친 것들은 읽어보면 웃음이 나서/고운 것들만 세상에 내보내요//"  (p.166)


정신이 소비한 영수증과 움직인 장소가 찍힌 사진, 그리고 메모에 가까운 정신의 글이 토막처럼 실린 이 책을 정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읽는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 영수증과 영수증 사이의 여백이, 때로는 정신 작가의 짧은 메모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벗어난 독자의 시선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을 수도 있고, 멍한 시선으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벗어나 문득 책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인해 책을 완독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책이다.


"새로운 답을 만날/장소에 거의 다 왔다//길을 건너며/답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는데/크고//순한 느낌이다//나는 옆모습을 어서 보려고/빨리 길을 건너갔다//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아이스크림은 소외되어 녹아내렸다//2019년 7월 19일 오후 5시 12분/아이스크림 두 컵/11.00$/Smitten Ice Cream//"  (p.177)


과거에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광끼>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20대의 정신은 40대의 나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정신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 '위정편'에 이르기를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고 하였는데 작가 정신은 자신의 나이 사십에 비로소 '혹함'을 배우려 했다. 흔들림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작가 정신의 삶은 한 장의 영수증 속에, 그 영수증과 함께 남은 장소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내가 소비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던 어느 카페나 식당의 낡은 영수증 속에 나의 삶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23세/엄마가 47세일 때/아빠는 우리 식구의 삶에서/몇 주 후 사라진다// 엄마의 마음에는/화가 찼지만/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마음에/무엇이 있었는지 느끼기가 어려웠다//엄마는 나에게 아빠까지 되어야 했고/나는 엄마에게 남편까지 되어야 했다//빌런은/우리에게 10년 후 나타나/자신의 지난 일을 덮어두었다//"  (p.210)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 2026년 1월 18일 일요일의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의 가치로 살았던 것일까. 설렁설렁 가볍게 보낸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지는 오후, 약하디 약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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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나아진 감이 있습니다만 요 며칠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밖에 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육체적으로 오던 무력감이 정신적인 우울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게 됩니다. 며칠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도 이럴진대 개인의 인생에서 기나긴 좌절이나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진심으로 바라던 게 있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최악의 경우 단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슬픔을 조금쯤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기본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씀으로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의 효능은 본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름 결심하였던 게 있었습니다. 내 블로그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 능력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한 이웃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와 이웃을 맺었던 분이 한동안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지도, 나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 보이면 이웃을 취소하곤 합니다. 이웃 한 분이 취소됨으로써 나에게 이웃을 신청하였던 다른 분(말하자면 이웃 대기자)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친구처럼 지내는 인터넷 서점의 개인 블로그는 그렇지 않고, 소위 sns라고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그렇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가급적이면 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보려 애쓰고 있고, 그들이 현재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보니 주말 휴일이 아니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되돌아볼 잠시의 짬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씩이라도 나의 글을 읽거나 나의 블로그에 입장하여 잠시 머무르는 분이라면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주 가끔씩 하늘을 보는 것처럼 나의 블로그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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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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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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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도로는 젖어 있었다. 도시인의 피로를 닮은 어둠이 새벽녘까지 길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여느 날처럼 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에 오르자 주택가 어둠으로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붙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가사각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낙엽이 쌓인 곳을 밟을 때는 저벅저벅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에 비해 얼룩덜룩 잔설이 쌓인 등산로를 지날 때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곧추선 서릿발을 밟는 듯한 쾌감이 찌릿찌릿 전해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미끄러운 등산로 탓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작심삼일도 한참이나 지났으니 새해 계획으로 운동을 결심했던 이들도 이제는 적당히 쉴 때가 되긴 했다.


오늘은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혐의 피고인 8명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있는 날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결심 공판에서 있었던 변호인들의 낯 뜨거운 '침대 변론'으로 인하여 구형도 하지 못한 채 오늘로 연기되었던 바, 내란 수괴인 윤석열이 법정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는 모습을 오늘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게 영 마뜩지 않지만, 나라와 국민 모두를 사지로 몰았던 내란 수괴에 대한 죄과를 묻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노라면 윤석열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지능이 낮은 건지 아니면 슈퍼챗을 받기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보면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고, 단 하나 감정만 있는 듯하다. 그렇게 떠벌여서야 타인을 설득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고 있다. 인터뷰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지는 않은, 말하자면 그들의 노고에 비해 인색한 대우를 받는 인물들이다. 인터뷰의 성패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터뷰어의 공감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가 더없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터뷰 대상자의 선택이 오롯이 이슬아 작가에게 주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이 치우고 너무나 많이 헤아리는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순덕이라는 개인이 해내는 촘촘한 일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순덕 님과 함께 목마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걷다가 순덕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짱을 꼈다. 27년을 일하면서 이렇게 목마공원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병원 정문 코앞에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고, 항시 동동거리며 지낸 것 같다고 하셨다. "일 얘기를 이렇게 쭉 한 거는 처음이에요. 얘기를 하니까 행복하네." 순덕 님의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삶이라는 게 몹시 길게 느껴졌다."  (p.49)


짧은 겨울 해가 떨어지자 부쩍 찬 기운이 돌고 있다. 내일 아침에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쩌면 이번 겨울에는 단 한 차례도 꺼낸 적 없는 아이젠을 챙겨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쨍한 추위를 경험하고 나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가슴 한가득 차오르곤 한다.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둥 컴퓨터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도 새벽 산행을 권하고 싶다.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내가 이제껏 멍청한 짓거리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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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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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물건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집과 사무실에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을 마치 때 지난 과제인 양 떠안고 살면서도 단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허다하니 때로는 책이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를 옥죄는 삶의 난제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때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글귀들이 잠들었던 신경세포인 양 나를 일깨운다. 책은 그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몸속 하나하나의 세포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정혜윤 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위태로운 순간을 대비하여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순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먼저 호출하고, 불러온 책의 한 대목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곤 한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작가 역시 수십 년간 라디오 프로듀서를 하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재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를 붙잡아주었던 책의 힘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는 작가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삶의 현장으로 옮아 와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지난 경험의 이야기이자 그와 같은 책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


"원치 않는 재료가 널린 거친 작업장에서 삶을 빚는 나의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섞는 것이었다. 슬픔에다 책 큰 스푼 듬뿍, 외로움에도 책 두 스푼, 실망에도 책 한 즙 쭉. 두려움에는 책 한 국자. 쓰디쓴 재료에는 감미로운 책 한 그릇. 나는 온갖 재료에 책을 섞는다. 이렇게 많은 삶의 재료가 있는데 여기서 아무 좋은 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할 때도 책을 섞었다.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는 말 같은 것.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음식을 먹듯이 책을 흡수했고 거기서 영양분을 취했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재료(현실)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고 내 인생의 작업 비밀은 내가 책과의 혼합물이라는 점이다."  (P.32~P.33)


작가는 이 책에서 이자크 디네센, 허먼 멜빌, 제프 다이어, 이탈로 칼비노, 배리 로페즈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이나 관념으로만 떠돌던 그들 대문호의 작품을 현실에 섞는다. 한겨울 경찰차에 막혀 남태령을 넘지 못하던 농민들 곁을 함께 지켰던 시민들,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비행기 폭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눈물이 흐르던 고래의 얼굴을 기억하는 원양어선 항해사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읽었던 어느 작가의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바베트의 만찬', '모비 딕', '그러나 아름다운', '호라이즌'...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P.179~P.180)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무작정 책만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멀리하면서 오직 세상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에 이르게 된,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내 이웃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더해져 빛나는 미소가 되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웃의 슬픈 눈물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P.90~P.91)


점심을 먹고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니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엔 푸른빛의 냉기가 흐르고, 공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한데 저 비둘기 떼는 어디에서 오늘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비둘기의 잔상을 눈에 담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온기를 잃은 겨울 햇살이 눈밭에 부딪혀 부서진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일인가,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집은 차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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