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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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덮으며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울렸다.
인생은 앞을 보고 살아야 하고 뒤를 보고 이해해야 한다.라는...
1755년 지진이 일어나기 전 리스본의 묘사에서 시작하여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의 복구(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로 끝을 맺는 이 한 권의 책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한 사회가 재앙을 해석하고 혼란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가 지닌 통념과 편견, 희망, 공포를 읽을 수 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의도치 않게 발생된 재난과 그 재난을 극복하려했던 한 인간에 의해 역사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재앙으로 리스본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재앙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도 했다.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 했으며 하느님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이 자유롭게 개척하는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
가장 독실하나 부패한 상업도시 중 하나인 리스본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만성절에 일어난 대지진은 한 시대를 통해 도시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이해불가능한 자연의 힘앞에서 인간이 세운 역사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간에 세운 모든 역사가 폐허가 된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역사를 내다보는 또 다른 한 인간이 있었다.
카르발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정치를 통해서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한 제국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때로는 이런 자연재해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재해를 통해 제국을 갉아먹는 노후한 제도들이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포르투갈 전역이 황폐해지고 도시들이 파괴된 것을 우리들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국가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재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눈앞에 두고, 재앙이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마도 진실로 그는 그렇게 믿었을 것이고, 그 믿음이 결국 그가 말하는 발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가져오도록 했을 것이다. 역사의 새로운 장에서 나타나는 이런 비범한 사람들을 보면 이게 정말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또 생각을 바꾸어 보면,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역사의 전환을 위해 주어졌음에도 그러한 인물이 없었기에 지나쳐갔을런지도 모른다. 또한 어떠한 시대가 수많은 모순을 겪고 있을 때, 그 모순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다. 재앙은 그들에게 기회였을 것이다.
카르발류는 독재자였다. 그러나 계몽적인 독재자였다.
카르발류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기록은 많지만 그는 권력 자체를 위해 권력을 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카르발류에게 권력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구태의연한 가톨릭 교회와 경직된 신앙에 길들여진 무기력한 포르투갈 사회와 개혁(정치, 사회, 종교적)에 반발하는 완고한 귀족 계급에 꿋꿋하게 대항했다.
카르발류의 유일한 야심은 포르투갈을 근대국가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카르발류는 동시대 역사가인 안토니우 히베이루 두스 산투스의 말처럼 역설적이게도 '포르투갈을 계몽시키는 동시에 속박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키에르 카고르의 말을 떠올린다. 인생은 앞을 보고 살아야 하고 뒤를 보고 이해해야 한다. 1755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과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한 사람. 이를 통해서 이해한 역사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제적 권력이라는 수단으로 새 시대를 이끌어낸 그는 과거의 사람이다. 그의 목표는 미래의 것이지만 그의 수단은 과거의 것이고, 이것이 그의 그 시대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는 지금 우리 시대 누군가에 의해 다시 극복될 것이고, 또 새로운 한계를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