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을 잃고 나면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삶을 좀 더 대범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식들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정작 본인은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아쉬운 삶을 마감했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할라치면 '그렇게 갈 걸 뭐하러 그렇게 소심하게 살았어요?' 하는 공허한 질문을 허공을 향해 묻게 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렇게 산 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과거로 변하게 하는 게 죽음이라면 무형의 영혼이 유형의 어떤 것으로 변하는 사물화의 과정 또한 죽음이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 뿐 모든 변화의 순간에는 쾌락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산 자는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게 죽음의 순간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포에 깃든 영혼을 죽여 자신의 뇌를 끝없이 사물화 시키는 마약 중독자들을 볼 때 우리의 죽음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우리는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했다. 가수 설리 씨에 이은 가수 구하라 씨의 죽음. 그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렇게 쉽게 갈 거였으면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싫은 사람을 향해 욕이라도 실컷 하고 개차반 소리를 들을지언정 분풀이라도 실컷 하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 판단을 새롭게 하고 삶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우리가 꼭 체험해야 할 것들의 순서를 다시 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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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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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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