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지속되면서 집 밖을 나가는 게 사뭇 두려워졌다. 예전 같으면 차를 운전하여 바닷가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그럴 마음이 도통 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호불호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어쩌다 가로수 그늘이 있는 도심의 인도를 햇빛 속에서 10여 미터만 걸어도 살갗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폭염의 기세를 느끼곤 하는데, 쨍한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 바닷가 백사장을 걷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한 탓인지 장마가 길지 않았던 올해의 여름 날씨에 비해 해수욕장 주변 상가들의 주머니 사정은 그닥 좋지 않았던 듯하다.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많은 해수욕장이 이미 폐장했거나 폐장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나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은 후 근처 카페에 들러 잠시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저녁에도 약속이 하나 더 잡혀 있다. 약속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릴 시간이 없는 주말이면 뭔가 크게 손해를 본 느낌이 들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일부러라도 주말에 약속을 잡곤 했었는데 이제는 어렵게 잡힌 약속도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 이따금 들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난 후의 피로감을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사실을 어쩌다 생각할라치면 세월에 따라 잃게 되는 어떤 상실로 인해 슬퍼진다기보다 그 시절엔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낯선 당혹과 이질감이 나의 과거로부터 나를 멀리 떼어 놓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막스 뮐러의 소설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있다. 200쪽이 되지 않는 비교적 얇은 소설이지만 시적인 문체의 그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에 완독을 하는 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곤 한다. 물론 책이 얇은 까닭에 아껴 읽고 싶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기억이란 것은, 엄청난 파도에서 빠져나와 아직도 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강아지와도 같아서 그 기억 자체가 아주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때는 처음으로 별들을 쳐다보게 되었을 때라고 하겠다. 물론 그전에도 별들은 여러 번 나를 내려다보았을 테지만 말이다." (p.12)
막스 뮐러가 자신의 생애에서 남겼던 단 한 편의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나는 과거에도 좋아했었고,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아파트 화단에 핀 '천사의 나팔(Angel's Trumphet)'을 보았다. 꽃이 핀 지는 꽤나 시일이 지난 듯했다. 배롱나무에 핀 꽃도, 보랏빛의 맥문동 꽃도 언제 피었는지도 모른 채 화단을 장식하고 있다. 바쁘다는 건 내 주변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행위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점점 소외되거나 낯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