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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ㅣ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 동안 스티븐킹의 편집장인 Chuck Verrill 이 쓴 듀마키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곳(Duma Key: Where it all began)에 따르면, 2006년 봄에 킹이 그에게 <리시 이야기>가 결혼이야기라면, 듀마 키라고 이름 붙인 차기작은 이혼 이야기가 될 것 같아라고 말하고 나서, 얼마 뒤 낯익은 주소의 메인에서 온 작은 소포를 받았다. 그 소포에는 작은 꾸러미가 있었고, 미네소타를 배경으로 이혼 이야기인 Memory라는 단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Memory는 Tin House라는 단편집에 실려 출간되었고, 킹은 그 때 막 Duma key의 초고를 완성한 시기였다. 분명한 것은 Duma key의 주인공 Edgar Freemantle 는 단편소설 Memory의 화자와 동일인물이고,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로 배경을 바꿜을 뿐, 이혼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고 낯선 그리고 끔찍하게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http://www.amazon.com/Duma-Key-Novel-Stephen-King/dp/1416552510/ref=pd_bbs_2?ie=UTF8&s=books&qid=1220487929&sr=8-2 에 들어가면 Memory와 Duma key의 두 텍스트 비교가 잠깐 나온다. 참고하시길.
사실 나는 킹이 작품을 출간될 때 마다, 묘한 갈등을 겪는다. 그의 악령이 출몰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읽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언젠가 그의 <데스퍼레이트>를 읽다가 심리적인 공포감을 견뎌내지 못해 읽다가 중간에 내려 놓고, 다시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지만, 그의 작품이 영화화 되고, 원작인 그의 작품이 신화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 내 안에 꿈틀대는 호기심의 촉수가 다시 그의 작품에 뻗치는 것을 꺽지 못한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에는 얼치기 섹스씬도 마약씬도 없어 미국 작가들 중에서 그의 작품은 비교적 접근하기가 편하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한지 못했다.(그렇다. 난 아무리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도 과도한 섹스씬과 마약씬 나오면 확 던져버린다.)
여하튼, <Duma key>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 완만하게 정상적으로 잘 나가다가도 갑작스레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오는, 어른들의 모험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스푸키타임을 이제는 인정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 들이기 쉽지 않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인 스푸키 문화를 인정해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해해야지만 그의 작품의 진가와 솔솔한 재미를 알 수 있으니깐. 미국의 스푸키 문화에 대한 사랑은 할로윈 축제에서 잘 알 수 있지만, 사실 미국의 스푸키문화는 타문화권인 우리들에게 참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스푸키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과 는 달리, 미국인들은 스푸키를 할로윈 같은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심지어 어린이그림책에서 모리스 센닥조차 스푸키스러우니, 그들에게 스푸키적 상상력은 호러를 괴기스럽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어야 마땅한 지도 모르겠다. 비과학적 상상력이라며 리처드 도킨스나 마이클 셔머같은 과학자들은 펄쩍펄쩍 뛰겠지만.
빌 브라이슨이 <나를 부르는 숲>에서 테네시주의 교과선택에서 진화론을 빼고 창조론으로 채택했다는 이유로 테네시주를 지나치면서 경멸했듯이, 국민의 40% 이상이 신의 존재를 믿는 나라에서 악령의 존재는 당연하고 인간과 악령과의 대결과 모험은 상상력의 한 끝자락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소재중 하나 일 것이다. 킹의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니 이 작품이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별 세개밖에 주지 못하겠다. 예전의 킹이 다시 돌아왔다고들 하지만 글쎄, 내 생각에는 화려한 젊은 날의 왕은 사라지고 노쇠한 왕이 무딘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킹의 글솜씨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유혹하는 글쓰기>의 머릿말에서 "나 같은 얼치기도 나름대로 문장에 대해 고민하다. 그리고 종이 위에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를 향상시키려고 열심히 노력한다"(p11)고 하질 않나.
이 책의 주인공 에드가는 교통사고로 한 쪽 팔을 잃고 아내마저 떠나버린다.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이혼으로 인한 감정적 추스림을 그럴싸하게 진지하게 성찰하기보다는(이 무슨 망할 놈의 순수문학적 지향!) 호러문학의 제왕답게 악령과의 대결로 풀어나간다. 순수문학이었다면, 아마도 자기혐오내지 자기 변명으로 , 자기성찰이라는 포장하에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서 상대방의 탓으로 해결하겠지만. 킹은 에드가의 이혼과 장애로 움푹 패인 감정의 골을 악령과의 한판 대결로 자기 회복의 최고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처음 유연하게 흐르는 듯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뒷부분에 치닿을 수록 제법 스케일이 큰 모험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뭔가 뒷심이 부족하다. 할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러닝타임에 맞쳐 끝내는 영화 같았고 이 전 작품에서 문장 한줄 한줄에서 보여준 심리적 공포감이나 오싹함은 느끼지 못했다. 한편의 그러저럭 잘 된 드라마 같았다고 할까.
이렇게 킹의 작품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외면할 의도는 아니다. 난 어쩌면 계속해서 그의 이전 작품을 사고 차기작이 나오더라도 돈 아끼지 않고 사서 읽을 것이다. 단지 그가 젊었을 때의 뿜어 내는 광기어린 작품을 나이 든 킹이 한번 더 써 주길 원할 뿐이다.
킹의 홈피 : http://www.stephenk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