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성형외과를 개업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던 건 어제 낮이었다. 시간이 되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친구의 말에 '이 놈 또 부부싸움을 대판 한 거 아냐?'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지만 드러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마 하고 선선히 승낙을 하고, 약속 장소까지 일사천리로 잡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약속 시간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했건만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사라는 직업을 핑계 삼아 약속 시간에 늦어도 된다는 생각은 애저녁에 버리는 게 좋다는 타박을 약속 시간에 늦을 때마다 여러 번 반복했건만 친구는 이번에도 늦을 듯했다. 식탁 위에 물 한 잔을 받아 놓고 멀뚱히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참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환자가 와서 말이야..." 하는 틀에 박힌 변명을 늘어놓으며 친구가 나타난 건 약속 시간이 30분쯤 지난 후였다. 늘 그래왔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가버릴까?' 하다가 기왕 왔으니 올 때까지 기다릴까?' 하는 두 가지 상반된 질문을 놓고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친구의 변명도 한동안 이어졌지만 혼자 기다렸던 나의 시간은 이미 어쩔 수 없는 과거가 되었고,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할 무용한 시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나 나나 담백한 한식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촌놈인지라 메뉴 선정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두부전골이 맛있다는 친구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전골냄비에 코를 박은 채 허기를 달래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친구는 버닝썬 사태 때문에 걱정이라며 내 쪽을 쳐다봤다.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갑자기 웬 버닝썬 사태를 들먹이냐고 타박을 하자 친구는 아주 진지한 낯빛으로 자신의 말이 장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시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친구가 버닝썬 사태를 거론하니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의 말인 즉 자신의 병원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남자들도 미용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남성 고객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그런데 버닝썬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도 남자가 잘 생기면 인물값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남성 고객이 증가하던 추세가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버닝썬 사태가 자신의 돈벌이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 나는 친구의 말에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버닝썬 사태는 인물이 잘생긴 애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돈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사달이 난 거야. 돈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너도 적당히 벌어." 친구는 나의 말에 몇 번인가 반박을 했지만 굳이 이겨먹을 심산도 아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가 90년대 초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놀랐던 건 캠퍼스를 활보하는 청춘들이 푸르른 생명력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진한 화장과 명품 옷으로 자신을 뽐내려는 각축장이 되어가던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달리 당시의 호주 대학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에 티셔츠 한 장을 걸친, 오직 자신의 젊음을 누군가에게 내보일 뿐 다른 꾸밈이라고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대학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학 교정은 푸르른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듯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제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그때 생각을 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자신의 미를 뽐내기 위한 각축장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한 아비규환의 장이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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