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새촙던 봄날 - 자분자분, 밀양 어느 댁 양념딸 이야기 이야기는 맛있다 1
박선미 지음 / 상추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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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만나 더 뜨싯하게 아린 이야기, 언젠가 새촙던 봄날 >

 

몽실몽실 포근한 겨울이불 속에서
봄날처럼 따스한 이야기를 만난다.

 

아직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감기님 덕에

몸 쓸 기력은 딸리고.
애써 몸 부릴 일 만들 거 없이 팔자 좋게
자다 먹다 힘 좀 나면 책을 본다.

 

봄날 다가오면 볼까 싶던 요 이쁜 책,
아프니까 눈에 팍 뜨인다.
이불에 누워 한 장 두 장 보다가
그만 다 읽어버렸네.
아껴가며 조금씩 보려구 했더만.

신기하게도 책 보는 시간엔
멍하게 아프던 머리도 멀쩡해지는군.

 

 

밀양 어느 댁 양념딸,
박선미 샘과 그이 어머니가
자분자분 애틋하게 살아가던 이야기.

 

시골살이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어떤 건 도시내기인 내 어린시절 같고
또 다른 건 지금 내 사는 모습도 같고.
허나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건
글마다 넘쳐나는, 딸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진하게 알콩달콩한 사랑 나눔.
난 울 엄마랑 살갑게 지내본 적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없기에.

 

너그럽고 넉넉하고 속 깊은 엄마,
연한 배 같고 입 속 쌔처럼
얌전하고 착하고 예쁘던 양념딸.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몸짓에
마구 빨려들어간다.

 

*
“내한테는 너거들이 하늘이나 똑같다.
너거 입에 들어간 기 바로 하늘로 간 거다.”
장독 뚜껑을 닦으면서 덤덤하게 던지는 엄마 말에
얼마나 설레던지. 온몸이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 듯 들렁들렁.
시키지도 않은 걸레질을 하며 내내 흥얼흥얼거렸다.
“명태가 하늘로 날아갔대요오오오,
우리 입으로 다아 다아 들어갔대요오오오.”

*
쉬어 빠진 국수도 버리지 못하고 찬물에 헹궈 드시던 엄마가 하시던 그 말이 귓가에 울려서.
“누가 밥을 맛으로 묵나?”

*
“엄마, 인덕이 뭔데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핸 만치 본치가 있으마
 된다. 이짝이 생각해 주는 거만치 저짝도 내를
 서운키 안 하고, 쪼께이라도 이짝을 생각해 주면
 그런 기 인덕 있는 거 아이겠나?”

 

사랑과 믿음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엄마와 딸.
부러움 가득 안고 두 사람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가던 나는 책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곳곳에 숨어 있는 울 엄마를 만난다.
선미샘 마음 따라 내 마음도 촉촉하게 흐른다.

 

*
엄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한쪽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만 같고, 물렁 다리를 걷는 것처럼
발 아래가 울렁불렁해서 어떻게 집까지
걸었는지도 몰라.

*
‘일도 없다니, 하루에도 열댓 장씩 벗어 내는
 오줌 바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홑청 벗겨 빨아
 요 이불 꾸미는 일은? 그것만 하나. 오 분을
 못 넘기고 불러 대는 그 잔손거리는?’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하고 꺽 삼킨다. 그걸 뻔히
알면서 한 달이나 집을 등지고 살던 년은 누구더냐.

*
포슬포슬 보드라운 미영이 코끝을 살살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두부 덩어리가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며,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릿함에 같이 젖고.
책장을 거두며, 뜨거운 두부가 넘어갈 때처럼 애잔한 그 무엇이 울컥 올라와
끝내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흐른다.
슬퍼서가 아니라 따뜻해서 번지는
청주처럼 맑은 눈물.

 

보통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는
엄마를 버얼써 하늘로 보낸
나 같은 늙은고아한텐 쥐약인데.
이 책은 서럽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나를 울린다.
그리고 보듬는다.
울 엄마도 나도 괜찮노라고.

 

*
“야야! 선하기 살면 선하게 풀리고
 악하기 살면 악하기 풀린다 안 카더나.
 엄마는 이래 고달파도 나중은 좋을 끼다
 싶으니 견디고 산다.”

“너거들 잘 커서 넘한테 욕 안 듣고 살면
 그기 내한테 사는 힘이다.”

선미샘 어무이 말씀이 귓전에 계속 맴돈다.
꼭 하늘에 있는 울 엄마 목소리만 같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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