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어가는 순간 - 최선의 나를 찾아서
헤르만 헤세 지음, 이민수 옮김 / 생각속의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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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하면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두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갇힘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사실 두 소설은 한참 어른이 된 후에 읽어도 좋고, 아직 성장기에 있는 좀 이른 나이에 읽어도 더없이 좋은 책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읽어도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제곤하는 좋은 소설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성장소설'의 목록에 편입됨으로써 어른들은 자신들이 이미 읽어야 할 시점을 놓쳤다는 이유로, 그리고 아이들은 두 소설이 단지 '성장소설'의 목록에 편입되었다는 이유로 미처 읽어보지도 않은 채 유치한 내용의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두 소설은 재독 삼독을 하여도 그때마다 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주는 좋은 소설인데 말이다.

 

"똑똑한 말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정말 의미가 없지. 자기 자신에게 멀어질 뿐이야. 자기 자신에게 멀어진다는 것은 죄악이야. 우리는 완전히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해. 마치 거북이처럼 말이야."  (p.66 '데미안' 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잠언집 <내가 되어가는 순간>은 헤르만 헤세의 저작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던 사람이건 헤세의 저작이라면 웬만한 건 다 읽어보았던 사람이건 상관없이 헤세가 전해주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을 느끼게 하는 문장들을 여럿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헤세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려 뽑은 문장들을 찬찬히 읽고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는 까닭에 오늘처럼 나른한 휴일 오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일 수도 있다. 어느 잠언집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책의 두께가 얇다고 해서 금세 다 읽겠거니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어쩌면 책 속 한 문장에 사로잡혀 하루를 다 소비할지도 모른다.

 

"마흔과 쉰 사이 십 년은 열정적인 사람과 예술가에게 항상 위기의 시절이자 불안의 시기이다. 종종 자신의 삶과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 힘든 때이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평온한 시절이 찾아온다. 나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시절이자 투쟁과 갈등의 시절인 청춘이 아름다웠ㄲ던 것처럼 나이가 드는 것과 성숙해지는 것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p.113 '아들 브루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와 유서 깊은 신학자 출신의 외가를 두었던 헤세였지만 정작 본인은 엄격한 삶의 굴레와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였던 까닭에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것이 어쩌면 여러 대작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고집스러운 그의 성향이 더욱 강화되어 평생 자기만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헤세 자신도 그와 같은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던 탓에 자신을 개인주의자로 칭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어떤 정해진 길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에 고집스럽게 몰두했다.

 

"우리에게 인격은 사치품이 아니라 실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살기 위해 필요한 산소이자 반드시 필요한 내적 자본이다. 내가 이해한 예술가란 스스로 살고 있다는 느낌과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꼭 필요로 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힘의 근원을 인식하고, 그 고유 원칙에 따라 자기 자신을 구축하기를 진실로 원한다. 그러므로 어떤 종속적인 활동도 원하지 않고, 그런 삶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예술가다."  (p.159 '게으름의 기술' 중에서)

 

책의 구성은 '나를 찾는다는 것, 나를 발견한다는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세 가지 키워드로 되어 있는데, 각각의 주제별로 자기를 찾아가는 삶에 대한 헤세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던 헤세의 통찰에서 보듯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걸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선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허락된 평생의 시간을 쏟아부어도 그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는 평생 타인의 길을 부러워하며 나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시도이고 오솔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는 조용히, 어떤 이는 분명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최선을 다한다."  (p.17 '데미안' 중에서)

 

하늘이 맑고 분분한 꽃잎처럼 애틋했던 하루. 정원을 가꾸며 자연에 대한 글과 그림을 그린 작가로도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잠언집을 읽는다는 건 덧없이 흘렀을 이 봄날의 하루를 충만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파트 주변의 도로를 질주하는 많은 차량들. 그들은 과연 내비게이션도 없는 자신의 인생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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