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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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이란 삶의 잔유물인 동시에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숙주를 죽이는 포식기생충처럼 사람에게서 나와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나의 기억이 직접적으로 나 자신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억은 대개 욕망이라는 형태로 숙주인 나를 조종하거나 지배함으로써 완전한 파멸에 이르게도 한다. 욕망의 분출이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게 하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삶 전체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기억은 숙주를 죽이는 포식기생충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욕망이란 결국 기억에 의해 학습되고 적절히 관리되는 것이기에.

 

"더불어 그는 깨달았다. 세계는 말하자면 일종의 그늘이라는 사실을. 우주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란 커다란 악의 축이 늘어뜨린 그늘. 수천 년 동안 눈 비 바람 그 모든 풍파를 견디며 크고 또 자라 이제는 누구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도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확보한 본체, 그 아래 기생하는 인간들이 벌이는 악의 향연."    (p.245)

 

도선우의 소설 <저스티스맨>은 정의롭지 못한 이 세상에 대한 작가의 분노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가슴에 품어봤음 직한 악에 대한 척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인을 제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러나 준동하는 악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악의 축이 늘어뜨린 그늘'일 수밖에 없다.

 

성실하지만 소심한 성격의 한 사내가 있었다. 대학마저 떨어진 그는 육군부사관학교에 지원했고, 마땅한 기술도 없고, 학벌도 변변치 않았던 그는 제대 후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여전히 그는 성실했지만 성과는 미미했고, 성실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사에서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이 있었던 어느 날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술에 취한 동료들을 돌보았고, 모두가 귀가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 정작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길거리에 쓰러졌다. 화장실을 찾지 못한 그는 한 빌딩의 화단 옆에서 바지를 내린 채 변을 보았고, 토사물과 함께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그는 파출소에서 풀려났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자신의 추한 모습이 누군가에 의해 기사화되었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오물충의 만행'이라는는 제목으로 올라온 그 기사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가족마저도 그를 기피했다.

 

"이제까진 아무리 그래왔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의 영혼마저 완벽히 까맣게 타들어갈 만큼 사는 일 자체가 두려움이 되는 상황에서까지도 그를 외면하는 건, 정말이지 가혹한 일이었다. 그는 이제껏 그래왔듯 무의미한 선과 색으로 여백을 채운 낡은 그림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다가, 실은 그 속에 담긴 사무치도록 슬픈 사연을 불현듯 깨닫기라도 한 사람처럼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p.36)

 

오물충의 사진을 최초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이마에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상태로 살해된 후 동일인의 범행으로 보이는 살인 사건이 줄줄이 발생한다. 모든 피살자의 이마에는 두 발의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피살자들 간의 연관관계는 경찰에 의해서도 밝혀지지 않았고 어떤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국민들의 불안과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와 언론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살인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밝힌 저스티스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터넷에 올린 저스티스맨의 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글은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살인에 대한 개연성을 충분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들도 미처 알아내지 못했던 사실들을 인터넷에 게재함으로써 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를 추종하는 네티즌만 해도 수십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오물충 사진을 올렸던 최초의 피살자와 오물충의 신상정보를 올렸던 두 번째 피살자, 오물충 사건을 기사화한 사회부 기자의 사망 사건 이후 연쇄살인범의 총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악의 근원으로 향한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주선하여 이익을 챙기는 삼류건달이나,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비디오 동영상을 유포하는 엔지니어나, 직위를 이용하여 성추행과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선생님과 국회의원 등. 네티즌들은 그가 이제 연쇄살인범이 아닌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악을 처단하는 '킬러'라고 추앙하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이런 옴니버스 형태의 사건을 재구성함으로써 최근에 있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조망하고 있다. 한동안 불법 동영상 유포의 근원지로 활동했던 소라넷이나, 2011년 여중생 2명을 집단 성폭행한 '도봉구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나, 모 대형교회 목사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등.

 

"도덕성 파괴라는 감춰진 본능이 익명이라는 그늘 속에서 쑥쑥 자라고 그것이 방약무인한 인터넷 세계로 유혹하며 결국, 현실도피 성향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이런 현상은 현실을 조급하게 보고, 잘못 보고, 급하게 판단하는 인간성과 공격성을 양산한다고 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었다." (p.163)

 

작가는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에 대한 저스티스맨의 논평, 저스티스맨을 추종하거나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반응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폭력과 어떤 현상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이나 근거도 없이 행해지는 영웅화가 우리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얼마나 많은 악의 재생산을 유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가 지배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의 감성을 자극하여 그들의 이성을 무력화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횡행하고 있다. 현실의 경험만이 자신의 기억으로 구축되던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얻는 가상경험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는 요즘, 우리의 판단과 기억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 놓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오탈자) 선생이나 어른 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셔틀의 과정의 알았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 선생이나 어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셔틀의 과정을 알았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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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의 오류는 있겠습니다만 어른들은 대개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많은 반면 아이들은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느껴지나요? 물론 어른이라고 혼날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직장 동료들과 늦은 시각까지 술을 먹는다거나 행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이 담배를 피우는 등 혼날 짓도 많이 하지요.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어떤 일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몸이 들썩이거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습관적으로 또는 타성에 젖어서 하는 게 대부분이지 싶습니다. 에너지의 차이일까요? 아이들의 경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을 때에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듯합니다.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전혀 두려운 표정이 아니지요. 목숨이라도 걸 태세라고 할까요. 아무튼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할 때에는 혼나는 것쯤이야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듯 눈빛에서는 결기가 느껴지곤 합니다. 오직 지금의 순간에만 집중할 뿐 코앞의 미래도 일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뭄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탓인지 하는 일마다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산을 올랐을 때 키가 작은 나무들의 잎이 다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등산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고, 담배를 끊은 지 이제 만 이 년 반이 지났지만 이따금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이렇게 참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가뭄도 가뭄이지만 때 이른 폭염마저 극성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유한국당에서도 정말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더군요. '자유한국당'의 다섯 글자로 오행시를 짓는 이벤트를 벌인 게 그것입니다. 담당자 또한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일을 해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소위 '뻘짓'을 하는 대가가 월급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이벤트에 올라온 오행시를 옮겨봅니다. 가뭄에, 폭염에 웃을 일 없다 여겼는지 자유당에서는 자폭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자 폭하네 ㅋㅋㅋ 지금 지지율

유 지하는 것도 벅찰 텐데

한 심하게 오행시 이벤트나 하다니

국 민 민생부터 챙겨라

당 첨자가 있을려나 모르겠다?

 

자 괴감이 드네요.

유 체이탈화법 똘아이 탄핵 대통령 돼지발정제 대통령후보로

한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했던

국 민을 개같이 아는

당 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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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
김학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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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펭귄'이었을까? 생긴 것과는 달리 까칠한 성격을 타고난 때문일까? 그래서 말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펭귄을 닮아서? 아니면 미끈하게 수영을 잘해서? 작가는 '산책하는 펭귄이 있는 동물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펭귄'인 동시에 '나'였다. 그러므로 '펭귄'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였고, 변화의 기록은 아직 끝나지 삶의 이야기였다.

 

신체의 일부인 동시에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펭귄'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건 내가 열세 살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국기가 내려가던 시간, '바이킹이 내려갈 때 허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좋고도 싫은 느낌'이 들어서 바지 앞섶을 열자 기립 자세의 펭귄이 "굿 이브닝"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변신을 하는 <철인 28호>처럼 인사를 마친 펭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익숙한 고추가 되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펭귄'은 주인공인 '나'의 성기를 일컫는다. 작가는 남자의 '2차성징'인 발기와 사정을 펭귄이 깨어나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나'와 '펭귄'이 서로 다른 인격체인 양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화합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미친 펭귄. 펭귄은 단 두 번의 인사만으로 보이스카우트를 해산시킬 뻔했고, 한 가정의 평화를 영구히 파괴할 뻔했으며, 아빠에게는 한 달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했고, 아빠는 이 핑계로 또 술 마시러 나갔고, 여자아이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p.26)

 

펭귄이 깨어난 후 민달팽이 취급을 하는 누나와 한 방을 쓰고 있던 나는 한밤중에 몰래 나와 학교 운동장에서 펭귄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야한 사진이 담긴 트럼프 카드를 모으기도 하고, 에로 비디오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내아이들은 대개 그렇지만 펭귄이 깨어나면 그 순간부터 펭귄의 생각에 지배받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는 펭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명령하고, 모든 것을 펭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펭귄은 자신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때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장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들은 펭귄의 크기를 갖고 경쟁하거나, 펭귄이 내뿜는 오줌발의 거리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펭귄의 목에 양동이를 걸고 양동이에 조금씩 물을 채움으로써 누구의 펭귄이 더 많은 물을 들 수 있는지 서로 겨루어보자는 조모 상병도 있었다. 소설 속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여자를 보고 싶다'는 펭귄의 생각에 따라 교회를 나가기도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봤다. 남녀 공학이 사라지면 교회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교회의 신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 물의 때문이 아니라 연애당의 기능을 대신할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일정하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고도 공헌만큼 쳤다. 교회가 예전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천국, 인맥, 연애라는 교회의 3대 기능 중 연애의 역할이 예전보다 줄어든 탓이다." (p.65)

 

트럼프 카드를 모으고 야설을 읽던 나는 플로피 디스켓으로 진화하고, IMF 사태로 아빠가 명예퇴직을 하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동네 마트의 캐셔로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공부만 하는 누나.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야동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게임과 야동에 빠져 살던 나는 진로와 적성과는 상관없이 여자가 과반인 대학에 가까스로 합격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귈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고 친구의 코치를 받고 거리 응원에 나섰던 나는 여자와 함께 모텔에 입성하는 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그때마다 펭귄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자랐다. 선배들은 근본적으로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후배들은 아날로그를 낯설어하는 디지털형 인간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덕분에 아날로그적 음란물과 디지털적 야동을 모두 접했다. 대신 선배들을 따라잡지 못했고 후배들에게는 곧바로 밀려버렸다. 힘을 쥔 기성세대는 아날로그를 강요했고 추격하는 쪽들은 디지털로 무장하고 있었다. 양쪽의 즐거움을 모두 맛본 세대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p.194)

 

군대를 다녀오고,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펭귄은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풀이 죽은 펭귄은 생각의 주도권을 내게 넘겨주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펭귄도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나는 이제 연민의 눈으로 펭귄을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눈과 입술과 볼이 약간씩 처진 것 같은, 표정. 말을 걸어줘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표정. 보고 있으면 힘내라는 말만 간신히 건넬 수 있는 표정.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게 되는 표정이었다." (p.250)

 

한 사내의 성과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담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짠한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펭귄의 지배를 받던 철부지 어린 아이가 어느덧 스스로 독립할 나이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세상살이에 치여 펭귄의 존재마저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었나, 생각할 때, 소설 속의 나는 문득 현실의 나로 오버랩되는 것이다. 작가가 펭귄에게 보내는 위로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작가의 응원가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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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길어지는 요즘, 산과 들에는 초록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열악한 날씨에도 계절의 변화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밤꽃 냄새가 진동했던 등산로에는 며칠 전부터 밤나무 수꽃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밤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피는 암수한그루라는 걸 아시는지요. 강아지풀을 닮은 수꽃과 가시가 있는 도토리를 닮은 암꽃이 한 가지에서 피어나는 것이지요. 비릿한 밤꽃 냄새는 주로 수꽃에서 풍긴다고 합니다.

 

 

계절은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인간은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건만 대통령도, 정부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으니 말입니다. 연일 막말 논란에, 행사 때마다 꾸벅꾸벅 잠을 쳐자면서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인사들이 지난 정부의 주축 세력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또 자유당의 이철우 의원이 문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나 봅니다.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했던 그의 말인 즉, "다음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까지 지금 안 갈 것 같다. 오래 못 갈 것 같다. 반드시 찾아오도록 하겠다."면서 "지금 문재인 정부 하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나라를 망하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지요.

 

추경을 설명하는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자유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졸거나 잠을 자더군요. 야당 의원으로서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바로잡겠다는 생각은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예 없었던 듯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똑바로 듣고, 그 내용을 요약한 뒤 정황상 맞지 않는 바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한가하게 잠이나 쳐자면서 무슨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어떤 나라의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의 국회 연설 현장에서 잠을 잤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초등학생만도 못한 것들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고 뽑아놓았으니 말입니다.

 

당대표에 도전하는 한 인사도 현 정부를 두고 '주사파 운동권 정권'이라고 했다지요. 그런 낡은 사고의 틀로 권력을 되찾겠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그들은 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기 이전에 그들의 당이 먼저 해체될 듯합니다. 밤나무 수꽃이 지듯 허무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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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2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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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어도 좋고, 조물주여도 좋은 어떤 것이 이를테면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서는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이만큼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똑같지 않더라도 훨씬 더 실제적일 수 있어요.' 하고 속삭인다고 상상해보자. 얼마 후 현실에서 그 실체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이따금 그 순간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그(또는 어떤 것)가 당신의 곁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작가의 여섯 자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쓰기 시작하여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읽었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2009년에 책을 구매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양장본의 그 책은 지금 사서 단 한 번의 손길이 닿았던 그 상태 그대로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혀 있다. 말하자면 그 책은 재독, 삼독을 원할 만큼 가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가 입을 다물고 바닥에 앉자, 오두막의 공허함이 그의 영혼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던진 대답 없는 질문과 비난들이 마룻바닥에 가라앉았다가 황폐한 나락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갔다. '거대한 슬픔'이 그의 목을 조여오자 그는 오히려 그 고통이 반가웠다. 잘 알고 있는 고통, 친구처럼 다정한 고통이었다."    (p.125)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100쇄 특별판으로 나온 이 책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흥미나 감동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도 단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우리나라 개신교 신자들의 믿음이란 게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광적이지 않던가 말이다. 800만 명 내외의 개신교 신자들이 4명 중 한 명꼴로 책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20만 권이 팔릴 테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이 전적으로 종교서에 가깝다는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켄지, 당신은 진정한 사랑의 방법을 현명하게 잘 알고 있군요. 사랑이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는 것이야말로 성장하는 것이고, 사랑은 그것을 포함하기 위해 확장할 따름이죠. 사랑은 단지 안다는 것의 거죽일 뿐이죠. 매켄지, 당신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놀랍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p.260)

 

책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가족 캠핑 도중 맥의 막내 딸 미시가 유괴된다. 경찰이 내린 결론은 그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 아이들만 노려 유괴하는 연쇄 유괴범들의 짓이라는 것이었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미시의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범행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인근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미시가 입었던 옷이 피가 묻은 채 발견되었고, 그런 정황으로 보아 미시가 연쇄 살인범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었다. 맥은 자신이 미시를 돌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책과 함께 '거대한 슬픔'에 사로잡힌다. 그로부터 4년 뒤 맥은 오두막으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게 되는데 발신인은 놀랍게도 하느님(책에서는 '파파', 맥의 아내 낸은 하느님을 늘 파파로 불렀다.)이었다.

 

누가 장난으로 보낸 쪽지였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되었던 그곳을 한번쯤 확인해보고 싶었던 맥은 친구로부터 차와 권총을 빌려 오두막으로 향한다. 황량하기만 했던 그곳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날씨마저 따뜻했고, 맥은 그곳에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을 서로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하느님(파파)은 덩치가 큰 흑인 여성으로, 예수는 중동에서 온 노동자, 아시아 여성의 성령이 그들이다.맥은 또한 지혜의 여인 소피아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종교나 신앙에 대해 큰 믿음이 없었던 맥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안전을 제공받고, 정체성을 보호받아왔던 것을 그만두고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거예요. 또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안정과 의미를 추구하던 것에서 전환해서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겠죠."    (p.244~p.245)

 

어른이나 종교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히는 이 책은 맥과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은 무엇이며, 종교는 또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우리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는 듯하다.

 

"당신이 용서할 때마다 이 지구는 변해요. 당신이 팔을 뻗어서 누군가의 마음이나 삶을 어루만질 때마다 이 세계는 변해요. 눈에 드러나건 아니건 모든 친절과 봉사를 통해 내 목적은 이루어지고 어느 것도 예전 같지 않게 되죠."    (p.405)

 

인간의 최대 약점이자 장점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신이나 회의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직접 벌어진 일들도 자신이 보거나 겪지 않았으면 반신반의 믿지를 못하는 마당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오두막>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삶 전반에 대한 질문, 이를테면 세상의 부조리와 신의 역할, 삶의 자세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그 질문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답을 찾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질문들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탈자)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려고(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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