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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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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 또래의 여자라면 어릴 적 누구나 빨강머리 앤이 살았던 다락방에 대한 환상같은 것이 있을것이다. 초록색 지붕 집의 그 다락방에서 울고 웃고 꿈꾸던 앤과 함께 나도 울고 웃고 꿈꾸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린시절 앤의 다락방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나이에 언제나 언니 혹은 동생과 함께 방을 사용했던 나에게는 없던 혼자만의 꿈을 꿀 수 있던 그 공간이 주는 매력임에 동시에 그 방을 살아있는 공간, 꿈의 공간으로 만들었던 앤의 이야기에 내가 함께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수 잘하고 주근깨 투성이의 예쁘지 않은 앤의 꿈은 다른 만화에서 보는 예쁘고 여린 소녀가 주는 환상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지구위의 작업실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앤의 다락방을 생각했다.
그저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공간이었지만, 앤이 맘껏 꿈꿀 수 있게 해주었던 앤의 다락방..
하지만 화려한 오디오와 고급 커피머신, 그리고 만장을 훌쩍 넘긴 LP 판으로 가득찼다는 작가의 작업실이야기와 사진들은 화려하고 꽤나 멋있어 보였을런지는 모르나 어떤 공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작업실은 충분히 훌륭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아마도 내가 그의 작업실에 있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의 커피와 오디오 그리고 음반의 이야기에서 오랜 세월 어떤 것에 몰두해온 사람의 진득한 수고가 아니라 도대체 끝이없는 욕망의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 놓은 그 공간에서 나는 어떤 꿈도 읽어내지 못했고 꾸지 못한 대신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의 공간에는 앤의 다락방에서 느꼈던 한없이 부족했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꿈.. 그것이 결여되었다..

어느 부분에선가 그는 자신의 과잉(만장을 훌쩍넘는 LP판, 몇 댄지 기억도 나지않는 원두 제작용
머쉰들과 서로 다른 자신의 장기를 뽐낸다는 오디오 등에 대한)이 다른 부분에 대한 철저한 포기에
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이야기에 좀처럼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하루에 몇 잔씩의 커피를 즐기면서도 원두를 직접 갈아 마시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그는 아마도 자신의 지하 작업실에서 원두를 볶고, 음향시설을 조립하고, 혼자만의 외로움을 즐기느라 계속되는잔업에 치여 졸린 눈을 비비며 마셔대는 인스턴트 커피 한 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서 만 원이 채 안 되는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 그런 것들을 통해 위로받는 사람들을 어느 새 잊어버린 건 아닐지..

그는 에니어그램 성격유형 분석에서 자신이 4번 낭만주의자 타입이라고 했다. 내가 읽은 번역본에서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개인주의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석 결과에 따르면 나 역시 4번유형을 가진 사람 중에 하나이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자의식 과잉의 징조를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작업실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부분은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만의 작업실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한 바로 그 부분 뿐이다. 그가 사랑하는 일들, 그 자신이 오롯이 빠져들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책 한 권 내내,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해 피로감을 느껴야 했다는 사실은 좀 씁쓸하다.

우리에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은 고립된 섬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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