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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중국의 최고의 소설가란 찬사를 받는 옌롄커의 대표 중단편 소설인 [연월일]을 읽었다. 문제적 작가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픈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작가인 연롄커는 독자에게 불편한 삶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보여준다.
이번에 읽은 [연월일]은 지금까지 발표한 70여 편의 소설 중 최고작 4편을 작가가 직접 골라 엮은
소설집이다. 두꺼운 볼륨감을 자랑하는 소설집은 극한의 상황 속 인간성을 세밀하고 촘촘하게 묘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숨쉴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저마다 주어진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경이롭고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너무 강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지닌 극악한 모습, 가장 선한 모습들이 치열하게
그려지고 있다.
첫 소설이자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은 [연월일]은 최악의 가뭄 속에서 살고자 하는 처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 소설이 '본인의 생명 여정의 한 줄기 신비한 극단이자 신비한 시각이며 영혼의 빛'이라 소개한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가뭄으로 모두 떠난 마을을 지키며 옥수수를 심어 키우고 있다. 물 한방울, 잡곡 한 톨 없는 황량한 그곳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생명과
죽음의 한끝 차이를 보여준다.
[골수] 역시 처절한 현실 속 삶의 모습에 그저 넋이 나갈 정도로 아프고 아린 이야기다. 극도로
간결하고 선이 굵게 회화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글에 몰입하다 보면 신실주의라는 그만의 소설 미학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중국의 깊은
시골 어디쯤 소설의 주인공들이 실제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옥수수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목숨 바쳐 돌보지만 결국 그 전에 죽음을 맞이한 셴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저능아 넷을 낳고 자살을 선택한 남편을 둔 요우쓰댁의 깊은 절망은 연민보다 더 진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해주었다.
"남편이 죽었다. 앞으로의 세월에 놀라서 죽어버린 것이다. 남편이 죽자 일상 속의 빛이 휙 하고
어둠으로 버뀌었다"
"그들의 세월은 영원히 깊고 고요한 골목 같았다. 골목 안은 몹시 시커멓고 어두웠다.
어슴푸레하게나마 골목 입구의 빛을 볼 수는 있지만 영원히 거기서 헤어나올 수는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