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즐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습관적으로, 또는 막연한 의무감으로 아침 운동을 하는 까닭에 무슨 일만 있으면 하루쯤 거르는 게 어떨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곤 한다. 예컨대 전날 저녁에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몸이 찌뿌듯하다거나 미세먼지 수치가 조금 높다거나 해도 '에이, 오늘은 쉬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을 거른 날이면 몸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고 누가 캐묻는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수십 년 동안 아침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골골 백세'를 떠올릴 만큼 겨우겨우 또는 꾸역꾸역.

 

아침 운동을 꾸준히 이어오는 까닭에 새벽 등산로에서 자주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주로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나이는 몰라도 대략 칠십대인지 팔십대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지라 며칠만 눈에 띄지 않아도 은근한 걱정을 하게 된다. 물론 집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할지라도 굳이 찾아갈 것도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그 후로는 영영 보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이다. 이사를 갔을 수도 있고, 다른 등산로를 택했을 수도 있고, 등산이 아닌 다른 운동을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우울한 추측 속에서 여러 날을 지내게 된다.

 

오늘도 나는 지난해 겨울부터 통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할머니는 당뇨를 앓고 있는데 새벽의 찬 공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따라 겨울에는 10시쯤, 여름에는 6시쯤에 운동을 나오는 것으로 시간을 바꾸는 바람에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5시 30분에 집에서 나오는 나와는 마주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내려가는 나와 이제 막 산 능선에 도착한 할머니와의 반가운 만남은 아주 짧게 끝이 났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나오라며 떨떠름해하는 나의 손에 교회 주보를 쥐어주었다.

 

교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올해 초 한기총의 대표회장에 선출된 모 목사는 어느 목회자 세미나에서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를 내려보게 하는 옛날 방법이 있다."고 운을 뗀 후 "여집사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빤스 벗으라면 다 벗는다. 목사가 벗으라고 해도 안 벗으면 내 성도가 아니다. 한 번 자고 싶다고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라는 성희롱성 발언을 서슴없이 한 적이 있다. 목사, 언론인, 고위 공직자 등 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온갖 특혜를 누려온 사람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괴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김학의가, 정준영이, 모 신문사의 사주가 그런 괴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사회가, 그들의 선민의식이 적당한 환경을 마련해 주었던 건 아닌지.

 

나는 천주교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착실한 신앙인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침에 만난 할머니의 권유에 따라 냉큼 개종을 할 정도로 허약한 신앙인도 아니다. 할머니가 쥐어 준 교회 주보를 보며 나는 문득 우리 사회가 길러낸 거대한 괴물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오늘도 몸피를 키우며 성장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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