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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방랑기
가쿠타 미쓰요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가쿠다 미쓰요가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자신의 책 후기에다 이런 글을 썼다. 이제까지 나는 말을 잘하기 위해, 순수하게 지식을 위해 책을 읽은 경우는 없다.15년전에 걸쳐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500배, 1000배나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을 쫓아가려 해도 소용없다. 그런 일을 할 여력이 있다면 지식 같은 것 없어도 상관없는, 나를 부르는 책 한권을 읽는 게 낫다. 그래, 책은 사람을 부른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도서관이든 헌책방이든 대형서점이든 어릴 적의 대형서점과 마찬가지로 나를 흥분시킨다. 그리고 내게는 네 살 때 얻은 그림책도, 어제 읽기 시작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도, 지금 다시 읽고 있는 하야시 후미코도, 모두 다 같다. 눈으로 글을 좇기만 해도 그것은 내 손목을 부여잡고 생면부지의 곳으로 데려가준다. 그리고 그 구석구석을 보여준다.라고 말이다. 그녀의 작가 후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솔직함이, 진실이 그리고 어떤 씁쓸한 감정(아무리 내가 많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타인은 더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이 묻어나는 것 같아,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보면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읽어왔던 책들이 타인의 독서편력에 비하면 형편없었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 순간, 밀려오는 어떤 허탈감에 내린, 나를 부르는 책 한권이라도 읽는 것이 낫다라는 그녀의 위안적 결론에 나도 모르게 찐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난 책이 지닌 무거움과 가벼움이, 물리적인 추상적이든간에 상관없이 읽는 편이다. 내가 아틀라스가 아닌 이상,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만 읽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가벼운 주제의 책만 읽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나이가 들면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인데, 요즘 한 일이년 동안은 일본소설을 꽤 많이 사 들이고 읽었던 것 같다. 일본 소설의 글쓰기가 가볍다 보니 읽기가 쉬워서 그런가. 나름 읽고 나서 생각거리도 많고, 우리의 일상이 소설적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가쿠다 미쓰요라는 일본 작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가 요 근래 들어 도서관에서 몇 권 빌려 읽었는데,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 삶의 따스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주제가 맘에 들었다. 예를 들어 <전학생모임>의 <꽃밭으로>라는 단편에서 불행한 일이 연속해서 터져도 꽃밭의 꽃을 보고 이쁘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살다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한 번 쯤 생각해보지만 그런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일본작가는 참 편안하게 별 것 아닌 일상의 소재로 글을 쓰는 구나 싶었다. 그런 가벼우면서 진지한 일상적 글쓰기가 무거운 주제의 소설보다 끌리고.
허나, 왜 그녀의 그 많은 좋은 작품은 놔두고, 하필이면 <가족방랑기>를 구입하게 된지는 모르겠다. 기대가 컸나. 중단편에서 보여준 빼어난 글솜씨는 어디가고, 지리멸렬한 글 늘리기에 주력한 가족소설을 고르다니. 이런 집안의 속사정은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냥 풋내나는 어린 고등학생의 일기장과 뭐가 다르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일지도 모르고. 아마 주인공 리리코의 나이 또래 고삼 정도나 대학생들이 이 책 읽었다면, 공감하는 부분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매들 개개인이 선택한 삶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나 아리코의 이혼, 전 남편과의 불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이혼을 하게 된 것인지 완전 독자의 상상으로만 남겨놓은 것) 막연한 희망을 품고 끝내는 ,작가의 불친절한 일일연속극식 의도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이가 먹어셔야!). 뭐가 뭔지 모르는 채 이야기는 끝나고, 기대해 마지 않았던 작가 후기도 없었다. 차라리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명후기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요전에 게이고의 <괴소소설> 읽으면서 뒤에 써 놓은 작가 후기도 재밌게 읽었는데 , 그런 식의 작가 후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본 소설보다 작가 후기가 인상적이라는. 여하튼 이 책 읽고 나서 소장하기에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