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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은 나의 것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사유는 언제나 삶의 시작이 아닌 끝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이 탄생하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 사유의 출발점을 각자의 삶이 마감하는 '죽음'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여러 걸림돌이 있다. 죽음의 시기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거나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상상만으로 세세히 피력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사유가 비논리적이고 허점투성이의 허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는 2015년 9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이듬해 9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고통스러운 투병과정 속에서 최후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출간된 책이 바로 <나의 죽음은 나의 것>이다. 확정적인 죽음 앞에 선 인간이 사유의 출발점을 선명하게 인식하면서 쓴 이 책은 '죽을 권리 Right to Die'를 외치는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철학적 사유의 진실성을 아주 조금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우리 모두는 자신이 마치 영원히 살아남을 것처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가장 고독한 사람에게조차도 집단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죽음은 명백히 개인적인 일이자, 그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에게 죽음의 권리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에 해당한다. 죽음의 권리야말로 인간을 속박하는 종교적, 사회적 구속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낼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자유의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축도縮圖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뻔한 목적으로 내세우는 앞뒤가 맞지도 않는 근거와 위선적 주장에 강력하게 맞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p.38)
작가가 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론 '간암 말기'라는 기정사실의 죽음이, 그것도 가까운 시일 안에 도래할 죽음이 존재했었지만 우리가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시일의 길고 짧음은 존재할지라도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작가와 같은 철학적 사유를 마냥 유예하거나, 기피하거나, 그런 글조차 읽는 것을 꺼리거나 삼간다는 건 오히려 비겁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도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선택의 자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욥 증후군'을 앓고 있는 종교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소멸'이라는 공포에 압도되어 신의 존재를 부인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종교에 세뇌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법체계 앞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은 절망하게 된다.
"죽음의 권리를 실천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일은 없다. 자기만의 방식에 따라 살아온 사람만이 죽음을 자기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대부분은 정해진 조건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p.50)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책자도 속속 발간되고 있다. 나 역시 몇 권의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다. 나에게 '죽음'이라는 주제는 공포스럽지만 때로는 나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주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안락사'를 위주로 쓴 책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병마와 싸우는 고통과 천문학적인 의료비도 문제이지만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는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은, 시몬 베유가 말했듯이, 인간에게 최악의 비극이자 모든 형식의 노예화의 근본원인이다. 나는 거부한다. 기억 속에 갇히는 것도, 과거의 수인이 되는 것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미래에 고뇌하며 무릎 꿇는 것도. 생애 처음으로 나는 의식적으로 지금을 살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새로운 하루하루의 날을 세어가며 치열하게 갈망하는 것은 나의 죽음이 내 삶의 신조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나의 궁극적 허영심이다." (p.90)
흐린 하늘에서 휴일의 우울이 압박하듯 가라앉는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내게 주어졌던 짧은 시간의 자유도 월요일 출근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마른 낙엽이 쌓이듯 내가 소모한 시간들은 내 기억의 저편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죽음'을 주제로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변화무쌍한 계절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한다. 나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