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하라는 말이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더러 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하라는 뜻은 알겠는데 일을 시킨 분의 성격으로 보아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실수조차 못 본 체 그냥 넘길 만큼 무던한 성격이 아니라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추자니 일을 왜 그렇게 설렁설렁했느냐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아 걱정이고, 하나의 작은 실수도 없이 일을 완벽하게 끝내자니 시간이 부족할 듯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잠을 줄여서라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노력하곤 한다. 어쩌면 내 욕심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킨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신경 쓰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고 그때마다 그러마 대답은 쉽게 하지만 말처럼 따라주지 않는 게 행동이고 보면 가까운 이들의 충고를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구나, 하는 자책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 가득 밀려오곤 한다.

 

그와 같은 경우는 또 있다. 대하기 어려운 분의 집을 방문했을 때 편하게 있으라는 말 역시 지키기 어려운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불편해하는 내 표정을 들킬 때마다 내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는 말을 연거푸 듣게 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말이지. 날씨가 오늘처럼 무덥고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는 요즘, 한 마디의 말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생각해 보면 개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당위(當爲)에는 저항이 따게 마련이다. 예컨대 구성원 모두에게 준수를 강제하는 법이든 강제성은 없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그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믿는 관습이나 도덕 따위에도 크든 작든 저항은 있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의 예방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땀이 흐르고 호흡마저 가빠지면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게 인간의 공통된 심리인가 보다. 타인을 위해 또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는 개개인의 선한 심성과 강한 도덕심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반복된 훈련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낮 시간에 잠시 낮잠을 잤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무기력한 감각과 무분별한 현실 감각으로 인해 먹통이 된 컴퓨터처럼 머리가 멍하다. 부분일식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그리고 오늘은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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