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눈이 내렸다. 누군가에게 제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듯, 익숙한 계절 풍경을 연출하려는 듯, 가는 눈발이 어두운 하늘 위로 표표히 날렸다. 이런 날이면 사는 것조차 멀게만 느껴진다. 구름 위를 떠도는 듯 멍해지게 마련, 하늘도 땅도 한빛으로 어두워지는 사뭇 엄숙한 날씨를 한 사람이, 그 뒤를 따라 또 한 사람이 건너갔다. 바람이 불고 눈도 날리는 그런 날씨를.

 

그러고 보니 2016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 국민 중 2016년을 힘겹게 건너오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랴마는 고통은 언제나 깨달음을 수반하는 법. 저만치에 사람이 있다는 걸, 당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언저리에서, 당신의 눈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저만치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깨닫지 않았을까. 내가 뽑은 정치인, 내가 좋아하는 이념, 내가 신뢰하는 가치관이 나 한 사람의 삶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대의 삶, 그대의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2016년 한 해의 소중한 깨달음으로 간직하지 않았을까.

 

눈이 그친 하늘엔 때묻지 않은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다시 눈이 내리려는가 보다. 장 지글러가 쓴 <인간의 길을 가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솔직하지 못하다. 즉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환상과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열심히 속박의 사슬을 만들어낸다. 마치 타자와 뜻밖에 만날 수 잇는 자유 속에 끔찍한 위험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술의식을 하듯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들을 다하고 그 역할들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 그런데 이 역할들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서서히 우리의 숨통을 죈다. 우리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이 속박의 사슬들이 우리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보고, 걷고, 꿈꾸고,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애썼던 수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아니 안중에도 없었던 몇몇의 정치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삶조차 부정되고 짓밟혀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무시와 차별을 인식하면 할수록 "저만치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광장에 모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2016년, 그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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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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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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