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서평단 알림
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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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작품으로, 그것도 첫 작품이 메가톤급(말 그대로 메가톤급  베스트셀러로 등급한 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의 위력을 가졌던 작가가  처녀작 이후, 더 이상 작품을  내 놓지 않거나은둔하는 사례(출간하더라고 한 두 작품을 내고는 사라지는)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사이코패스을 연구할 때마다 빠지고 않고 논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호밀밭의 파수꾼>의 JD 샐린저가 그렇고  백인 여자 아이의 시선으로 인종문제를 이야기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이 따스함으로 가득 찬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를 들 수 있다. 

이 두 작가를 접할 때마다 들고 일어나는 의구심은, 차기작이 나와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단 한 작품으로 만족한 채,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각 각의 작품을 통해 두 작가들의 글쓰기를 가늠해 보건데, 다음작도 거뜬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있는 기량과 역량은 충분한데 말이다.  우연히  정열을 불 태우며 쓴 첫 작품의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성공에 놀라, 첫 작품을 능가할 만한 작품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간파해서!  설마하니, 그렇게 용기가 없을려고. 애시당초 그렇다면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개인적인 ,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혹 첫 작품으로  금전적인 성공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는 대신 작가적 상상력(판타지)을 빼앗아간, 악마적인 계약이 아니었을까. 만약에 내가  작가라고 가정하고, 누군가로부터 첫 작품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해주는 대신 너의 판타지를 달라던가  비록 첫 작품은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너의 작가적 상상력은 작품을 쓸 때마다  나아진다는 조건 중에서 어느 것을 택일하겠냐고 물어 본다면, 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까. 물론 스티븐 킹같이 매 작품마다 베스트 셀러에 돈을 벌어준다면야 낼름 킹같은 조건을 택하겠지만. 혼잣말이지만, 첫 작품이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그 이후에는 클래식으로 남는다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너 나을지도.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후대에게 남겨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실  절필은 작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첫 작품의 성공이 오히려 금전적인 부담의 해방보다는 차기작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차기작이 첫 작품만큼이나 독자의 기대와 충족에 부응해야 한다는 작품의 질적 부담은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공포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꼭대기에 서 있다가 고공행진은 커녕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다는 불안과 초조함은 성공작가의 영원한 딜레마 아니겠는가.

13년 전 <심플 플랜>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스콧 스미스는  13년 동안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에이젼시들은 얼마나 똥줄이 탔을까나!)  아마도 그의 두번째 작품을 기다렸던 독자들은 그가 샐린저나 하퍼 리의 전철을 밟아가는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콧 스미스의 존재가 거의 사라질 쯤해서 그가 호러 소설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던 독자들은 열광했고 스티븐 킹은 스콧 스미스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스콧 스미스의 새 소설이 올 여름에 출판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주말데이트에서 한 두시간 늦게 돌아왔을 때의 느꼈던 복합적인 마음 즉  안도감(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하느님 감사합니다)과  늦게 들어오는 것에 분노와 초조함(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으로 마음이 뒤범벅이었던 그런 심정이었다 When I heard that Scott Smith was publishing a new novel this summer, I felt the way I did when my kids came in an hour or two late from their weekend dates: a combination of welcoming relief (thank God you're back) mingled with exasperation and anger (where the hell have you been?). 

이렇듯 그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는 열광적(아마존에서 살펴본 바로는 출간 일년도 안되서 그의 작품에 무려 리뷰가 947개가 올라왔다)이었지만 독자의 충족감은 별 세개로 그치고 말았다. 첫 작품과 비교해서, 작품의 질적 수준은 전 작품만  못 하다는 것이 대다수 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즉각적으로 인터넷에서 자신의 작품 평가를 알 수 있는 시대에, 그의 작품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그의 세번째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알 수 없지만, 첫 작품의 성공이 작가들에게는 그렇게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차라리 잭팟을 터트리는 것이 낫지.  

여하튼 <심플 플랜>이후 13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내 놓은 스콧 스미스의 <폐허>는 그리 만족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멕시코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네명의 미국인과 한명의 독일인 그리고 그리스인이 단 하루의 오지여행을 꿈꾸며 떠난 곳이 바로 그들의 무덤으로 변하는, 극한의 생존 이야기임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문장의 긴박감과 긴장감은 나의 오금을 저리지 못했고, 사건 없는 서스펜스, 느슷한 이야기 전개와 실체를 알 수 있는 공포, 기복이 없는 나열식의 플롯, 치밀하지 못한 각 등장 인물의 심리묘사 그리고 힘 없는 no hero는 마치 국 국물에 밥 말아 먹다가  밥이 국물을 다 빨아들여 억지로 깔깔한 밥을 먹는 기분 같았다. 13년의 공백을 채우기에 급급한 혹은 급조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심플 플랜>을 읽어보지 않아 그의 역량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글쓰기가 호러물에 적합하지 않던가  숱하게 본 괴물영화의 하나에서 상상력을 덧붙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이 비슷한 소재를 본 적이 있는데....) 적어도 킹도 문학적으는 콘래드의 <어둠의 속>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의 세번째 작품은 긴 공백 기간 없이 첫 작품만큼이나 기발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길 바란다. 그게 작가의 의무고 독자의  바램이다. (혹 충격으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ps- 셀린저는 두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단 사실을 며칠 전에야 위키피디아에서 우연히 검색하다가 알았다. 두번째 작품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는데, 첫 작품의 위력을 담을 작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그에게 악령처럼 씌인 것은 아닌지.(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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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하겠습니다
군 구미코 지음, 쓰치다 노부코 그림, 김경화 옮김 / 푸른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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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파는 800원짜리 돋보기도 같이 주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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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Closed, Vol. 15: Volume 15 (Paperback) Case Closed (명탐정 코난 영문판) 15
Aoyama, Gosho / Viz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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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의 영어판입니다. 이 책 한권의 가격이 무려 만원이 넘습니다. 요즘 환율이 아까 잠깐 들어가 살펴보았더니 1030원이었으니깐 무척이나 비싼 만화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에서 고시된 판매 가격이 $9.99이고 미국아마존에서도 할인을 하지 않습니다. 이 무슨 얼어죽을 놈의... 한국에서 4천원도 안 되는 책이 왜 미쿡에서는 만원을 하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아마존의 소설 할인률이 10~40% 정도임을 감안하면, 일본 만화가 할인이 전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도 혹 무슨 음모론이! 음모론 갖다 부치는 것 좋아하는 조종동은 알 수 있으려나. 무슨 이유로 할인이 안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미국애들은 비싼 돈 주고 만화 본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군요. 참고로 <요츠바랑!>, <아즈망가 대왕>, <원피스>, <데스 노트>,<몬스터>등과 같은 만화도 영어로 번역되어 아마존에서 파는데 역시 할인이 안 됩니다. 도대체 그 많은 만화책을 사려면 얼마나 많을 돈을 쳐 발라야하고 비싼 돈 주고 사들인 책이랍시고 책장을 훑어보니 제다 일본만화책이라면 어느 부모가 좋다고 할까나 싶습니다. 일본 만화를 폄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책의 content안에 만원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군요.


젠장, 여하튼, 책 한권이, 아니 만화책 한권에 만원돈 하면 솔직히 비싼 거 아닌가요? 제 생각에는 과연 이렇게 값비싼 책을 살까 싶은데, 이 시리즈가 현재 23권까지 번역되어 꾸준히 나오는 것을 보면, 판매가 그런대로 되는가 봅니다. 이 책 <명탐정 코난>은 리뷰가 별로 없는데 요츠바나 아즈망가는 리뷰도 제법 재밌다고 많이 올라와 있고 <몬스터>같은 경우는 놀랍다라는 반응이 많더라구요. 리뷰 읽다보면 일본만화의 위상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일본만화의 위력은 엄청나는데다, 일본만화의 광적인 팬임을 자처하는 리뷰어가 한둘이 아니고 전문적으로 일본망가를 읽고 수집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돈이 남아 돌아서 혹은 돈지랄하기 위하여 이 만화책을 산 것은 아닙니다. 이 비싼 책을 산 이유는 일본 만화의 영역판은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영어 표현의 호기심에서 한 번 사봤는데, 영어공부 하기에는 딱입니다.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써 먹지 않는 한, 시간을 따로 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 영어공부라고 하고 싶습니다. 코난 자체가 추리라서 그런지 영어문장도 많고 상황에 맞게, 짧고 쉽게 대화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범죄에 관련된 몇 개의 단어만 사전에서 찾으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고 한국어 번역본하고 대조해서 읽으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영어를 썼는지 영어회화시 참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 전권을 다 구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따분한 소설원서보다는 만화책으로 영어회화를 접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전부 사는 것은 별로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권을 다 사기에는 책값이 너무 만만치 않아 가정파괴의 주범이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샘플링이라고 생각하고,코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쟝르의 만화영역본을 몇 권 구입해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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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1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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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권력구조는 국민이 저항을 통해 바꿔야 한다" 

1994년,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촘스키의 대화로 엮은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는 12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그 어떤 책보다 가치있고 유효하다. 현재 이명박정부가 벌이고 있는 모든 정책(공공기관의 민영화, 재벌위주의 정책, 신자유주의 경제등등)이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암울한 암흑으로 덮어버릴수 있는가를 그리고 권력과 부을 움켜진 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기만하고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난 이 책 읽으면서 이책의 내용과 현재 우리 상황이 너무나 맞아 떨어져 촘스키가 무슨 예언가인줄 알았다. 노스트라다무스 저리 가라다.)


확실히 촘스키는 중도노선의 지식인은 아니다. 그의 학문적 지식과 통찰력은 권력과 부를 가진 자를 위해 사용하고 있지 않다. 학문적 헤게모니를 가진 지식인으로서 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그들의 비리와 남용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현재 지배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정확성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침 튀겨가며 단언하건데,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권력을 쥔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아무리 정책이 잘 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기묘한 말 바꾸기와 선동은 국민의 정확한 판단을 마비시킨다. 거기에다 언론까지 정부의 기만에 합세하면 국민은 그저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다. 괜시리 정부나 정부기관을 영어로 Authority 라고 불리지 않는다. 권위, 권한이라고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authority의 밑바탕에는 국민이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정부(또는 기관) 즉 authority라고 한다. 

국민을 전폭적인 신뢰와 기반을 바탕으로 한 주제에 authority는 이제 국민을 등에 업고 세상의 권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몇 명의 권력을 움켜진 자들은 부와 결탁하여 멋모르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미국쇠고기가 싸고 맛 좋으니깐 미국이 주는 대로 광우병에 상관없이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입 닥치고 먹으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권력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눈에는 국민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자신들을 따라야하는 양같은 존재. 우리 국민이 찍소리도 못하고 주는 대로 풀이나 뜯어먹는 양같은 존재로 남아야할지 한 번 생각해보고 넘겨할 문제일 것이다. 

며칠 전에 미드 <Law&order SVU> 9x17 에서 Merritt Rook라는 역활로 출연한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의 신분을 경찰로 가장하여 해피버거라는 매장에 전화를 걸어 매니저에게 점원중의 한명이 고객의 돈을 훔쳤으니 자신을 기다리는 동안 그 여점원의 옷을 벗기고 손발을 묶으라고 전화로 명령한다. 매니저는 경찰이라는 말에 전혀 의심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한다. 하지만 매장에 들이닥힌 것은 실제 경찰이었고 매니저는 취조받는 과정에서 가짜 경철 전화 한통화에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사하는 과정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진짜 범인임을 알고 로빈을 체포해 법정에 세운다. 하지만 로빈은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체포한 벤슨형사나 엘리엇 형사를 그리고 자신을 법정에 세운 노박검사를 탓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양이 양치기를 따르 듯 명령을 따를 뿐이다. 우리는 양이 되서 위험에 빠져도 맹목적으로 따를 뿐 authority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라고. 로빈은 배심원들에게 아니 시청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양이 되지 말라. 스스로 생각하라" 고 말이다. 일반 대중보다 한사람의 세계적인 연예인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핵과 같은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때, 로빈이 범인으로 나와 한 말이지만 그의 그 말은 엄청난 의미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이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나 기관을 완전히 믿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왜 그렇게 해야만 하고 우리가 따라야하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파는 국민의 의문부호를 싫어한다. 촘스키가 우파는 국민이 도서관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말한 데는 의문부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회피하고 자신의 지배권력을 확고히 다져놓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법정변호의 말이나 촘스키의 지배 세력에 대한 비판은 상하 명령의 지배체계를 효율적으로 국민을 관리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변질 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싸워 세상을 변화시켜야한다는 것으로 난 받아들였다. 세상이 권력자나 부자들에게 치우쳐가는 것이 아니고 촘스키가 말하는 공익(common good)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좌파니 우파니하는 말장난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우스운 꼴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검역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국민 한 사람이라도 의문을 던진다면 정부는 그 의문에 답을 해야하는 것이 정석이다. 뻑하면 반미니 좌파니하며 얼렁뚱땅 몰아세우며 너희 국민들을 이해 못하겠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에 정확한 답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를 희생해가면서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65p)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정부나 기관의 신뢰도가 낮아졌다. 이제 난 정부가 내 놓는 정책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를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의문정도가 아니라 흑과 백 그리고 그 중간지점인 회색도 못 믿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게 다 정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면서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정치적 정체성은,경상도 b급좌파 남편을 만나기전만 해도 무뇌아 수준이었다. 투표권이 내 앞으로 떨어진 그 순간부터 난 친정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한나라당에 표을 던졌다. 지금에 와서 후회니 뭐니 하는 말은 다 필요 없으리라. 지난 10년간 무뇌아였던 나도 좌파로 서서히 변했다. 경상도 좌파 남편의 인터넷 사이트 흔적을 따라 다니다 보니 이제 정치적으로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좌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젠 양같이 투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세상도 변했다. 나도 변했다. 더 이상 양처럼 순한 국민은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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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권영주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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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벽돌 같은 책을 언제 다 읽나 싶었는데, 사이덴스티커의 어린시절과 청년 시절을 다룬, 지루한 1,2 챕터를 지나 작가가 일본의 근대문학을 섭렵하기 시작하고 다니자키, 야스나리 그리고 유키오와의 일상적 그리고 문학적 교류가 활발하게 묘사되면서부터 재미가 솔솔 붙기 시작한다. 특히나  야스나리 같은 경우는 사이덴스티커의 번역 덕분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이어서 야스나리와의 교류와 그 사이에서 소외된 유시마와의 관계 묘사는 그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했다. (사이덴스티커는 유키오의 경우, 다니자키나 야스나리의 작품과 달리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내가 이 작가에게 관심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가 아니고 그와 일본문학과의 관계였지 않나 싶다.) 

이 회고에 가까운 책을 읽다보면, 사이덴스티커는 50,60년대의 일본 순수 문학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워낙 번역문학을 중요시 여기는 탓에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의 대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친분을 두텁게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니자키나 야스나리같은 순수 문학의 대가들이 자신의 작품들의 영역본을 위해 아무 꺼리낌 없이 그를 만나고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번역문학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음을, 그리고 역으로 번역문학의 우대 풍토가 노벨상 수상을 가져 온 것임을 미뤄 짐작해 본다.


일본 태생의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미국 태생의 백인이  일본 작품을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래도 태생적 언어가 아닌 2차적으로 획득한 언어를 가지고, 외국에 자기 나라의 문학작품을 번역소개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영어문화권의 사람들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감정과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2차적으로 언어를 획득한 사람보다는 태생적으로 그 언어를 획득한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를 내 나라 언어로 바꾸는 번역이라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단어 한 단어가 딱딱 맞아 떨어지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말이라는 게 어디 바디 랭귀지처럼 단순한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으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을. 그럴 때는 번역가들도 말의 더하기와 빼기에 신경 쓰기 마련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사이덴스티커는 번역이 '뭔가를 내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작업"이라며 작품의 문장을 번역가가 임의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데, 글쎄, 후기에 권영주씨가 이것에 대해 엄청난 반발의 글과 동시에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하면서 생각할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성인 대상의  번역작품들은 번역가들이 최대한으로 원저자의 작품을 존중하며 번역하지만, 어린이 작품은 몇 몇 작품을 원작과 비교해 보면, 많은 부분 번역가가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 답시고 원문에 충실하기 보다는 원문에 비슷하게 번역가가 의역이라고 하기에는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지어낸 문장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삭제는 말 할 것도 없고. 처음엔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어 화가 났었다.  

하지만 영어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의 그 어색함이나 뻔뻔함을 고려할 때, 나름 최선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번역가를 비난 할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오른다. 물론 아직도 나같은 사람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원하고 있지만 불필요한 문장을 삭제하거나 번역가가 읽는 이의 이해를 위해 다른 비유를 갖다 붙인다는(강주헌씨 같은 경우는 촘스키를 번역할 때) 경우를 읽으면서, 꽉 막힌 나의 원문 충실에 대한 고집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결국 삭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이덴스티커의 경우 지적 오만함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번역가 자신의  양심과 깊은 고뇌에서 우러나온 결과라면 어느정도의 유들함과 융통성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싶은 것이다. 번역이라는 게 단순히 외국어에 능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적지 않는 지식과 상식이 쌓아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번역을 하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고 있다. 번역문이 황금이 될지  돌이 될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그가 어떤 식으로 무엇을 만지는 간에, 책을 받자마자 원문에 충실할 수 있는지, 빼야하는지, 스트레이트로 해야하는지,비유를 달리 해야하는지는 번역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번역한 책 한권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영향력이 문화적 contents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았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번역가들이 있어 다른 언어의 많은 글이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사이덴스티커가 없었다면, 일본의 순수 문학과 고전문학의 번역은 더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도 누군가는 했었지만, 본격적인 그의 일본 작품의 번역은 여러 쟝르의 일본문학 번역의 물꼬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현재 미국 아마존에 올라와 있는 일본 소설이 순수문학이든, 고전이든, 쟝르든지 간에 수 많은 작품이 미국태생의 번역가들에 의해 번역되고 있는 현실은 단지 부러움을 넘어 우리 나라 번역 문학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갖게 된다. 번역을 하찮게 여기는 우리 문학 풍토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우리 나라 번역가가 다른 나라의 작품을 번역하든, 외국인이 우리 나라의 작품을 번역하든지 간에 번역 문화의 우대와 융성이 한 나라의 문화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은 틀림 없다.   

여하튼 그의 일본에 대한 열린 시각과 애정은 넘쳐 보인다. 단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이덴스티커가 순수 문학에만 관심이 있어 쟝르문학에 대한 언급이 단 한줄도 없다는 것이다. 란포, 세이지, 세이초 같은 거물급 쟝르소설가에 대한  무언급과 무관심은 한쪽에 치우져진 그의 문학관과 순수문학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이런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외국태생의 번역가가 한 명은 나와 주었음은 더 바랄 것도 없겠다. 

ps- 어째든 꾸역꾸역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를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번역한 권영주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은 한가지 언어도 힘들어 유학이네 해외연수네 하는데, 일어와 영어의 번역책들을 번갈아 가며 출간하고 있으니, 그녀의 언어 실력이 부러울 뿐이다. 권영주의 프로파일은 책날개에 간략하게 나와 있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그녀가 쓴  번역 후기를 통해 현재 그녀가 일본의 쟝르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다. 남들은 언어 하나 갖고도 버벅대는 마당에, 두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왜 안 부러울소냐! 뭐 이런 생각! ㅋㅋㅋ 그럼 김석희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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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4-2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완독 하셨군요. 사이덴스티커의 오만함과 지루한 전개에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는데...

기억의집 2010-04-28 14: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사람 오만해요. 제가 방금 말한 윌슨과는 전적으로 글쓰기나 사고나 틀리더라구요. 이 사람은 백인우월주의도 상당한 사람인데, 이 양반의 가치는 일본문학을 서구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 같아요. 일본에서는 무시 못 할 양반인 거 같던데...^^ 이 책 말도 사이덴스티커의 다른 책도 읽을까 하다가 말았어요. 근데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