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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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987년 있었던 6월항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시작한것은 채 몇년이 되지 못한다. 1987년 그 때 내 나이가 10살을 조금 넘었을 때고, 그 후 20여년의 시간동안 어렴풋이 들어왔던 그 때의 일들에 대해서 난 관심을 가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누군가 나에게 진실은 이것이다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건 그저 과거의 일일뿐이고, 적어도 내가 알기에 대한민국은 꽤나 민주화된 국가였으니 더이상 과거의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은 고리타분할 뿐이었다..
김수영의 시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김지하의 시에서 황석영의 소설로 그렇게 폭을 넓혀갔고, 그 유명한 부천 권양 성고문사건의 변호사였던 조영래변호사의 글모음인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를 읽게 되었을때는 마침내 그 시대에 다다른 온도를 1980년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실의 이름으로 6월을 휩쓴 민주화항쟁에 대해 접했을 때, 겁이 났다. 내가 알고있는 평화로운 대한민국과는 너무도 다른 진실들, 그 시대에 내가 이~삼십대를 보냈다면 나는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들의 피로 물들어진 나의 안락함에 대한 미안함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하지만 그 때 역시 6월 항쟁에 대한 나의 감정들은 지나간 시간의 수고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일뿐 현재의 그것이 아니였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촛불의 행진으로 스스로 의견을 밝히는 광장이 있었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web 있었고, 무엇보다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자유에 익숙한 국민들이 있는 글자 그대로의 민주공화국인듯 보였다. 그래서 6월 항쟁은 알고 있으면 좋으나 몰라도 크게 상관없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였다. 가끔 지인들에게 몇 권의 책을 추천하는 정도가 그 책을 읽고 느꼈던 나의 감정에 대한 예의였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지난 과거일뿐이었던 87년의 6월이 현재의 얼굴로 자꾸만 나타났다. 분명 역사는 진보한다고 했는데, 내가 사는 시대의 역사는 퇴행하고 있었다. 밝혀진 촛불, 인터넷에 오른 글이 죄가 되고, 함께 모여 민주주의를 즐기던 광장은 폐쇄되었으며, 자신의 주거권 아니 생존권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 불속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87년의 6월은 2009년 6월로 되살아 나고 있다.
지금 절망하고 있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87년 6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끝없는 터널 속에서도 빛이 있다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 얻어진 값진 선물...이 책에서 말하듯, 그 가벼운 종이 한 장을 위한 사람들의 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그 말에 진실이란 힘을 실어 주었던 87년 6월의 이야기..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쓰여졌기에 너무도 슬프고, 그들의 피와 눈물의 댓가로 얻어진 한 장의 종이가 너무도 아름다웠을 그 때의 이야기들... 이제 다시 우리가 써내려가야 할지도 모를 그 이야기..
하지만 87년 6월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누군가 이야기하더라도 너무 멀고, 너무 힘들고, 너무 아픈 이야기라 그저 전설이 될망정 지금 바로 이 시대로 끌어오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그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만화라는 이름으로...
서울대 교수들에 의해 시작된 사회전반의 시국선언들과 민주주의 후퇴를 근심하는 수많은 사설들 그렇게 넘쳐나는(그럼에도 현 정부는 여전히 못듣고 못보는 듯 하지만) 글과 말들 속에서도 이 책은 빛을 발한다. 그것은 책이 전하는 진실의 힘때문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춘 글쓰기의 힘때문이기도 하다. 길지 않은 그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나를 보았고, 나의 부모를 보았고 나의 친구를 보았고, 그리고 2009년 6월의 대한민국을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질문하나가 주홍글씨처럼 남겨졌다. 어떻게 살것인가?
역사는 진보한다.
처음 이말을 접했을 때 이말은 당위 혹은 진실로 다가왔다. 시간이 미래로 흘러가듯, 물이 아래로 흐르듯 당연히 역사는 진보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역사는 진실로 진보하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역행하는 듯한 사회가 눈앞에 보여지는데 그런데도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으란 말인가?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들은 어쩌면 역사의 퇴행을 두고보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들이 모여 100℃의 온도가 될때 역사는 또다시 진보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몇가지 편견
1. 만화는 가볍다.
물론 만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만화는 만화다울때 좋다라고 생각했다. 진지한 얘기들을 만화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왠지 어른옷을 아이가 입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오늘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진지한 얼굴로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만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닌듯 하다. 더할 것 없는 상태가 아니라 뺄 것 없는 상태가 완벽함이란 말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록 쉽게 표현하는 것이야 말로 진실을 위한 최고의 글쓰기이다.
2. 현대사를 다룬 책은 재미없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참 재미없고 쓸데없이 마음만 상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슬픈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봤다. 이 책의 6월은 슬프지만 절대로 비극이 아니며, 이 책은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어떤 만화보다도 더욱 재미있다.
3.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함께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아마도 몇년이 흐른 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은 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면
1. 그래서 내가 무얼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국가 권력에 맞서서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짧지만 강하게, 제대로 이야기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이 궁금하다면?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대한민국에 살면서 대한민국 헌법도 제대로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면 이 책, 탁월한 선택일 듯 하다.
3. 80년대의 대한민국 진실을 알고 싶다면? 고조영래 변호사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인권변호사였던 조영래 변호사의 여러 글들을 묶어놓은 책. 그가 맡았던 여러 변론들과 그가 쓴 사설들 등을 모아놓은 책인데, 법정 변론이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 그와 그의 글로부터 알게 되었다. 무조건 많은 사람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
4. 역사가 과연 진보하는가 묻는다면?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지금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 걷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지금은 빚을 갖는 과정일뿐이라고... 근데 그 빚은 도대체 언제나 다 갚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