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 -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
이민영 글.사진 / 이랑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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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전거는 통학을 위한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만큼 값싼 교통수단도 없었기에 아침이면 도로는 온통 자전거의 물결이었다.  당시에도 물론 버스는 있었다.  그러나 100원 남짓이던 버스요금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같은 동네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런 까닭에 자전거에 얽힌 추억도 많다.  한번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길을 걷고 있던 어느 여학생과 부딪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썸씽이 있었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향해 걸어 오던 여학생은 내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으면 똑 같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역시 왼쪽으로 피하려다가 결국은 속도를 죽이지 못하여 여학생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그 사태를 무마하려고 자전거에서 재빨리  내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또 다른 추억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대학 진학 공부의 막바지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꽤나 지쳐있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던 친구들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했고, 그 결과를 내게 선심 쓰듯 알려주고는 그들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반 강제적으로 종용했었다.  계획인즉슨 학교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계곡으로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자는 것, 그것도 가장 더운 날 가장 더운 시간을 골라서 출발하여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 무모한 계획에 선뜻 동참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8월의 땡볕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목적지에 반도 이르지 못한 지점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만 보면 온 몸에 물을 끼얹고 더위에 지친 개처럼 혀를 길게 뽑고 물을 들이켜기 바빴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막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이었다.  준비해 간 쌀로 밥을 짓고 삼겹살을 구워 배를 채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계곡의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니 홀딱 젖은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길을 라이트도 들어오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다섯 명 중에 라이트가 멀쩡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그 약한 조명에 의지하여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도중에 한 친구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는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수십 분을 헤맸다.  그러나 휴일의 늦은 시각이었던지라 자전거포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수리해 주십사 사정하여 펑크를 수리하고 가까스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자전거 여행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이다.  사실 요즘은 전국의 어느 도로를 가더라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도로 사정은 좋아졌지만 그만큼 차도 많아졌고 달리는 차의 속력도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오지로 향한다.  여행을 좋아했던 작가 이민영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여자 혼자서 무려 2개월 동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메콩강 4개국, 2,850km를 달릴 결심을 한 것은 나의 학창시절의 경험처럼 조금 무모하다 싶다.  결국은 무사히 마쳤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때의 기록이다.

 

"나 역시 20대의 대부분을 미친바람처럼 떠돌았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되고,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며 모든 곳이 비슷하게 느껴질 무렵, 문득 '이젠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여행을 다니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놀지 못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다 불태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미친바람이 잦아든 것이었다.  대신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가슴속에 '사무침'이라고 할 만한 단단히 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진정으로 사무칠 때 화두를 잡아야 평생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다는데, 산만하게 이곳저곳으로 뻗었던 내 인생의 많은 길들이 사실은 나선형을 그리며 하나의 단단한 화두로 통합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여행 직전에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를 자축하기 위해 혼자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을 내 속도로 천천히 헤쳐나가는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익숙한 일상이 끊어진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새로운 생각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 때 삶에 더 감사하게 된다는 것을 생생히 배울 수 있었다."    (p.264)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르긴 했지만 작가 이민영은 생소한 사람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고, 그녀의 이력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놀랍고 약간의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포항공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했으나, 대학 시절부터 휴학을 거듭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인도와 남미, 스페인의 산티아고는 물론, 나중에는 여행인솔자라는 직업까지 얻어가며 60개국을 떠돈 후 2010년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의료인류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단다.  그녀의 여정은 메콩강 상류인 태국의 치앙마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인 산악도로와 섭씨 40도 이상의 뙤약볕이 내려쬐는 길을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남자인 나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펑크도 스스로 때워본 적이 없는 왕초보 자전거 여행자였던 작가.  독자는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절대로 '어렵다'는 말을 해서도 안 돼.  어려울지는 몰라도 반드시 해결책이 있단다."  그분이 말해준 주옥같은 명문장들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사과 한 알을 보아도, 포도 한 송이를 보아도 "이 탱탱한 알을 좀 봐!  얼마나 즙이 많고 맛있겠니!" 하고 감탄하던 천진난만한 할아버지,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그의 삶이 내게는 위대한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p.117)

 

메콩강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원주민들,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여행하면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가난하지만 낯선 여행자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순박하고 고운 심성,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작가.  그 모든 것들이 30대의 인류학도인 작가에게 앞으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만남이 아닐까?  작가가 마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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