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의 위로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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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책에 관해서만큼은 인심이 후한 편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여기서 인심이 후하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아낌없이 선물한다는 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이나 속내를 두려움 없이 내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책을 고르는 취향이나 기호만 비슷하다면 아주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지기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도 한다. '공감'이라는 말로는 뭔가 미진한, 책을 통하여 상대방의 어린 시절까지 모두 알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은 다른 취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책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것이다.

 

 

조안나의 독서 에세이 <책장의 위로>는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연령이나 성별, 출생지나 경제적 여건 등 모든 조건을 떠나 책을 통하여 작가와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을 듯한 그런... 2011년에 나왔던 <달빛 책방>을 재개정하여 출간했다는 <책장의 위로>는 총 6장에 37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01 사랑은 떠나도 책은 남는다', '02 좋아서 하는 일도 힘들 때가 있다', 03 잊고 싶은 기억은 꼭 밤에 떠오른다', '04 읽다 보면 혼자가 아닌 날이 많다', '05 피곤한 날에도 읽다 잠든다', '06 마음속에 나만의 도서관을 만든다'의 각 장에는 여러 이유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처지는 날 나를 위로하고 다시 기운을 북돋워 줄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낙하하는 저녁>에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고, 그 어떤 기대감 없이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담백한 이별이 내리고 있다. 그런 이별을 꿈꾼다면, 보약을 달이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이 소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지독한 이별을 겪은 후엔 평소 좋아하던 일을 극단적으로 정성을 기울여 해보자. 그 정성에 놀라운 치유의 힘이 숨어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녁이 낙하하고 있다. 조용히 아무도 특별히 눈치채지 못하게…"    (p.28)

 

작가가 소개하는 첫 책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를 외롭게 할 때' 읽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늦어도 11월에는>이다. 나도 몇 년 전 겨울에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그 외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에 알맞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책 읽기 싫은 날'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이라는 존재가 싫어질 때'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새벽에 홀로 깨어 있고 싶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두꺼운 추억이 필요한 날'에는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으라고 권한다. 이쯤에서 감을 잡았는지 모르지만 작가가 소개하는 시와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은 모두 대중적이면서도 진한 감동을 주는 책들이다.

 

"<섬>을 읽을 때에는 음악도 필요 없다. 믿을 수 있는 역자 김화영의 유려한 번역으로 비처럼 음악처럼 읽힌다.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대자연과 교감하는 것처럼 새벽 3시에 오직 반듯이 누워 침묵과 휴식에 골똘히 집중해본다."    (p.181)

 

서평집이라기보다는 독서 에세이를 표방하는 이 책은 인용문은 가급적 절제하는 한편 책을 읽은 작가의 소감이 책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표현하는 느낌은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이지 않다.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되씹어본 문장들이라는 게 곳곳에서 보인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소개하는 37권의 책 중 과거에 읽었던 책이 더러 있다 할지라도 작가가 소개하는 책 전부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당신도 이방인. 나도 이방인. 세상은 아닌 것처럼 연기하고 있지만 결국 또 다른 '현재'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이방인이다."    (p.132)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오늘,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두 정상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도 남았을 우리의 기원, 정상회담이 열리던 그 시간 내내 텔레비전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우리의 시선, 조바심 나는 평화에의 갈망을 안고 나는 조안나의 <책장의 위로>를 읽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멀리 프랑스 파리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나게 될 그날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 달콤한 잠에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꿈꿀 수 있는 자유, 책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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