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난'이라는 매우 엄격한 스승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마치 때가 되면 사라지는 우리의 삶처럼 결국에는 아무리 혹독한 '가난'도 지나가게 되어 있다. 삶을 유지하면서든 그렇지 않든, 아무튼.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설혹 잃는 게 있다 치더라도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뼘쯤 더 성장하게 된다. 그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만났던 '김영수(가명)' 할아버지는 근엄한 외모와는 달리 말이 많은(?) 분이었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여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다가 오륙 년 전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나와 만났을 당시 할아버지는 허리가 불편하여 복대를 착용하고 계셨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젊은 시절에는 안 해본 것 없이 별별 직업을 전전하며 고생도 숱하게 했다고 하셨다. 슬하에 21녀를 두었는데 장성하여 다 일가를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자식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며 웃으셨다. 지금은 노인이 된 두 분은 시골에서 가족들이 먹을 농사만 짓고 있지만 귀향한 주변 이웃들 중에는 대규모 경작을 하면서 자금과 기술력을 갖춘 대규모 기업농도 있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지금은 잘 만하면 농사도 할 만한 직업이 되었다며 나도 더 나이가 들면 농촌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보라며 귀향을 적극 권하기도 하셨다.

 

불가능처럼 보였던 공수처법이 너무도 쉽게 통과되어버린 오늘,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듯한 농민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도 공수처법과 함께 유순한 심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검사로 근무하는 나의 친구는 검사가 마치 3D 업종인 양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검사를 1순위로 선택하는 데는 뭔가 혜택이 있다는 것인데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그게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돈인지, 권력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공수처가 탄생하는 내년에 선발되는 검사는 그들이 지금껏 바라마지 않았던 혜택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정의를 세우려는, 온 국민이 바라는 그 가치를 세움으로써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로 채워질 것인지... 어쩌면 우리는 그런 정의로운 검사들을 처음으로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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