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어 다시 생각할 때 '아, 내 생각이 틀렷었구나.' 깨닫고 바로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구나 그 정도의 실수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깟 것들이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왠지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넘어가면 크나큰 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개운치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도덕관념이 투철한 성인군자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그럴 리도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도 그런 듯합니다. 예컨대 함께 어울릴 때는 잘 몰랐었는데 헤어져 이제는 영영 못 만날 것 같은 느낌이 오면 그제서야 그 사람이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한번쯤 오해했던 말이나 상대방은 몇 날 며칠 신중하게 생각하고 어렵게
꺼냈을 듯한 말을 나는 참으로 건성건성 듣고 흘려보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도 됩니다.
최근에 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책이나 글을 읽고 내가 잘못 해석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던 저의 불찰이 원인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그것 역시 잘 듣고 그 이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저의 타성이나 게으름이 원인일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타성이나 게으름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나날들이 있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듯이, 누군가 내게 자신이 전에 했던 완전히 똑같은 말을 그때와 똑같은
환경에서 되풀이했을 리 만무한데 저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말로, 대충 그렇고 그런 말로 지레짐작하고 건성건성 들었던 것입니다.
조금쯤 변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비슷한 일정 속에 비슷한 일과를 보내는 탓에 한 십 년쯤 이런 생활을 하고 문득 뒤돌아 보면
마치 십 년이 단 하루였던 듯 기억나는 게 거의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청하여 제 삶을 단축시키면서 살아온 것이지요. 앞으로도 십 년을 하루인
듯 살다 보면 문득 죽음이 코앞에 놓인 시간을 맞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것은 삶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길고 짧고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의 총량과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오래
사는 비결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 그 열정이 저의 게으름을 몰아내고 제 삶을 조금쯤 늘여놓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