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밤새 뒤척였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게 그저 의례적인 행사일 뿐 내가 과거에 흘려보냈던 무수히 많은 나날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남들처럼 뭔가 근사한 새해 다짐도 하고 형식적으로나마 덕담도 나누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담(그야말로 부담이다)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이런저런 고민이 나를 푹 잠들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게 아닐까. 몇몇 새해 다짐인들 반드시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한 해 나는 시골에 사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내 삶의 방향이 바뀌고, 울고 웃고 공감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분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슬프고 안타까웠던 일들이 훨씬 많아서 나 역시 그 절절함에 가슴이 젖었더랬다. 물론 새해 첫날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해 내가 만났던 한 분 한 분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고영순(가명) 할머니를 만났던 날은 겨울 햇살이 무척이나 따사로웠던 하루였다. 산간 지역이라 아침 기온은 낮았지만 낮이 되자 좁은 마당의 누렇게 메마른 잔디 위로 햇살이 한가득 쏟아졌다. 방문 앞에 놓인 허술한 평상에 믹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앞으로 십 년이 고비가 아니겠어? 그쯤 되면 갈 사람은 다 갔을 테고 마을도 사라지겠지." 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방 안에는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이 가득했다. "저 사람들도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다 안 아픈 데가 없는 사람들이야. 골골 십 년이면 그것도 끝이 나겠지." 평상 옆으로 놓인 빈 항아리들이 쓸쓸함을 더했다.

 

오늘은 2020년의 첫날, 하늘은 끄물끄물 어둡고 나는 그날처럼 믹스 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놓고 있다. 삶이 부실해지는 이유는 내가 단단하지 못해서라고 자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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