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더위가 전국 곳곳을 후끈 달구고 있다. 이런 날씨에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면 웬만한 소식은 모두 짜증부터 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사실을 감정이 두 겹 세 겹 에워싸는 꼴인데 이게 꼭 오늘처럼 날씨가 몹시 더울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하다. 게다가 어떠한 사실을 이념이나 감정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담백한 심성을 갖는다는 건 개인의 수양이나 지적 소양, 또는 강한 인내심의 발현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최근에 벌어진 일들만 보아도 그렇다. 자유당의 모 국회의원이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을 유출함으로써 국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음은 물론 그것은 자유당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 수 있을 듯한데 그것마저 공익이나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며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 12일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에서 황 대표가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그걸 굳이 종교의 자유로 변명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차라리 자신의 종교는 개신교이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불교와 가까이할 의사가 없다고 떳떳이 밝히는 게 더 자연스럽다. 최근에 공개된 '최순실-박근혜=정호성 녹음파일'을 들어보더라도 지난 정부는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마저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실은 그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이태동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여름 소나기의 정열이나 자연과 함께 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풍요로움으로 인해 일 년 사계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고 썼다.

 

"그러나 풍요로운 여름은 낭만의 계절만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먹구름과 천둥소리 속에 무덥고 길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름은 그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낼 수 있는 수많은 전설을 잉태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여름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뭇 생명들을 무성하게 자라게 하고 삶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뜨거운 생명력이 이 계절에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묘지 위의 태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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