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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리텍콘텐츠 / 2026년 10월
평점 :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열전'은 한번쯤 꼭 읽어보라는 권유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만 들어도 골머리가 딱딱 아프고 읽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권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일만 반복해 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쯤의 한가한 어느 주말 오후에 자주 가는 도서관의 서가를 눈으로만 훑고 지나치던 중 눈에 띄었던 게 <사기 열전 1,2(민음사 간)>이었다. '딱히 읽을 책도 없는데 이 참에 <사기 열전>이나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열전'을 완독함으로써 사마천이 밝히는 3000여 년 전의 역사와 그 시대의 인물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세가.열전.서(書).표(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그중 '열전'만 겨우 읽은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서에 기록된 제왕과 제후의 그늘에 가려져 그들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열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지침서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열전'의 일독을 권했던 여러 지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결국 '인간이라는 종(種)이 거대한 역사의 물살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기록한 가장 리얼한 인간학 보고서입니다.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사기』는 동양 역사 서술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인문학적으로는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답을 제시합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이번에 나는 인문학자 김태현이 펴낸 <사람을 읽는 힘, 사기 열전>을 읽음으로써 '열전'을 재독한 셈이 되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의 공백은 내 기억마저 희미하게 했던지 어떤 부분에서는 기억이 뚜렷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물론 저자는 <사기>에 실린 '열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저자 나름의 관점으로 주제를 정하여 인물을 재분류하고,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PART 1 '야망과 처세: 판을 읽고 기회를 잡는 방법', PART 2 '권력의 민낯: 부귀영화와 뒤틀린 욕망의 끝', PART 3 '리더십과 용인: 사람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PART 4 '신념과 의리: 시대를 거스르는 불멸의 가치', PART 5 '전략과 통찰: 난세를 돌파하는 사유의 힘', PART 6 '경계인의 초산: 외면받은 영웅과 시대의 이면', PART 7 '인생과 허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마주하기'의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체계적으로 짜맞춘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상인 출신으로 진나라의 재상에 올랐던 여불위의 일대기를 다룬 '여불위 열전'은 '열전' 전체를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일지 모른다.
"<여불위 열전>은 상인의 이야기를 통해 투자와 권력, 그리고 인생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인에게 매우 날카로운 교훈을 줍니다. 여불위는 미래 가치를 지닌 자초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천하라는 거대한 이익을 손에 넣었으나, 자신이 만든 시스템인 진나라와 진시황에 의해 파멸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성공은 도리어 자신을 삼키는 독이 되며, 성공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감당할 그릇과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절제의 미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p.25~p.26)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나는 '열전'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내 안에 잠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인간 본성의 여러 형태가 '열전'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이는 까닭이다. 권력과 부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서 그 욕망을 현실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극은 과도한 욕망과 절제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화근인 줄 알면서도 덥석 움켜잡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굴원과 가생의 이야기는 고결한 이상과 뛰어난 식견을 지닌 지식인이 간신의 질시와 군주의 오판, 그리고 권력의 냉혹한 질서 속에서 어떤 비극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의 현실에 맞추어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지식인의 오래된 처세의 딜레마를 깊이 품고 있습니다." (p.397)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요즘, 오늘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오래전에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던 나로서는 가을비 내리는 쓸쓸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 한 잔의 차와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 한켠에는 헛헛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을 달래줄 한 줄의 글귀와 깊은 깨달음의 경구가 고픈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채근담>이나 읽어야겠다. 얼마나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