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24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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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소설 보다> 여름 호에 실린 '그 개와 혁명'을 읽어보려고 했던 것은 순전히 예소연 작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이기도 한 '그 개와 혁명'은 작품의 내용보다 1992년생인 신예 작가 예소연에 의해 발표된 작품이라는 데 더 큰 방점이 찍혔던 사실을 나는 기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등단 4년 만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는 쾌거도 예소연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이름도 잘 모르는 신예 작가가 어떻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예소연 작가의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상문학상'의 권위가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태수 씨의 죽음에 관해 우스갯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것은 죽음을 도모하며 삶을 버티는 행위였다. 태수 씨는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두 가지는 태수 씨에게 전혀 다른 것이었다."  (p.80 '그 개와 혁명' 중에서)


'이데올로기를 압도하는 혁명적 사랑이자 가히 혁명적인 포용의 서사'라는 심사위원회의 평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소연이라는 젊은 작가가 내놓은 이 한 편의 단편소설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받은 느낌은 놀라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태수 씨는 죽기 전까지 통 잠을 못 잤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아빠라는 호칭 대신에 '태수 씨'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다루는 것도 무척이나 이채롭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파격은 80년대 PD계열 운동권이었던 '태수 씨'가 NL계열 여자와 머리핀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딸인 수민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제사상을 차릴 때 손도 까딱하지 않는 등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태수 씨가 아픈 뒤로도 조금씩 기뻐했다. 물론 많이 슬펐지만, 슬픈 와중에도 틈틈이 기뻐했다. 우리는 태수 씨가 아프고 나서 태수 씨의 먹는 것과 싸는 것에 모두 집중하고 좋아했다. 나는 태수 씨가 미음을 한 숟가락 뜨거나 통잠을 자면 온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변을 보면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두었다."  (p.67)


아들이 없는 집안의 장녀인 수민은 동생 수진과 함께 태수 씨의 병간호를 도맡아 하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태수 씨의 모습을 비로소 알게 된다. 태수 씨가 수민, 수진과 함께 자신의 장례식을 도모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세대를 넘어 한 세대를 함께 살았던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80년대 운동권의 시각에서 본 요즘 애들과 옛날 사람으로 갈린 너와 나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를 공유하는 '태수 씨'와 '수민'으로 재결합하는 순간이었다. 수민은 자신 역시 태수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끝내 수민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태수 씨와 함께 장례식을 엉망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태수 씨를 따르던 애완견 '유자'의 등장이었다. 평소 친구가 많았던 태수 씨와 달리 손으로 꼽을 정도로 관계의 폭이 넓지 않았던 수민. 두 사람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있잖아, 수민아.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p.73)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떠올렸다. 물론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완성하였던 반면, 예소연 작가는 공통분모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빠와 딸의 관계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죽음 저편에서 바라보는 인간 개개인의 삶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리고 태수 씨가 없는 장례식장에서 태수 씨를 따르던 애완견 '유자'가 난장을 친들 뭐가 그리 대수이겠는가.


서로를 향해 새해 인사를 나누었던 게 꼭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3월의 마지막주를 보내고 있다. 등산로에는 조팝나무에도, 참나무의 어린 묘목에도, 찔레나무에도 모두 연녹색의 여린 잎이 돋아나고 있다. 인근 공원의 벚나무도 꼬마전구를 밝힌 듯 환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화마가 휩쓸고 간 남녘에는 죽음과 공포의 그림자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데 봄의 생명력이 저리 환해도 되는가. '산불 피해 모금'에 온라인 송금을 한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고 느끼는 알량한 나의 양심이 못내 부끄러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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