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도 모든 독자에게 동일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작품이란 피사체와 같아서, 동일한 피사체라도 그 작품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다 같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위치에서 찍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인상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독자들을 둘러 싼 여러가지 환경 설정에 의해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결정된다.
 
이 작품의 작가 존 어빙의 <가아프의 세계>를 읽었던 나의 환경설정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어느정도 성숙한 시기였는데, 아마도  성경험이 없던 20대 시절에 읽었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또 섹스 타령이냐며 획 던져버릴 그런 책이었다. 지금도 로맨스 분야 소설은 별 매력을 못 느끼지만, 섹스와 불륜의 욕망으로 도배한 이 책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존 어빙의 특유의 글솜씨 때문이었다. 존 어빙이란 작가, 진지함은 둘째치고라도 문맥상으로는 참 별 거 아닌 단 한 장의 문장으로도  사람을 실실 웃게 만드는,  매력있는 작가다. 이 작가의 글은, 뭐랄까, 언젠가 야구광인 남편 옆에서 앉아 보게 된 메이저리그 경기중에서, 선수 대기석에 앉아 진행중인 동료 선수들의 게임을 보면서 무표정한 얼굴로(진짜 무표정도 그런 무표정이 없다!) 응원석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 추는 모습, 무표정과 댄스라는 기막힌 부조화에 씨익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존 어빙의 글이 그렇다. 그의 글은 무표정스럽다. 욕망이야기를 할 때도 독자에게감정이 흥건히 고인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아니다.  (혹 욕망 어쩌구 저쩌구 해서 성적 호기심에 읽고 싶은 독자라면 D.H. 로렌스 소설이면 족하다는)  욕망스러운 글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고 내러티브를 만든다. 무표정스러운 글 위에 요동치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 배시시 터져나오는 웃음, 그게 바로 존어빙의 문장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 사이더하우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추석 며칠 전에 한가위 때 읽을 요량으로 주문했는데...중고샆에 나와 있어 급 취소.


정작 오즈의 마법사의 오리지널은 읽지 않고 오즈의 마법사를 쓴 프랭크 바움의 삶이 궁금해 주문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바움이 인기 작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4월에 출간하고도 알라딘 신간 소개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이 책이 출간 되었다는 것을 안 것도 동네 서점에서 통해서 알 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14권으로 구성된 오즈의 마법사나 다 읽어볼까 싶다.(아영엄마 댁에 갔더니 이 책(문학세계사판) 책장에 쫘악 꽂혀있는데... 내심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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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알라딘 상단에 위치한 이런 재테크 서적 확 떼어버리고 싶다. 알라딘이 언제부터 땅사면, 그게 바로 떼돈이야라는 대한민국 부동산 재테크 열풍에 한 몫 거들게 되었는지 묻고 싶다. 좀 격하게 말하면  이런 년들이 대한민국에서 성실히 돈 모아 적금 부어가며 아둥바둥 살려고 애쓰는 아줌마들 쪼다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적금으로 돈 모으면 안주인의 살림 성적이 꽝이고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재테크 해서 떼돈 벌면 그게 살림의 진수라고 누가 가르쳐주던. 바로 너 같은 년들이다.  조중동과 짜고 고스톱 쳐서 광판 돈으로 재테크해서 돈 벌었다고 선전해 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 오죽하면  지난 번에 시댁 갔더니 시모하는 하는 소리가 땅사야 돈 번다고 땅사라 카더라.  아니 신문 한 쪼가리, 글자 혐오증에 걸린 시모가 그런 소리 할 정도이니 대한민국 재테크 열풍이 카트리나 수준이구나 싶었다. 솔직히 왕비병 걸린 글쓴이에게 묻고 싶다. 단 돈 2,900만원으로 50억원 만들었다면, 쥐고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냐고. 말이 난 김에 까 놓고 말하지만, 우리 친정모 성실한 종부세 납부자이다. 허도 지랄 같은 종부세 버거워, 이번 봄에 땅 200평 팔려고 내놨다가 세금 무서워 다시 거둬들였다. 땅이 있어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상인거라.  부동산을 동산으로 만드는 게 쉬운 줄 알고, 내 놨다가 땅만 날릴 것 같아, 쉽게 팔지도 못하겠더라. 1,2억씩부동산은 말 그대로 쉽게 현금으로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유동적이지 않다.  빚내 아파트 사는 게 무슨 재테크냐 (월세 살이지!) . 사람들 1,2억 우습게 아는데, 금융권에서 1,2억(심지어 3억도) 빚내서 아파트 사봤자, 은행권만 좋을 일 시키는 거지 살림의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 아파트 값이 언제 오를꼬. 월급 받아 대출금으로 원금하고 150만원씩 내면, 생활이 안된다. 그럼 돈 잘버는 월급쟁이가 이 땅에 수두룩하다고. 대한민국 월급쟁이 월급 수준 다 안다. 10년 동안 대기업 다니는 애아빠 덕에 월급쟁이 수준  다 아는데,  50보 백보 아닌감. 아파트로, 땅으로, 주식으로 돈 벌 수 있다는 환상에서 제발 깨어났으면 좋겠다. 투기는 한 두푼 끌어 모으는 우직함을,정직함을 밀어버리는 전염병과 같다.  게다가 이런 선두주자 투기꾼들은 세상에 몇 되지 않고,  맹박이 책 제목대로 신화는 없다. 비싼 돈 주고 이런 재테크 서적 사느니(내년에 헌책으로 팔려고 해도 300원밖에 못 받는다) 다른 좋은 책 읽은 게 휠씬 정신 건강에 좋을 듯 싶다.  바보천지소리 들어도 적금 부어 목돈 만드는 게 제일이더라. 재테크, 아파트가 무슨 컬렉션 대상이냐, 당신 이 책 쓰고 파는 것이야말로 재테크의 주수입원이지. 웃기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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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 동안 스티븐킹의 편집장인 Chuck Verrill 이 쓴  듀마키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곳(Duma Key: Where it all began)에 따르면, 2006년 봄에 킹이 그에게  <리시 이야기>가 결혼이야기라면, 듀마 키라고 이름 붙인 차기작은 이혼 이야기가 될 것 같아라고 말하고 나서, 얼마 뒤  낯익은 주소의 메인에서 온 작은 소포를 받았다. 그 소포에는  작은 꾸러미가 있었고,  미네소타를 배경으로 이혼 이야기인 Memory라는 단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Memory는 Tin House라는 단편집에 실려 출간되었고, 킹은 그 때 막 Duma key의 초고를 완성한 시기였다. 분명한 것은 Duma key의 주인공 Edgar Freemantle 는 단편소설 Memory의 화자와 동일인물이고,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로 배경을 바꿜을 뿐, 이혼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고 낯선 그리고 끔찍하게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http://www.amazon.com/Duma-Key-Novel-Stephen-King/dp/1416552510/ref=pd_bbs_2?ie=UTF8&s=books&qid=1220487929&sr=8-2 에 들어가면 Memory와 Duma key의 두 텍스트 비교가  잠깐 나온다.  참고하시길.

사실 나는 킹이 작품을 출간될 때 마다, 묘한 갈등을 겪는다.  그의 악령이 출몰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읽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언젠가 그의 <데스퍼레이트>를 읽다가 심리적인 공포감을 견뎌내지 못해 읽다가 중간에 내려 놓고, 다시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지만, 그의 작품이 영화화 되고, 원작인 그의 작품이 신화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 내 안에 꿈틀대는 호기심의 촉수가 다시 그의 작품에 뻗치는 것을 꺽지 못한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에는 얼치기 섹스씬도 마약씬도 없어 미국 작가들 중에서 그의 작품은 비교적 접근하기가 편하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한지 못했다.(그렇다. 난 아무리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도 과도한 섹스씬과 마약씬 나오면 확 던져버린다.) 

여하튼, <Duma key>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 완만하게 정상적으로 잘 나가다가도 갑작스레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오는, 어른들의 모험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스푸키타임을 이제는 인정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 들이기 쉽지 않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인 스푸키 문화를 인정해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해해야지만 그의 작품의 진가와 솔솔한 재미를 알 수 있으니깐. 미국의 스푸키 문화에 대한 사랑은 할로윈 축제에서 잘 알 수 있지만, 사실  미국의 스푸키문화는 타문화권인 우리들에게 참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스푸키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과 는 달리, 미국인들은 스푸키를 할로윈 같은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심지어 어린이그림책에서 모리스 센닥조차 스푸키스러우니, 그들에게 스푸키적 상상력은 호러를 괴기스럽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어야 마땅한 지도 모르겠다. 비과학적 상상력이라며  리처드 도킨스나 마이클 셔머같은 과학자들은 펄쩍펄쩍 뛰겠지만. 

빌 브라이슨이 <나를 부르는 숲>에서 테네시주의 교과선택에서 진화론을 빼고 창조론으로 채택했다는 이유로 테네시주를 지나치면서 경멸했듯이, 국민의 40% 이상이 신의 존재를 믿는 나라에서 악령의 존재는 당연하고 인간과  악령과의 대결과 모험은 상상력의 한 끝자락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소재중 하나 일 것이다. 킹의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니 이 작품이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별 세개밖에 주지 못하겠다. 예전의 킹이 다시 돌아왔다고들 하지만 글쎄, 내 생각에는 화려한 젊은 날의 왕은 사라지고 노쇠한 왕이 무딘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킹의 글솜씨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유혹하는 글쓰기>의  머릿말에서 "나 같은 얼치기도 나름대로 문장에 대해 고민하다. 그리고 종이 위에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를 향상시키려고 열심히 노력한다"(p11)고 하질 않나.

이 책의 주인공 에드가는 교통사고로 한 쪽 팔을 잃고 아내마저 떠나버린다.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이혼으로 인한 감정적 추스림을 그럴싸하게 진지하게 성찰하기보다는(이 무슨 망할 놈의 순수문학적 지향!) 호러문학의 제왕답게 악령과의 대결로 풀어나간다. 순수문학이었다면, 아마도 자기혐오내지 자기 변명으로 , 자기성찰이라는 포장하에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서 상대방의 탓으로 해결하겠지만. 킹은 에드가의 이혼과 장애로 움푹 패인 감정의 골을 악령과의 한판 대결로 자기 회복의 최고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처음 유연하게 흐르는 듯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뒷부분에 치닿을 수록 제법 스케일이 큰 모험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뭔가 뒷심이 부족하다. 할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러닝타임에 맞쳐 끝내는 영화 같았고 이 전 작품에서 문장 한줄 한줄에서 보여준 심리적 공포감이나 오싹함은 느끼지 못했다. 한편의 그러저럭 잘 된 드라마 같았다고 할까.

이렇게 킹의 작품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외면할 의도는 아니다. 난 어쩌면 계속해서 그의 이전 작품을 사고 차기작이 나오더라도 돈 아끼지 않고 사서 읽을 것이다. 단지 그가 젊었을 때의 뿜어 내는 광기어린 작품을 나이 든 킹이 한번 더 써 주길 원할 뿐이다.

킹의 홈피 : http://www.stephen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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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출판사에서 5.15일날 주최한 마쓰이 다다시 강연회 글이다. 후쿠인칸쇼텐의 편집자로서 일본의 그림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아동문학가 마쓰이 다다시를먼 발치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한껏 부푼 마음으로 한림출판사에 일반인도 갈 수 있는지 여부를 전화로 문의했더니 일반인은 참석불가라고.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그 여직원의 말투는 친절했고 상당히 미안해했지만, 그럴 거면 왜 한림출판사 홈피 메인에 띄우냐,고 따지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동문학작가들과 출판인들을 위한 강연회하는데 낸들 어쩌겠는가. 속상한 맘을 접을 수 밖에. 할 수 없이 그날 딩가딩가 놀았다.

마쓰이 다다시의 작품들

 

 

 

 

 



No.1
50여년 동안 그림책의 기획과 편집 그 출판에 걸쳐진 인쇄와 제본까지 관여하며 기획기편집을 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추우에서는 저를  “걸어다니는 광고 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자에게로의 보급 활동에 직접 관계하고 종시해온 경험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통감하는 것은, 출판이라는 문화와 사업을 근본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은 독자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림책은, 아이라는 독자를 잘 인식하고, 아이의 독서 방법과 그림책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동시에 또 그림책이라는 존재의 특색과 매력을 잘 이해하고, 그것이 아이의 감각과 기분에 어떻게 관여되는지를 꿰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책과 독자와의 관계를 정의한,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출판된 책의 반은 팔리지 않는다. 팔린 책의 반은 읽히지 않는다. 읽혀진 책의  반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어진 책의 반은 오해 되어있다.
확실히 출판이라는 것은  독자가 이해하고 영감을 얻고 만족하여, 마음으로부터 납득하는 것에서부터 처음으로 완결하는 것입니다.


No.2
이런 면에서 그림책을 잘 고찰 해보면,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저는 아래와 같은 견해입니다.
그림책은 언어의 원천이며, 독자에게로의 출발점입니다. "책이라는 것은 조형입니다." 그러나 그림책은 그림이 많고 문장이 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어른들은 그림책의 독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어른은 그림책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림은 보는 것뿐으로
단순하게 생각해버립니다. 그러나 실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만, 문장을 아직 읽을 수없는 유아들은 그림을 읽습니다. 그림은 끝에서 끝까지 모두 언어 바로 그자체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언어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 유아들이 혼자서 그림책을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을 통하여 이야기를 읽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때에 혼자서 곧 잘 그림책을 보면서 즐거워 했습니다.(아마 글을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계기입니다.
독서력을 기르는 데는 언어를 아주 좋아하게 하는 것과 책을 좋아하게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No.3
아이가 누군가 어른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귀로 듣는 언어와 눈으로 그림을 읽어내는 언어의 다리가 연결되면서 아이들이 내면에서 하나로 연결되면서 융화되어 생생하고 살아있는 풍요로운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책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그림책에는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개의 언어세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가 책이라는 형태로 조합되어 조형적 표현이 되는 것으로 책이라는 조형을 살리는 것이 인간의 손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손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 관계를 갖고 있어, 독서의 즐거움, 그림책을 읽는 기쁨은 손을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손의 움직임으로(곧페이지를 넘기는 것으로) 이야기와내용이 살아납니다. 그 부분이 애니메이션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것으로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은 완전히 이질적인 각자의 특색을 갖은 문화입니다.
저의 그림책 편집의 기본 방침은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이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 이라는 점입니다.


No.4
그래서 여기서부터 책의 문화와 독서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문자를 읽는 것이라는 기술만을
습득해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가 책을 열고 문자를
읽고, 언어를 읽고 문장을 읽는 것에서 그친다면
표면적인 의미와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지만
문장에 이야기 되어진 저자의 내면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자의 느낌, 생각,
사고, 마음에 그리는 것, 상상력을 구사하는 것에 대한  사고력의
한계를 만들어 버려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읽어낼 수가 없다면
독서의 체험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최근 환타지가 곧 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줄거리를 세우는 것으로 멈춰져 있고 공상의 세계를 실감하거나
이야기에 내포되어 있는 진실을 읽어내고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림책을 포함한 아동문학의 창작으로 가장 작가가
중요시 여기는 것 즉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분분은 바로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것 처럼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테마랑 내용이라도 

 
No. 5
아이가 읽어서, 장면과 인물이 분명히 눈에 보이도록
이미지 연출이 되지 않으면 독자는 흥미를
잃습니다. 설명적인 문장에서는 정경이 떠오르지 않으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습니다. 어른은 테마에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는 이야기의
세부까지 생생히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끼고,
실감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으면
계속 읽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그 전달하려는 것의 표현방법이야말로 어린이 그림책을
편집할 때의 열쇠입니다.
번역그림책을 편집할 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미국 저자 ‘마샤 브라운’의
대표 그림책<세 마리 염소>의 일본어판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오고 있는 롱베스트셀러입니다.
어느 날, 마샤 브라운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옛이야기  <세 마리 염소>가
일본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이

No. 6
팔려 읽히는 건가요? 본국인 미국 영어판
출판부수보다도 일본어판이
훨씬 많이 팔리고 있어요. 나를 일본
독자들이 먹여 살리는 것 같아요.” 라고 말입니다.
미국 인구는 일본보다 훨씬 많고
또 아이 수도 3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할지가 떠오르지 않고 “그 그림책은
옛이야기 그림책의 걸작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죠.”
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 보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어판의 일본어 때문입니다. 일본어판의 번역자, 세타테이지 선생님은 내외적으로
아동문학과 일본의 고전문학에 정통해 있는 분으로
세타테이지선생님의 일본어역은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는
아동서 중에서 발군의 뛰어난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세타테이지 선생님은 일본어의 고대부터의 전통을
착실히 밟아,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문학이라는
본질을 깨닫고, 귀로 듣는 일본어의
이야기 힘을 충분히 살려 번역을 했습니다.

No. 7
아이의 이해력만이 아닌 감각과 기분에 맞춰
아이에게 이야기 걸어주는 일본어로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기 안으로 받아들여 
노르웨이의 옛이야기라 해도 저항 없이
그 세계로 들어가, 반복해 읽어도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아셨을 테지만, 그림책 번역
출판의 경우, 그림은 원서와 전혀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번역문에 따라
이야기 세계가 아이에게 전달되는지 안 되는지가 결정됩니다.
최근에는 자칫 그림책의 그림에 많은 중점을 두고, 이야기와
문장표현이 조금은 부족해 진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는 아이의 독서력은 길러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아이는 그림책의 그림을 읽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림책의 그림은 아이와 어른에게 보이기 위한
그림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림이 문장
이상으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그밖에 화가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날카롭고 깊게 읽어내는가 ,
 마음에 생각한 것을 그려냈는가 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No. 8
나는 그림책 편집을 수년간 경험하면서 그림책 화가를 누구로
할지 결정할 때의 판단의 기준은
우선 화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는건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지만그 이상으로 화가가 이야기를
대하는 이해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를 정확히
시각화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력의 수준을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안데르센상 화가상을 수상한
아카바 수에키치와는 첫 그림책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편집자로써 함께한
작품으로 그 이야기에 대하는  이해력,
 해석하며,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이야기세계를 창조하는
표현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같은 국제 안데르센상 화가상을 수상한
안노 미쓰마사는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도감과 공작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수업에서 있어서의 논리성과 상상력,
이야기 이해의 독창성에 감탄하고, 회화표현이 세부적으로
들어가기까지 치밀히 구성해 시각화하는 힘에 공감하고,
그림책 편집을 함께 했습니다.


No. 9
 그 밖에 1960년대부터 그림책 만드는 것을 함께 해
 온 그래픽 디자이너의 호리우치세이이치씨와
 만화가 초신타 씨, 과학자로
 어린이의 전통적인 놀이 연구자이기도 한
가코사토시 씨와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이 현재
일본 그림책의 기초를 만들고, 그림책 표현에 풍성한
가능성을 가져오고, 후에 계속해서 그림책 작가와 화가에게
매우 큰 자극과 나아갈 발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이 이야기를 나타내는 요소는 색채가 아닌,
우선 선과 형태, 구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면을 전개하는 구도와, 그 연속성과 변화가
이야기의 스토리와 플롯을 말해줍니다.(여기서 스토리는 지금부터 시작의 의미이며 플롯은 왜 어떻게의 의미입니다.) .
더욱이 주목해야 하는 요소는 어떤 부분을 세부적으로 그릴 것인지, 여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여백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말한 요소를 멋지게 갖춘, 바로 보이지 않는
시간을 테마로 해 19세기 이래로 미국
사회사와 사상사를 그린 그림책
‘버지니아 리튼’의 <작은 집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책이 이야기그림책으로 끝없는 가능성을 주었고

No. 10
 나를 가르쳐주었고
월간 이야기그림책 <어린이의 벗>이라는 창간을 결심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 레오 리오니의 <파랑이와 노랑이>랑
딕 브루너의 그림책의 정사각형의 판형은
이야기그림책의 내용과 책의 형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그 형태를 살리는 뛰어난 정면성과 중심성의 표현은
네델란드의 풍토와 문화에 깊게 관계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색채의 문제를 풀겠습니다.  최근의 그림책은
인쇄기술의 진보도 있고, 색채가 눈에 띄는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표면적으로 눈을 현혹시키는 것에 치
중되어 이야기성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그림은 전통적으로 색채에는
엄숙함이 있고, 그만큼 마음과 정신을
소중히 해 왔습니다. 이 전통은 이어
고쳐가며 견고히 계승하는 일이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No. 11
서구의 그림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이어나가고 새로운 그림을 창조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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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7-07 11:31   좋아요 0 | URL
어린이와 그림책, 저 책을 읽고 얼마나 좋아라 했던지...그런데 제가 읽은 거랑 표지가 달라진 걸 보니 그 사이 재출간이 되었나보네요.

기억의집 2008-07-08 00:15   좋아요 0 | URL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그때는 도서관스타일로 표지를 바꿔놨더라구요. 작년에 노원서점 어린이코너에서 50% 할인해서 구입할 때의 표지는 지금 현재의 표지던데..전의 겉표지는 이게 아니었군요.^^
 

오랫만에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신간 그림책을 발견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배포되지 않았는지 주문을 해도 며칠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다.

1.

 존 오듀본, 이런 미국적인 아주 미국적인 인물이 발간될까 싶었는데... 나왔다. 존 오듀본은 책 설명에도 소개가 잘 되어있듯이, 18세기에 활동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이자 화가이다. 그의 조류에 대한 기록,  특히나 북미새에 대한 기록과 그림은 오늘 날 조류학과 자연사(natural history)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조류 그림은 , 비록 새를 죽여 자신이 관찰한 모습대로 고정한 후, 그림을 그린 것이긴 하지만, 야생성과 함께 생동감 넘친다. 이 그림책은 자신의 사업도 내 팽긴 채,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림을 그린,   오듀본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야생조류를 쫓는 탐험가로서의 삶인지 아니면 화가로 촛점을 맞추었는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크리미널 마인드의 기디언도 오듀본의 야생조류 그림을 수집한다)

2.

 아키코 여사의 최신그림책이 나왔다. 말이 최신이지 글쓴이가 1977년에 작고한 것으로 봐서는 1970년대 나왔던 작품을, 한림에서 이번에 발간한 것 같다. 여러군데 인터넷 서점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그림은 역시나 촌스럽기는 하지만, 배시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의 순진성이 살아있다. 일본 아마존에서도 이 작품은 보지 못했는데... 일본에서는 절판된 책이 아닐까싶다. 아키코의 작품의 질적 수준을 떠나 수집하는 작가이다 보니, 구입해서 종이로 뭘 만들기를 좋아하는 큰애하고 책에 나온 요령대로 함 시도나 해봐야겠다. 일본그림책 작가들은 지루한, 고루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이야기 된다는 것에 공감을 느껴서 인지, 읽어주는 내내 즐거워한다. 덩달아 엄마인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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