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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평점 :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을 잔뜩 사 들일 때만해도 과학책을 거뜬히 읽어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도킨스의 대부분의 책이 구비되어 있고 아이들도 다 커서 시간적 여유도 있고 자, 그러면 읽는 것만 남았는데 무슨 책부터 시작할까? <눈 먼 시계공>, 글쎄, 처음부터 두꺼운 책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 <무지개를 풀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 !!!! 새책을, 새로운 분야를 대한다는 설레임으로 먼저 무엇을 읽을까로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 새발의 피 정도의 과학적 데이타가 들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수십번을 더 읽어도 문장은, 그의 진화생물학적, 유전학적 주장은 내 머릿 속에 구체화되어 이해되긴 커녕 책 안에 담겨있는 단어들만 겉돌 뿐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에게 쩔쩔 매다 할 수 없이 중간만 읽고 내려놓았다. 완전 패배였고 충격이었다. 내 지적 수준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하는 자조도 좀 일었고.
과학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한 두줄 짜리 과학 토막 상식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 천재라고는 알고 있어도 그가 왜 천재소리를 듣는지 공식만 알았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리처드 파인만의 에피소드나 실린 책이나 읽으며 끽끽거리거나 과학사의 뒷 이야기정도만 읽었지 개략적이나마 과학 역사나 과학 이론 자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전무후무했다. 그런 상태에서 생물진화라는 과학적 주장이 담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 권의 과학책을 읽으면서 구분한 것이 있다. 과학책은 독자에게 리처드 도킨스처럼 자신의 연구 학문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과학적 창조자 maker와 그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giver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반 독자에게 메이커의 책은 쉽게 접근할 만 분야는 아니다. 메이커가 생각해낸 창조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마침내 과학적으로 해결되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의 결과물들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쉽지만, 일반 독자에겐 고대 고전을 읽는 것만큼이나 지루하고 뜻 모를 말로 나열된 외계어나 다름 없다. 그렇다고 일반독자가 그들만의 성에 들어가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지 그 성을 이어지는 다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넘지 못할 이론들의 해제와 쉬운 설명으로 무장하고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무수히 노력하는 사람들, 바로 지식 전달자 기버들이 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지식전달자 giver이다. 그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과학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의 과학적 이론,공식, 발견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원자의 무대 위에서,고전적 수수께끼들, 무한과의 만남, 생명의 복잡한 규칙들, 인간의 본성, 과학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이라는 6개의 소분류를 나누고 그 카테고리안에서 그는 그것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주장과 반박 그리고 업적등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과학사의 간략한 보고서라고 할 만 하다. 짧은 글에서 그는 과학이론이나 업적을 최대한 핵심만을 다루려고 했고 그의 글을 통해 과학사의 전체적이면서도 개략적인 모습을 훏어 볼 수 있었다. (뒷장에 다룬 인간이 본성이나 흥미로운 사실들 경우는 실제 너무 짧막하게 다뤄 맛보기정도에 그쳐 이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특히나 프로이드에 심리학 이론이 조작되었다는 설명은 따로 크게 다뤘으면 했을 정도다)
이런 지식 전달자의 역활은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보더니스, 싱, 브라이슨, 정재승, 홍성욱,이은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번역가들등등)은 일반 독자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 지식의 이해를 충족시켜주고 더 나아가 상상력으로 출발한 자신의 과학적 이론이 발전, 이론화될 수 있는 과학 창조자(maker)를 양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버들은 메이커들을 만들 수 있는 엔진과 같은 역활을 한다. 과학책을 단순히 읽는 다는 것은 흥미나 호기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기본적인 과학사나 이론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다면 더 깊은 과학의 세계로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과학사와 과학이론책을 접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세상이 그 어떤 이론도 따로 홀로 단절된 채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에게 영향을 받았고 맥스웰은 페더웨이의 실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빅뱅이론으로 이어진, 상호연관성으로 과학사는 촘촘히 짜여지며 서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우리 생활의 가장 큰 변화의 주역은 과학이다. 과학이란 저 머나먼 우주에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달에 착륙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드는 것 같은, 고도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알 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과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창조물들이다. 가깝지만 멀고 먼 과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쉽게 도움을 주는 수많은 기버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뉴톤의 고전 역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플랑크와 보어의 양자이론을, 튜링의 알레고리를, 이 모든 이론을 한단계 거쳐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해제을 읽은 그 누군가는 언제가 우리도 뉴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칼 세이건, 도킨스, 굴드같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 창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같은 과학하수가 그들의 입담에 빠져 과학책을 옆에 끼고 또 다른 과학책을 찾아 읽게 해준 것은 분명 이런 기버들이 덕이니깐. 그들이 쓴 글을 찾아 읽다보면 언제가는 고차원의 과학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느 정도 대략적이나마 과학적 이론의 체계가 머리 속에 잡히면, 위에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쉽게 읽혀질 날이 분명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