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든 개인이든 몰락의 시작은 무분별한 감정의 표출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미국이 이란에게 보여준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표적 살인과 그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취해진 이라크 미군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비단 어느 한쪽의 몰락으로 끝이 날 것 같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서방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전력이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본토와의 거리가 멀고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나 선제적인 공격에 대한 부당함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만큼 동맹국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중동지역에서의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것도 미국에게는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다혈질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미국 최대의 실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이란 양국은 몰락의 길로 서서히 진입할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예는 무수히 많지만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진중권 씨에 대한 논란도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JTBC 신년 토론회에 참여했던 진중권 씨는 자신의 몰락이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부당한 처우에서 비롯된 것인 양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부끄럽거나 참담할 정도로 추한 모습이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러했으니 곁에서 지켜보던 유시민 이사장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인간이 이렇게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구나!' 하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토론장에서 보여준 유시민 이사장의 태도가 꼭 옳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자신을 공격하는 진중권 씨에 대해 적당히 화를 내고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게 옳은 태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어떤 말로 나를 공격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 있는 척,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껏 여유를 부린다는 건 감정을 표출하는 당사자의 심정을 더욱 참혹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진중권 씨의 참담한 모습은 한 인간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준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는 건 자신의 감정에 그 사람의 이성이 통째로 잠식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 경전 중 능엄경에 이르기를 "내가 손가락을 누르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지만 그대가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煩惱)가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인간이 오욕칠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욕칠정으로 인해 자신의 사람됨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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