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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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곳에나 많은 경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한계를 모르는 까닭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노력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지레짐작만으로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기도 전에 노력을 멈추곤 한다. 그리고 타인의 성취를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이런 사례는 글쓰기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모든 걸 작파하고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하는, 소위 전업 작가에게 있어 글쓰기가 매번 즐겁기만 할까. 아무리 즐겁던 일도 자신의 업이 되는 순간 하기 싫어지는 건 만국 공통이 아닐까 싶다. 만화나 웹툰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학생도 그것이 교과서에 실리면 보기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잘 쓰려면 밥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야 한다는 내 말 따위는 잊어버렸거나 헛소리라는 것쯤 알아버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글방의 기원에는 입맛 좋은 소녀들이, 아, 그 총명하고 섬세하고 솔직하던, 그렇지만 한밤중에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고립무원의 절벽에 섰던, 견고한 벽을 향해 미친 듯 질주하던, 때로 으스러지고 부스러지던 나의 그녀들이 있다. 시도이자 예감이자 미래인."  (p.83)


어딘글방을 운영한다는 어딘(김현아) 작가의 에세이 <활활발발>은 그야말로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자주 들르는 도서관의 서가를 아무런 목적도 없이 훑어보던 중 제목이 특이해서 내 눈에 띄었던 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이력을 읽지 않았더라면 책을 빌려 집에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을 터, '어딘글방은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출판계에 신선하고 활활발발한 바람을 불어넣은 90년대생 여성 작가들이 몸담았던 글쓰기 수련의 장이자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배우는 곳이었다.'라는 대목에 나도 모르게 홀딱 정신이 팔렸지 뭔가. 1부 '글방이 활활발발해지는 순간', 2부 '글도 잘 쓰고 일도 잘하는 입맛 좋은 소녀들', 3부 '세상에 꽃이 핀다면 그녀들의 웃음소리 때문이다 - 글방러들의 글 모음'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방을 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서 만나 합평회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때 두근두근 초긴장하는 얼굴들도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늘 글이 좋았다는 편을 받은 사람의 발그레한 홍조도 변함이 없다. 얘들아 웬만하면 쓰지 마, 글 쓰는 거 힘들어, 안 쓰고 살 수 있으면 쓰지 말고 살아.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말이다."  (p.8 '들어가며' 중에서)


목적이 없는 독서가 즐겁듯이 글쓰기에도 목적이 없을 때 즐겁다. 물론 단점도 있다. 어딘글방처럼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집중적으로 글쓰기를 연마하지도, 그렇다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와 같은 얼치기 독서인은 아무리 책을 읽어도 글쓰기 실력에는 도통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목표도,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멋진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목표도 없으니 나의 글은 언제나 일기 수준의 끄적임에서 머무를 뿐이다. 하지만 장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읽었던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도 있고, 속절없는 분노나 슬픔이 치솟을 때도 비록 형식에는 맞지 않는 글이지만 뭔가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서 빈 화면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가라앉곤 하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라고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고 놀랍다. 저 명민한 이들은 알아챈 것이다. 자신이 우주라는 걸, 내 한 몸이 꽃일 때 온 세상이 봄이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글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토록 열렬히 글방을 열어가다니. 이들로 인하여 글방은 확장되고 변주되고 진화한다. 그리고 연결된다, 당신과 나, 이토록 우연히 이토록 찬란히."  (p.244~p.245)


꽤나 오랜 시간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서로 다르겠지만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이웃을 만들고, 때로는 맘에 드는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연결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사실 나의 감정 조절을 목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타인과의 연결에 때론 충만함을 느낀다. 나와 일면식도 없고 서로에 대해 아는 바도 없지만 단지 글을 통하여 서로를 칭찬하고, 위로하고, 지지한다는 이 사실이 때론 놀랍다. 당신과 나의 연결이 이토록 찬란하다고 쓴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조용한 주말 오후에 작은 파문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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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를 운행하는 신에게 반기라도 들고 싶은 요즘, 8월의 끝으로 향하는 오늘 아침의 기온도 제법 높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새 수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열기와 습도가 견딜 만할 정도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8월도 다 가고 곧 9월인데... 계절의 순환을 그것밖에 못 할 거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왼손에는 작은 피켓이라도 만들어 들고, 오른손은 종주먹을 쥐고 흔들며, "더워서 못 살겠다. 하느님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데모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밤 기온이 내려간 덕분인지 아침에 산을 오르는 인원이 조금 늘었습니다. 말하자면 산스장에도 신입 회원이 들어온 셈이지요. 회원카드나 입회비를 받은 바는 없지만 신입 회원은 멀리서 봐도 태가 납니다. 등산복은 물론 등산화까지, 몸에 걸친 모든 게 신상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입 회원이라면 의당 신상을 갖춰 입고 나와야 하는 걸로 믿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신입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득한 후 아침 산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여전히 매미가 울고, 인간의 땀 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까맣게 달려드는 등산로를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게 올라왔을 테지요. 다만 산스장의 신입 회원이 증가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에 불과할 뿐 여름과 겨울에는 늘 보이던 얼굴도 이따금 사라지곤 합니다. 어렵게 첫발을 내딛은 신입 회원들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모습이 사라지곤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테지요. 그러나 어렵게 들인 좋은 습관을 깨버리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요.


줄리아 히벌린의 소설 <꽃과 뼈>를 며칠째 붙들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여 읽어야겠다 싶은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거나 소식마저 뜸하던 사람과의 약속이 잡히는 통에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소설은 주인공이 딸과 함께 사는 현재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1995년을 오가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앞부분을 다시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합니다. 심리적으로 아둔한 데가 있는 나로서는 이와 같은 심리 스릴러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갖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도 느긋합니다. 이 책은 전에 한 번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은 전과 다르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나는 5년 전쯤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책의 제목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도 했습니다. 꽤나 긴 세월이 흐른 탓인지 세밀한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그들의 운명을 놓고 온갖 터무니없는 가설을 상상했다. 혹시 리디아가 뭔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괴물이 살해한 걸까? 리디아는 항상 블랙 아이드 수잔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잘라내서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스크랩북에 붙이곤 했다. 여백에는 지적인 필적으로 빽빽하게 휘갈긴 메모가 있었다. 괴물이 그 집 폭풍 대피소를 가족 묘소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웨스트 텍사스 사막에 뼈를 내버렸을 수도 있다." (p.282)


이번 한 주가 지나면 2025년의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됩니다. 달력을 보니 9월 7일은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입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그렇게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하늘을 향해 데모를 하지 않아도 백로에는 그런 날씨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바깥 기온은 여전히 높고 나는 작은 피켓이라도 손에 들고 "물러나라! 물러나라!"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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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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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기본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지닌 인간이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구성원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미세한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는 것은 물론 그와 같은 현상을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익숙한 배경과 친숙한 인물을 배치한 가상의 공간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이 소설가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뜻이다. 그러자면 소설가는 자신의 눈과 귀는 물론 영혼의 수신기마저 대중을 향해 활짝 열어 놓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는 내내 나는 소설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김애란 작가는 누가 뭐래도 우리 시대의 좋은 소설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한 시절 누군가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해서, 긴장과 웃음, 안부를 나눴다 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지. 직장에서는 그 모든 게 지겨웠는데.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 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 나게 매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이. 그래서 그 일부를 한동안 내준 로버트가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p.254 '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를 비롯하여 '홈 파티', '숲속 작은 집', '좋은 이웃', '이물감', '레몬케이크', '빗방울처럼'의 총 6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작가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개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탈락하거나 그 집단의 기존 구성원으로부터 내쳐지는 상황에서 개인이 겪는 상실감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예컨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어떻게든 그들 집단에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성민이 그들 중 한 사람인 오 대표가 주최한 홈 파티에 삼류 배우인 이연을 대동하고 참여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금전적 차이 등 여러 이유로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홈 파티'나 집에서 독서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신혼부부인 듯 보이는 젊은 남녀가 위층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며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입주민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면서 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그것을 계기로 전세를 살고 있는 '나'의 처지와 경제적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만 여겼던 학생의 부모가 신축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한다는 소식에 상실감과 절망에 빠진다는 '좋은 이웃' 등은 우리 사회가 친밀도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예전보다 더욱 세분화되고 그렇게 세분화된 집단과 집단 간에 발생하는 배척과 적의는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그 실상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p.141 '좋은 이웃' 중에서)


마을이나 지역 또는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유지와 결속력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친밀도나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기존에 형성되었던 집단은 나날이 소규모로 분화되고, 한 집단에 소속되었던 구성원 역시 어떤 사고나 건강, 또는 재정상의 이유로 집단에서 탈락하여 어쩔 수 없이 더 낮은 계급의 집단에 편입되는 일은 전에 비해 더 흔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상실감과 절망에 빠지는 개인은 나날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어떤 집단에서 탈락한 개인은 전에 속했던 집단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까닭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건에 따라 이합집산이 현실화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구성원 대다수가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애란 작가는 그와 같은 현상을 정확히 짚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김애란 정도 되면, 즉 한 작가가 자기만이 아니라 문학 자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를 통해 문학의 본질을 곧장 말할 수도 있게 된다. 자주 사용되는 개념은 '재현'과 '표현'이다. '재현 represent'은 세계를 더 선명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는 일이고, '표현 express'은 주체의 감정을 밖으로 정확히 찍어내는 일이다. 김애란의 재현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자격이 사회학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p.311 '해설' 중에서)


처서도 지났는데 올여름 더위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질병관리청에서는 말라리아 경보와 함께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백신도 없다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내적 친밀도와 의식적 계층 구분에 따라 세분화되고 폐쇄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비단 최근에 불어닥친 갑작스러운 변화일까마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와 같은 현상이 급격히 강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이지만 집단 상호간의 유대는 단절되고 그에 따라 적대감마저 보이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이 내게 주었던 의미를 곰곰 되짚으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저는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p.316~p.317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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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지속되면서 집 밖을 나가는 게 사뭇 두려워졌다. 예전 같으면 차를 운전하여 바닷가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그럴 마음이 도통 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호불호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어쩌다 가로수 그늘이 있는 도심의 인도를 햇빛 속에서 10여 미터만 걸어도 살갗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폭염의 기세를 느끼곤 하는데, 쨍한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 바닷가 백사장을 걷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한 탓인지 장마가 길지 않았던 올해의 여름 날씨에 비해 해수욕장 주변 상가들의 주머니 사정은 그닥 좋지 않았던 듯하다.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많은 해수욕장이 이미 폐장했거나 폐장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나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은 후 근처 카페에 들러 잠시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저녁에도 약속이 하나 더 잡혀 있다. 약속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릴 시간이 없는 주말이면 뭔가 크게 손해를 본 느낌이 들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일부러라도 주말에 약속을 잡곤 했었는데 이제는 어렵게 잡힌 약속도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 이따금 들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난 후의 피로감을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사실을 어쩌다 생각할라치면 세월에 따라 잃게 되는 어떤 상실로 인해 슬퍼진다기보다 그 시절엔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낯선 당혹과 이질감이 나의 과거로부터 나를 멀리 떼어 놓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막스 뮐러의 소설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있다. 200쪽이 되지 않는 비교적 얇은 소설이지만 시적인 문체의 그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에 완독을 하는 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곤 한다. 물론 책이 얇은 까닭에 아껴 읽고 싶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기억이란 것은, 엄청난 파도에서 빠져나와 아직도 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강아지와도 같아서 그 기억 자체가 아주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때는 처음으로 별들을 쳐다보게 되었을 때라고 하겠다. 물론 그전에도 별들은 여러 번 나를 내려다보았을 테지만 말이다."  (p.12)


막스 뮐러가 자신의 생애에서 남겼던 단 한 편의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나는 과거에도 좋아했었고,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아파트 화단에 핀 '천사의 나팔(Angel's Trumphet)'을 보았다. 꽃이 핀 지는 꽤나 시일이 지난 듯했다. 배롱나무에 핀 꽃도, 보랏빛의 맥문동 꽃도 언제 피었는지도 모른 채 화단을 장식하고 있다. 바쁘다는 건 내 주변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행위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점점 소외되거나 낯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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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너스에이드
치넨 미키토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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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 소설을 읽는 묘미는 쫄깃한 긴장감과 진한 감동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서스펜스 소설의 특성상 그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사회에 내재한 문제점과 구성원의 부조리한 인식을 공론화하는 것 역시 서스펜스 소설이 갖는 장점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지나친 폭력성이나 과한 선정성 등은 서스펜스 소설의 단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순하디 순한 서스펜스 소설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치넨 미키토가 쓴 <이웃집 너스에이드>는 꽤나 정제된 서스펜스 소설임에 틀림없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들이 으레 느낄 수 있는 서늘한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류자키는 사요코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고마워......" 하고 목소리를 짜냈다. 그 눈에 살짝 눈물이 어린 것처럼 보였다. "이야아, 아름다운 장면이네. 그럼 이쯤에서 슬슬 웃기지도 않는 신파극은 끝내도록 합시다." 비웃듯이 말하면서 세이류인이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부하들이 보우건을 들어 겨누는 것을 보고 미오가 눈을 감았을 때 별안간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p.351)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은 세이료 대학 부속병원의 신입 간호조무사인 사쿠라바 미오와 통합외과의 천재적인 의사 류자키 타이가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대척점의 위치에 서 있다. 외과의사였던 유이는 심네스 환자인 언니 사쿠라바 유이를 수술하였지만 유능한 기자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절망감으로 자살하고 말자 미오는 PTSD를 겪으며 의사로서의 어떤 의료 행위도 하지 못하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은 까닭이다. 의사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미오는 세이료 대학 부속병원을 대표하는 히가미 교수의 도움으로 신입 간호조무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한편 불우한 가정형편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의사가 된 류자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의학적 지식과 끊임없는 훈련과 기술 연마뿐이라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전국에서 우수한 외과의를 모아 설립한 세이료 대학 부속병원의 통합외과에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등급인 플레티넘에 위치하였지만 그는 한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편 불안해하는 환자의 가족에게 담당의인 류자키가 수술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을 해 달라는 미오의 요구를 거절했던 류자키는 미오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환자를 살리겠다는 열정과 간절함은 미오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환자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간호조무사 미오의 지적에도 그는 편견 없이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유일한 의사였다. 일정이 잡힌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 일자를 연기해 달라는 미오의 요구를 수용한 것도 류자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오의 집에 도둑이 들어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고, 갈 곳을 잃은 미오에게 자신의 트레이닝 룸을 기꺼이 내준 이도 다름 아닌 류자키였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의 옆집에 세를 들어 살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외과의사였던 미오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현관 앞에 선 미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기는......" "내 트레이닝 룸이야. 비는 시간에 여기서 훈련을 거듭하고 있어." 미오는 이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 집주인한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201호실과 202호실은 상주하는 사람은 없고 어떤 사람이 창고처럼 쓰고 있다고. 그 '어떤 사람'이 류자키였던 건가. 미오는 빨려 들어가듯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 보니 구석에는 러닝 머신을 비롯해 웨이트 트레이닝용 덤벨과 바벨까지 갖춰져 있었다."  (p.108)


환자를 배하는 견해차로 두 사람은 서로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팀처럼 움직인다. 미오가 PTSD를 극복하고 하루빨리 의사로 복귀하기를 희망하는 류자키와 다른 이가 넘볼 수 없는 천재적인 의료 기술에 더하여 류자키가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미오. 어느 날 미오는 죽은 언니의 남자친구였던 다치바나 형사로부터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고 언니가 운행하던 차량의 내비게이션 이력에서 폭력단의 비밀 아지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미오는 다시 류자키와 조우하게 되는데, 그는 거액을 받고 불법 수술을 해주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은 마찬가지라고 담담히 대꾸한다. 그러던 어느 날 류자키가 성장했던 보육원의 한 소녀가 충수염에 걸려 응급 수술을 받기 위해 내원하였는데, 사이비 종교를 믿는 그 소녀의 엄마가 수술을 완강히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목숨이 위태로운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미오와 류자키의 작전이 시작되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류자키와 미오, 같이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 모두가 위험에 빠져들게 된다. 과연 그들은 미오의 언니가 취재하던 불법 행위의 내막을 밝히고 자신들이 처한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고,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최고의 기술을 습득했어. 그 기술을 갖고 있는데 또다시 가족을 내버려 둔다면 내 인생은 무의미했다는 것이 돼. 그러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을 살릴 수 있게 해 줘. 그날 이후의 노력이, 그날 이후의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 있게 해 줘!"  (p.272~p.273)


현직 내과의사로서 소설가를 병행하고 있는 치넨 미키토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이 소설에 쏟아 부음으로써 사실감을 드높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면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재미를 잃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오겠지만 작가는 그 적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독자였던 나는 몇몇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의사였던 미오가 모든 걸 내려놓고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과 젊은 여성인 미오가 언니를 죽인 자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경찰에 알리지도 않은 채 폭력단의 아지트를 염탐할 수 있을까? 하는 점 그리고 언니가 남긴 취재 기록을 찾기 위해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건 연루자들의 사정이 딱하다고 그들을 그냥 놓아주는 게 가능할까? 내가 소설에 심취했던 탓인지 이런저런 의문이 뭉글뭉글 피어난다. 그럼에도 재밌으면 됐다. 소설은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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