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정국으로부터 우리가 깊이 깨닫게 된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걱정 없이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 원하는 곳 어디든 하시라도 훌쩍 떠날 수 있고,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예약할 수 있고,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양손에 막대풍선을 들고 야구장을 찾을 수도 있고... 이러한 일상의 풍경들이 특별한 경험으로 뒤바뀐 작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들 그 모든 일들이 마치 몇십 년 전의 오래된 기억인 양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하루에도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게 마련, 코로나19로 인해 칙칙했던 대기질이 무척이나 깨끗해졌다거나, 개인위생 수준이 높아지면서 감기 환자가 급감했다거나, 비대면 회의나 재택근무의 효율성이 부각되었다거나 여러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직장인들이야 달라진 변화를 쉽게 체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며칠 전 공연 예술 분야에서 일을 하던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감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잘나가던 친구 중 일인이었기에 친구들로부터 따가운 시샘의 눈총을 받기도 했었는데 막상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쉽게 진정될 줄 알았던 코로나19의 여파마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친구는 딱히 할 일도 없고 널린 게 시간뿐인(그렇다고 백수는 아니지만) 여유로운 어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쓴 피터 빅셀을 그가 평소에 흠모해 마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예전과는 다르게 의욕이 꺾일 대로 꺾인 친구의 모습은 꽤나 큰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지만 과거 그가 보여주었던 뻣뻣하고 기고만장했던 안 좋은 모습 때문인지 친구들은 그의 사정이 딱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듯했다. 친구는 자신의 성공이 그저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만 여겼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관객에 대한 고마움은 겉치레 인사로만 존재했을 뿐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감사는 눈곱만치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코로나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관객은커녕 예술에 대한 필요성마저 의심되는 요즘 자신의 재능은 그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음악이든 영화든 스포츠든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재능은 한낱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수개월의 코로나 정국이 비로소 그를 사람으로 만든 듯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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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2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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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