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에 의하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라고 귀결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도무지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을 그 누구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평생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낼 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


"삶은 한 치씩 꾸역꾸역 나아갔고, 그녀는 살아 있었다. 부당하게도, 미치고 팔짝 뛰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어떤 날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걸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살금살금 흘러갔고, 매 순간 주위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p.388)


영국 작가 루시 스티즈의 소설 <에티의 여름>을 읽었던 건 지난 추석 명절의 연휴 기간 동안이었다. 그닥 길지 않은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꺼내 읽곤 했다. 학계에 몸담고 있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작가가 소설이 쓰고 싶어 1년 동안만 집필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후 12개월 만에 나온 초고가 억대의 선인세와 두 권의 출간 계약이라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도 놀랍지만 연구원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지 단 1년 만에 한 편의 원고로 영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된 것 역시 경이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잘 짜인 구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소설의 잔상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곤 했다.


"왜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 없을까? 왜 이미 일어난 일을 전부 되돌릴 수 없을까? 지난 3년의 실타래를 다시 감아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으리라. 형과 어머니를 집에 가둬두고 온갖 방법으로 둘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인생은 교묘한 함정을 너무 많이 감추고 있다."  (p.112)


소설은 신생 잡지사의 기자인 조지프가 유명한 은둔 화가 타르튀프로부터 달랑 "오라(Venez)"는 한 단어만 적힌 편지 한 장을 들고 그가 사는 프로방스 지역의 외딴 농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20년,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는 세상과 단절한 채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를 돌보며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인 에티뿐이었다. 에티는 조지프를 새 그림의 모델이라 둘러대며 집 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오렌지를 든 청년'의 실제 모델이 되어 타르튀프의 화실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지만, 오후에는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일곱 살에 엄마를 잃고 삼촌인 타르튀프의 삶을 보조하면서 외롭게 성장했던 에티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전쟁을 겪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상처는 다른 듯 닮아 있다. 타르튀프로부터 도망쳐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행을 선택했던 에티의 엄마는 끝내 죽음이 되어 돌아왔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어린 에티는 스스로의 힘으로 글을 익히고, 요리를 배우고, 삼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왔다. 삼촌은 에티의 완벽한 보조 덕분에 오직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은 비싼 가격에 팔렸다. 반면 매사에 유능했던 형 루퍼트가 자진하여 전쟁에 나갔던 반면 조지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대에 들어가 그림을 배운다. 전쟁이 끝나고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안은 채 귀가한 형과 독감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조지프는 미대를 그만두고 작가가 된다. 비겁한 겁쟁이라는 질타는 그의 마음에 온전한 짐으로 남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자랐던 에티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에티는 결국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에 삼촌을 속이고 간호사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던 중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시 삼촌 곁으로 되돌아온다.


"짓이겨진 몸뚱이를 보고도 몸서리를 치거나 숨을 헉 들이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자부심의 징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의연한 태도가 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절대 손이 떨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움찔하거나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엉킨 현장이었다."  (p.364)


"아미르와 함께 언덕에 서 있던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엄마가 느꼈던 충동을 이해했다. 도망치고 싶은 욕망.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욕망. 엄마가 미국에 묻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죽어서까지 다시 생 오귀스트로 끌려왔다는 사실이 어딘가 서글펐다. 엄마는 끝내 생 오귀스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p.380)


타르튀프의 눈을 피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조지프와 에티. '오렌지를 든 청년'이 완성된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던 조지프는 비로소 타르튀프의 비밀과 에티의 감추어진 재능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쩌면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타르튀프의 비겁한 폭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삼촌을 보조하면서 허드렛일만 강요받았던 에티였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삼촌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사랑을 일궈가는 두 사람. 에티가 타르튀프의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그림이 도매상에게 버젓이 인계되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사랑과 불타버린 그림에 대한 비밀은 어떤 방식으로 밝혀질까?


가을이 깊어지면서 독서에 대한 열정도, 소소한 일상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욕심도 시나브로 옅어지는 느낌이다. 뜨거운 열기 탓에 바깥에서의 일상이 도통 궁금하지 않았던 지난여름과는 달리 숲의 변화도,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도, 저무는 햇살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어느 것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게 없다. 어제는 시골에 가서 떨어진 알밤을 한 되쯤 주워 왔다. 밤을 삶는 일도, 껍질을 벗겨 속살을 발라내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밤을 줍기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이렇게 밖으로만 나돌다 보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길 일이 도무지 없겠다 싶었다.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 리뷰를 남길 자신은 없지만 가슴에 남는 어떤 책은 책을 읽었다는 작은 표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 문구의 스탬프를 찍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