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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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단 한 작품으로, 그것도 첫 작품이 메가톤급(말 그대로 메가톤급 베스트셀러로 등급한 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의 위력을 가졌던 작가가 처녀작 이후, 더 이상 작품을 내 놓지 않거나은둔하는 사례(출간하더라고 한 두 작품을 내고는 사라지는)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사이코패스을 연구할 때마다 빠지고 않고 논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호밀밭의 파수꾼>의 JD 샐린저가 그렇고 백인 여자 아이의 시선으로 인종문제를 이야기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따스함으로 가득 찬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를 들 수 있다.
이 두 작가를 접할 때마다 들고 일어나는 의구심은, 차기작이 나와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단 한 작품으로 만족한 채,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각 각의 작품을 통해 두 작가들의 글쓰기를 가늠해 보건데, 다음작도 거뜬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있는 기량과 역량은 충분한데 말이다. 우연히 정열을 불 태우며 쓴 첫 작품의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성공에 놀라, 첫 작품을 능가할 만한 작품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간파해서! 설마하니, 그렇게 용기가 없을려고. 애시당초 그렇다면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개인적인 ,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혹 첫 작품으로 금전적인 성공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는 대신 작가적 상상력(판타지)을 빼앗아간, 악마적인 계약이 아니었을까. 만약에 내가 작가라고 가정하고, 누군가로부터 첫 작품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해주는 대신 너의 판타지를 달라던가 비록 첫 작품은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너의 작가적 상상력은 작품을 쓸 때마다 나아진다는 조건 중에서 어느 것을 택일하겠냐고 물어 본다면, 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까. 물론 스티븐 킹같이 매 작품마다 베스트 셀러에 돈을 벌어준다면야 낼름 킹같은 조건을 택하겠지만. 혼잣말이지만, 첫 작품이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그 이후에는 클래식으로 남는다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너 나을지도.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후대에게 남겨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실 절필은 작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첫 작품의 성공이 오히려 금전적인 부담의 해방보다는 차기작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차기작이 첫 작품만큼이나 독자의 기대와 충족에 부응해야 한다는 작품의 질적 부담은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공포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꼭대기에 서 있다가 고공행진은 커녕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다는 불안과 초조함은 성공작가의 영원한 딜레마 아니겠는가.
13년 전 <심플 플랜>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스콧 스미스는 13년 동안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에이젼시들은 얼마나 똥줄이 탔을까나!) 아마도 그의 두번째 작품을 기다렸던 독자들은 그가 샐린저나 하퍼 리의 전철을 밟아가는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콧 스미스의 존재가 거의 사라질 쯤해서 그가 호러 소설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던 독자들은 열광했고 스티븐 킹은 스콧 스미스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스콧 스미스의 새 소설이 올 여름에 출판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주말데이트에서 한 두시간 늦게 돌아왔을 때의 느꼈던 복합적인 마음 즉 안도감(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하느님 감사합니다)과 늦게 들어오는 것에 분노와 초조함(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으로 마음이 뒤범벅이었던 그런 심정이었다 When I heard that Scott Smith was publishing a new novel this summer, I felt the way I did when my kids came in an hour or two late from their weekend dates: a combination of welcoming relief (thank God you're back) mingled with exasperation and anger (where the hell have you been?).
이렇듯 그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는 열광적(아마존에서 살펴본 바로는 출간 일년도 안되서 그의 작품에 무려 리뷰가 947개가 올라왔다)이었지만 독자의 충족감은 별 세개로 그치고 말았다. 첫 작품과 비교해서, 작품의 질적 수준은 전 작품만 못 하다는 것이 대다수 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즉각적으로 인터넷에서 자신의 작품 평가를 알 수 있는 시대에, 그의 작품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그의 세번째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알 수 없지만, 첫 작품의 성공이 작가들에게는 그렇게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차라리 잭팟을 터트리는 것이 낫지.
여하튼 <심플 플랜>이후 13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내 놓은 스콧 스미스의 <폐허>는 그리 만족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멕시코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네명의 미국인과 한명의 독일인 그리고 그리스인이 단 하루의 오지여행을 꿈꾸며 떠난 곳이 바로 그들의 무덤으로 변하는, 극한의 생존 이야기임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문장의 긴박감과 긴장감은 나의 오금을 저리지 못했고, 사건 없는 서스펜스, 느슷한 이야기 전개와 실체를 알 수 있는 공포, 기복이 없는 나열식의 플롯, 치밀하지 못한 각 등장 인물의 심리묘사 그리고 힘 없는 no hero는 마치 국 국물에 밥 말아 먹다가 밥이 국물을 다 빨아들여 억지로 깔깔한 밥을 먹는 기분 같았다. 13년의 공백을 채우기에 급급한 혹은 급조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심플 플랜>을 읽어보지 않아 그의 역량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글쓰기가 호러물에 적합하지 않던가 숱하게 본 괴물영화의 하나에서 상상력을 덧붙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이 비슷한 소재를 본 적이 있는데....) 적어도 킹도 문학적으는 콘래드의 <어둠의 속>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의 세번째 작품은 긴 공백 기간 없이 첫 작품만큼이나 기발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길 바란다. 그게 작가의 의무고 독자의 바램이다. (혹 충격으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ps- 셀린저는 두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단 사실을 며칠 전에야 위키피디아에서 우연히 검색하다가 알았다. 두번째 작품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는데, 첫 작품의 위력을 담을 작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그에게 악령처럼 씌인 것은 아닌지.(08.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