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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평점 :
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잇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