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오병욱 지음 / 뜨인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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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은 어차피 좋은 삶에서 비롯되는가 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오늘 또 다시 깨닫는다.  그러나 단순한 진리일수록 지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일상의 번잡함은 삶의 영롱한 진리들을 금세 물리치곤 한다.  너무나 맑고 단순하기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인 화가 오병욱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술이론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강남의 잘나가는 갤러리에서 3년간 큐레이터로 일하던 1990년 어느 날, 할머니 혼자 살던 시골의 빨간 양철지붕 집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대문 밖 골목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고, 시골로 내려온 지 8년 넘게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고, 한겨울에도 찬물에 설거지를 했으며, 재래식 변소를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단다.  북향마을에 북향집이라 겨울엔 춥고, 양철지붕이라 여름엔 한없이 덥고, 차를 사기 전까지 두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다녔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잠깐 소풍을 나온 듯 가볍게 살았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15년을 살았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수많은 갈등과 인내와 눈물의 바다를 건너온 걸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어떻게?  잠깐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어렵고 불편하고 괴로운 생활을 15년씩이나 억지로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우리가 무슨 대단한 수행을 한다고, 내가 무슨 불굴의 투사라고 그 세월을 참아내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단점을 뜻밖에도 쉽게 받아들였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린 그저 '잠깐 소풍을 나온 것처럼 가볍게' 살았던 것이다.  아내는 그걸 '소꿉장난'이라고 표현했다."    (P.122)

 

이 책에서 작가는 화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자연에 동화된 순수한 감정으로 일상을 그리고 있다.  마치 마른 낙엽에 싸락눈이 톡톡 튀기듯 탱글탱글한 일상이 눈에 보일 것만 같다.  대문 앞에 달아 둔 우편함에 딱새가 둥지를 튼 이야기, 양철지붕 위로 감 떨어지는 소리, 비오는 저녁 강 건너편에 아른거리는 불빛, 구수하고 훈훈한 시골 이웃의 인심과 에피소드, 삶과 그림 사이에서 고뇌하며 한때 신비주의자로 살았던 젊은 시절 등 여러 이야기들이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한때 시인을 꿈꿨던 작가의 문장력이 전업 화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입에 착착 감긴다.

 

"살구꽃이 아직 채 피지도 않았는데 벌들은 벌써 급하다.  마구 날개를 휘저어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빨리 꽃이 열리라고 주문을 외고 마술을 건다.  그래서인지 벌들이 날기 시작하면 살구꽃은 금방 핀다.  꽃잎이 열리면서 향기는 연한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향기는 다시 벌을 부르고 벌들은 채 피지도 않은 꽃잎을 마저 열어젖힌다.  그윽하고 푸른 봄밤일수록 맑은 향기는 더욱더 멀리 퍼져나간다.  햇살이 좋은 봄날 아침에는 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 서 있어 볼 만하다."    (P.163)

 

창의성을 요하는 예술가라면 도시보다는 오히려 시골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시골에 비해 소재가 궁하다.  겉돌기만 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그날이 그날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자연은 매일매일이 다르다.  그 속에서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겠다.  다만 이것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교감일 때만 그렇다.  도시에 살다 귀촌한 작가의 책을 가끔 읽곤 하는데 다들 비슷비슷한 내용인지라 웬만큼 인내력을 발휘하지 않고는 다 읽어내기가 어려웠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으로 시골에 동화된 사람의 글과 머리와 눈으로만 스케치하듯 쓴 글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문장력이 좋은 작가라고 할지라도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면 독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오병욱 작가는 프로 글쟁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눈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눈의 성긴 입자가 소리를 흡수하는 까닭에 눈이 올 때는 오히려 평소보다 고요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눈 오는 소리란 결국, 눈이 내리는 고요, 눈이 쌓이는 침묵, 혹은 눈이 덮이는 적막 같은 게 아닌가.  남정네들은 천둥 간은 제 코고는 소리도 못 듣는데, 아낙네들은 눈 내리는 고요를 듣는다니..."    (P.204)

 

오병욱의 산문집을 읽은 덕분에 내 눈에 끼었던 백태가 사라진 듯하다.  오늘 낮의 하늘처럼 맑고 청명해진 느낌이다.  선연한 핏빛 노을과 서늘한 산그림자, 깔깔대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깊은 한숨소리, 청아하게 들리는 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와 짙은 우울이 묻어나는 비둘기 울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고운 선율을 지어내는 그곳이 그립다.  그곳에 가면 흐릿했던 일상의 모습들이 벚꽃처럼 분분히 날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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