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p.s. i love you
모리 마사유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몰래 감추고,속으로 삭이고 애 태우며 느릿느릿 한발자국씩 서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사랑이야기이다. 지금 세대가 보면 답답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80년대 사랑은 바로 이런 식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에 애틋함과 설레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 요즘 세대들처럼 미팅에 나가서 끌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콕 집어서 지명하거나 사귀어보자는 말 한마디 못 하고 감정의 아쉬움만 가슴 속에 새겨두기고 자리를 뜨던 세대들이었다. 60년대 혹은 70년대 초반 생들이 대부분 경험했을 법한 수줍은 사랑이야기. 이 세대들은 전 세대와 후 세대의 틈바구니에 낀 과도기 세대들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목 말라했던 전 세대에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70년대 후반 생들의 직접이고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과 대시에 부러움과 묘한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어정쩡한 세대말이다.
 
이 만화는 1988년에서 89년까지 만화 오리지널에 13회에 걸쳐 연재된 만화를, 당시에 작가가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단행본으로 낼 시기를 놓쳤다가 한참이나 지난 15년 후인 2004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15년이라는 세월은, 우리에게 과학적인 편안함고 안락함을 가져다주면서 초스피드로 바꿔버렸다. 아날로그 편지 대신 이멜이, 전화대신 휴대폰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버린 것이다. 즉각적인 연락과 반응. 예전의 기다림의 시간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 지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이란 표현은 하루이틀이라는 피 말렸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잠시 동안을 의미할 정도로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예전에 연락방법은 전화 아니면 편지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편지지를 고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편지지를 사들고 무엇을 쓸지를 이리저리 곰곰히 생각하면서 이쁜 글씨로 쓰기 위하여 한자한자 정성들여 쓰던 시절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인 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지금 나오게 된 것에 대해 진부함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세대를 같이 공유했던 나로서는 진부함이라는 표현대신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만화를 통해 나의 80년대 그리운 시절을 떠올린 다는 것은 행복한 일 아닌가. 

만화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간단한 라인 단순 명료한 색과 화면분활이 어지럽지 않아서 보기에 편하다. 그림의 색은 화려하기 보다는 기본 삼색이 바탕이며, 화면 컷은 다양하며,큼직큼직하니 시원하다. 화면 컷과 그 안에 담긴 그림은 작가의 절제된 감정의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컷 안에 중요 배경화면은 없지만 주인공들의 애틋하거나 쓸쓸한 심리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다. 아마 작가가 경험한 비슷한 랑이야기거나 적어도 작가가 이런 사랑을 한 번쯤은 해 보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담백한 사랑이야기를 만나서, 아니 적어도 내가 공감했었던 한 시절의 사랑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한껏 이야기에 빨져 들 수 있었다.


P.S. - 나에게 오는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있을 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편지는 청구서나 안내문뿐이니, 그렇게 편지라는 것에 그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이멜이나 블러그가 대세니깐. 하지만 한통의 진실된 편지가 사라진다해도 서로가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가. 덧글도 소통의 한 방법이고. 그래서 난 누가 나를 위해 써 준 한줄의 덧글도 기분이 좋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