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도 모든 독자에게 동일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작품이란 피사체와 같아서, 동일한 피사체라도 그 작품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다 같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위치에서 찍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인상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독자들을 둘러 싼 여러가지 환경 설정에 의해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결정된다.
 
이 작품의 작가 존 어빙의 <가아프의 세계>를 읽었던 나의 환경설정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어느정도 성숙한 시기였는데, 아마도  성경험이 없던 20대 시절에 읽었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또 섹스 타령이냐며 획 던져버릴 그런 책이었다. 지금도 로맨스 분야 소설은 별 매력을 못 느끼지만, 섹스와 불륜의 욕망으로 도배한 이 책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존 어빙의 특유의 글솜씨 때문이었다. 존 어빙이란 작가, 진지함은 둘째치고라도 문맥상으로는 참 별 거 아닌 단 한 장의 문장으로도  사람을 실실 웃게 만드는,  매력있는 작가다. 이 작가의 글은, 뭐랄까, 언젠가 야구광인 남편 옆에서 앉아 보게 된 메이저리그 경기중에서, 선수 대기석에 앉아 진행중인 동료 선수들의 게임을 보면서 무표정한 얼굴로(진짜 무표정도 그런 무표정이 없다!) 응원석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 추는 모습, 무표정과 댄스라는 기막힌 부조화에 씨익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존 어빙의 글이 그렇다. 그의 글은 무표정스럽다. 욕망이야기를 할 때도 독자에게감정이 흥건히 고인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아니다.  (혹 욕망 어쩌구 저쩌구 해서 성적 호기심에 읽고 싶은 독자라면 D.H. 로렌스 소설이면 족하다는)  욕망스러운 글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고 내러티브를 만든다. 무표정스러운 글 위에 요동치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 배시시 터져나오는 웃음, 그게 바로 존어빙의 문장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 사이더하우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추석 며칠 전에 한가위 때 읽을 요량으로 주문했는데...중고샆에 나와 있어 급 취소.


정작 오즈의 마법사의 오리지널은 읽지 않고 오즈의 마법사를 쓴 프랭크 바움의 삶이 궁금해 주문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바움이 인기 작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4월에 출간하고도 알라딘 신간 소개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이 책이 출간 되었다는 것을 안 것도 동네 서점에서 통해서 알 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14권으로 구성된 오즈의 마법사나 다 읽어볼까 싶다.(아영엄마 댁에 갔더니 이 책(문학세계사판) 책장에 쫘악 꽂혀있는데... 내심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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