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편의 중학교는 체육대회를 하는지 종일 소란스러웠다. 쾌청한 하늘에 학생들을 통제하는 선생님의 마이크 음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운동장 담벼락을 따라 커다란 그늘막이 쳐지고 봄을 닮은 아이들이 푸르게 뛰었다. 5월의 뙤약볕이 운동장 가득 쏟아지고 햇살도 아랑곳 않는 푸른 생명력이 봄처럼 빛났다. 살아있다는 기척은 바로 저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송홧가루 뽀얗게 날리는 요즘 산에는 각시붓꽃이며, 제비꽃이며, 애기똥풀꽃이며 이름도 모르는 꽃들로 가득하다. 조심을 하느라고 해도 길섶에 내려앉은 송홧가루를 피할 방법은 없다. 생명이 묻어나는 5월은 언제나 분주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챙겨야 할 기념일도 많지만 지인들의 경조사도 만만치 않다. 부산스러운 하루하루가 쉼 없이 흐르고 차분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김소연 시인의 신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를 읽고 있다. 오래전에 나온 <마음 사전>을 나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 시인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을 이렇게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구나.' 감탄하면서 말이다. 그랬던 까닭에 시인의 새책은 그저 반가웠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는 무관한 일인 것만 같았다. 설렘은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움을 달래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그리운 사람과 헤어져 돌아섰을 때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운'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여 '사람'만을 남겨둔 채로 그 사람을 대하는 일. 그때부터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생각해온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살아온 그 사람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리운'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고 '사람'만을 남겨둔 채로 그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걸 시인을 통해 배운다. 생명이 묻어나는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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