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의 모든 잠언집에는 저마다의 장점과 유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잠언집을 집어 들면 왠지 꺼림칙한 마음이 먼저 들곤 합니다. 나만 그런가요?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이걸 언제 다 읽나?' 한숨부터 내쉬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잠언집에서 받는 느낌은 아마 지키지도 못할 규칙이 빼곡히 적힌 어떤 규정집을 받아들었을 때의 부담감인 듯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거부감이 들 수밖에요.

 

그렇다고 모든 잠언집을 내치기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유대인의 <탈무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의 즐거움>, 톨스토이 잠언집 <마음에 힘을 주는 사람을 가졌는가>는 비교적 거부감 없이 읽었던 듯합니다. '비교적' 말입니다. 그런데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잠언집이라기보다 시집처럼 읽혔습니다. 지금도 나는 <예언자>가 잠언집이 맞나 의심하곤 하지요. 아무튼 나는 장조의 <유몽영>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던 게 사실입니다.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이라는 표지 문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임어당을 다른 누구보다 좋아하여 <임어당 전집>을 읽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으면서 말입니다. 내가 이 책을 읽자, 최종적으로 결심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유몽일영'의 제1칙이면서 이 책의 첫머리이기도 한 다음의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경서經書를 읽기에는 겨울이 좋다. 정신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서史書를 읽기에는 여름이 좋다. 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서諸子書를 읽기에는 가을이 좋다. 운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문집文集을 읽기에는 봄이 좋다.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p.35)

 

그렇다고 이 책이 문집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문집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죠.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은 꿈길에서 유유자적하는 듯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삶의 지침서입니다. 문집처럼 유유자적하며 읽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그윽한 꿈의 그림자'(幽夢影)로 풀이되는 책의 제목에 대하여 어쩌면 바쁜 현대인들은 한가한 소리쯤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몸이 바쁠수록 마음의 곳간은 차츰 비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 독서와 문학, 자연과 예술, 꽃과 여인, 인생과 처세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자처럼 묵묵히 뒤따르던 나의 과거와 진솔하게 대면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까닭에 어떡하든 자리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정한 자는 살고 죽는 생사生死를 이유로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애주가는 춥고 더운 한서寒暑를 이유로 주량을 바꾸지 않고, 독서가는 바쁘고 한가한 망한忙閒을 이유로 독서를 중단하지 않는다." (p.278)

 

자연과 예술, 처세와 관련된 다른 많은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띄는 문구는 대개 독서와 관련된 문장뿐입니다. 봄에는 기운이 화창하여 문집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데 꽃에 뺏긴 시선은 좀체 책으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도 게으른 자의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말입니다. 하루가 한 시간처럼 빠르게 흐르는 요즘 정좌하여 조용히 몸을 추슬러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고기반찬이 없는 소식素食을 하면 기운이 탁하지 않고, 홀로 자는 독숙獨宿을 하면 정신이 탁하지 않다. 묵묵히 앉아 묵좌默坐를 하면 마음이 탁하지 않고, 선현과 대화하는 독서讀書를 하면 입이 탁해지지 않는다." (p.418~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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