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거닐다 - 알면 알수록 좋아지는 도시 런던, 느리게 즐기기
손주연 지음 / 리스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직장에 근무하다가 스스로 재충전과 도약을 위해 런던으로 유학(대학원 영화이론 전공)을 떠나 런던에서 2년간 생활하면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발견할 런던의 여러가지를 소개했다.
 
영국에 가기 위해 구입했고 가기 전에 절반 쯤 읽다가 영국에 들어가서 마저 읽은 책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런던을 돌아다니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버스와 지하철(튜브) 같은 교통수단과 런던의 주요 명소를 선택하고 찾고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영국이라는 나라를, 런던이라는 도시를 찾았기에 다소 설레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이란 짧은 여행기간이었기에 저자 만큼 많은 곳을 찾아다니지도 못했고 런던의 여러가지를 느껴보거나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때가 이번 겨울인데다가 이번 겨울에는 영국에 ’20년 만의 폭설과 한파’가 찾아와 온 도시의 교통이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주 초보적인 영어만 가능하기에 묻고 대화하고 이해하는데 다소간의 어려움도 따랐고...^^
일주일 중에 절반은 런던 근교에 사는 후배 집에서, 폭설이 내린 후에는 런던 유스턴역 앞 호텔에서 묵었다.


그나마 호텔에 묵은 며칠 간 마음껏 런던 시내를 걸어다녀 본 것이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Chapter 1 :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저자는 책에서 히드로 공항과 런던 지하철, 차 문화, 시티 오브 런던, 심야버스, 헨델 박물관, 런던대학을 소개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이란 짧은 여행기간이었기에 공항과 지하철, 2층버스 밖에 이용하지 못했고 런던대학은 브리티시 뮤지엄 근처의 대학 입구만 구경하고 말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가 머문다는 벙킹엄 궁전, 영국 왕의 대관식과 공식행사가 이루어진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구경하기도 했다.






저자 말대로 런던에는 백 년이 넘는 건물이 많았다.
내가 한국식당을 찾아 자주 내렸던 토튼햄코트로드 전철역 뒷편에도, 유명한 쇼핑시설인 코벤트가든 앞에도 별로 명성은 없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전자는 1733년에, 후자는 년에 세워진 교회였을 정도다.




런던이란 도시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당초 생각으로는 런던대학 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 등 수 많은 지성과 학자를 배출한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포드 대학을 찾아가 그 발자취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여행일정과 때아닌 기상조건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웠다.
 
Chapter 2 : 예술가의 섬세한 유산을 찾아
저자가 소개한 곳은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갤러리, 화이트 큐브 갤러리,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그래피티 아트..
그 중 내가 찾아간 곳은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였다.
저자 말대로 대영박물관(브리티시 뮤지엄)과 내셔널 갤러리는 볼거리가 가득했다.
200년 넘게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그 지위에 걸맞게 지구 곳곳에서 많은 문화유산과 유물들을 강탈, 매수해왔기 때문이리라.
박물관 가장 후미진 곳에 동아시아 전시관이 위치해있다.
그리고 그 동아시아 전시관 중에서도 한국관은 가장 작은 규모다.
한국관을 돌아보면서 한 편으로는 그 ’규모’에 초라함을 느꼈고 다른 한 편으로는 19~20세기에 영국이 한국은 제대로 침탈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유럽 주요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특별전)하고 있었다.
<영혼의 편지>를 읽으면서 조금 알았던 반 고흐의 그림이 눈에 들어오자, 마치 내가 알고 친했던 사람의 그림처럼 반가웠다.
몇 세기에 걸친 유럽, 북아메리카의 그림들을 모아 전시하는 관계로 반 고흐의 그림도 몇 점 없었다.




특이한 점은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이 무료라는 점...
 
Chapter 3 : 문학의 숲을 걷다.
저자는 워터스톤스, 머더 원, 셜록 홈즈 박물관, 킹스 크로스역, 셰익스피어 글로브, 대영도서관을 소개했다.
그 중 내가 직접 가본 곳은 킹스 크로스역과 대영도서관...
킹스 크로스역은 대영 도서관에 가기 위해 내렸던 전철역이니 결국 대영도서관만 구경한 셈이다.
대영도서관은 규모도 컸고 현대식으로 웅장하게 지어져 있었지만, 기본적인 공용공간과 유물전시관 말고는 구경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런던에 머무는 것이고 대영도서관을 또 다시 찾아올 수 없기에 ID카드를 발급받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자 신분인 나에게 ID카드를 발급해줄 지도 모르겠지만...ㅋ
나도 저자처럼 차링 크로스 서점가를 몇 번 지나쳤고 영국이 미국만큼 신자유주의가 판을 칠 것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서점들이 모두 몰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적지않은 서점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있었다.
대부분의 서점에 손님들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쇼핑 기간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직업과 전공 때문이겠지만..) 셜록 홈즈, 해리포터, 셰익스피어, 제인오스틴과 같은 소설가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으나 난 그들에게 큰 관심이 업었고 시간도 짧아 그냥 무시했다.




Chapter 4 : 도심 속에서 휴식을 즐기다.
저자는 소개한 것은 테라스드 하우스, 켄싱턴 궁전, 리치먼드 파크, 리젠트 스트리트, 타워브지지, 하이드 파크...
내가 찾은 곳은 리젠트 스트리트와 타워브리지, 리젠트 파크, 성제임스파크, 하이드파크였다.
런던 같은 대도시 내에 그렇게 오래되고 크고 작은 공원이 그처럼 많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보수적이면서 전통을 존중하는 영국인들의 성향을 느끼게 해주었다. 








Chapter 5 : 런더너처럼 즐기다.
저자는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 런던펍, 영화과, 클럽, 윔블던 테니스,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소개했다.
런던 도심에는 소규모 극장과 공연장이 많았다.
애초에 런던까지 와서 준비도 안된채 뮤지컬이나 공연을 볼 마음이 없었기에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표를 구입하려고 몰려들고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은 서는 모습만 구경하고 말았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경기를 구경하고픈 마음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그 친구 하나를 보기위해 50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이고 경기시간에 맞추어 맨체스터까지 갈 여유는 없었다.
동행이 없는데다가 술을 먹지 않는 관계로 당연히 펍이나 클럽은 모른채...^^
 
Chapter 6 : <노팅힐>의 주인공처럼
저자는 영화전공자답게 영화 속에 나오는 런던의 명소들-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파크, 포토벨로 마켓, 애비로드, 그로스베너 교회, 빅벤-을 소개했다.
굳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영국 과거사와 현대사에서 중요한 장소일 수 밖에 없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빅벤은 찾아가 보았다.
인간들의 아귀다툼과 발자욱을 수 백년의 세월 동안 견뎌온 웅장함과 경건함이 느껴졌다. 
지인이 영화에 나온다는 ’워털루 브리지’ 역시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Chpater 7 : 패턴이 섞여 새로운 색을 만들다.
저자는 제이미스 이탤리언, 런던 던전, 게이 페스티벌, 첼시 앤티크 페스티벌, 토튼엄 코트 로드, 카페 야마토, 크리스마스 파티를 소개했다.
영국이나 런던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고 며칠만 보낼 여행자 신분이기에 런더너가 되려는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후배 집에 머무를 때에는 후배가 제공하는 한국식단을 맛보고 런던에 나온 낮에는 햄버거나 패스트푸드를 먹다가 런던으로 숙소를 옮긴 후에는 아침, 저녁식사까지 런던식으로 먹을 수 없어서 애써 한국식당가를 찾아갔다.
한국 해외근무자, 유학생들이나 여행객을 생각하여 문을 연 한국식당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국식 불고기, 육계장, 된장찌게 맛 그대로였다.
 
Chapter 8 : 쇼윈도가 나를 부른다.
저자는 코벤트 가든 마켓, 이케아 매장, 해러즈 백화점, 옥스퍼드 스트리트, 캠던 타운, 카너비 스트리트, 디자이너 아울렛을 소개했다.
내가 유일하게 가본 곳은 코벤트 가든 마켓...
저자 말대로 재래시장의 맛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한국에 돌아가 선물로 줄 자그마한 연필이나 악세사리, 머그컵, 옷 등을 샀다.
 
런던...
일주일 정도의 기간으로 그 내면과 분위기를 모두 경험하기는 어려웠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영국이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을지 몰라도, 21세기 현재의 영국의 겨울은 해가 너무 짧은 나라다.
오후 4시면 해가 기울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한다.
국철과 지하철,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바쁘게 타려고 뛰고 빠르게 걷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일주일간 보면서 서울과 다름 없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영국, 그리고 런던을 여행하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더군다나 혹한의 겨울에 가기에는 더욱이나... 누군가가 그러겠다고 해도 말리고 싶다.^^ 

[ 2011년 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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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1
빌 브라이슨 지음, 김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이야기 영국사>와 <영국문화 바로알기>에 이어 영국을 여행하기 위해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출발하기 전에 런던과 인근지역에 대한 부분만 읽었고 런던에서 돌아온 다음에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미국 아이오와주 태생인 저자는 젊어서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잠깐 들를 속셈으로 방문한 영국에 아예 정착하게 되었다 .
정착한 후에 버지니아 워터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났고 만난 지 여섯 달 후에 결혼까지 했다.
영국인들과 함께 20년 동안이나 어울려 살았지만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그가 20년간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고별여행을 떠난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부인에게는 자유로운 쇼핑의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굳힌 저자는 마지막으로 영국을 돌아보기로 결정하고 프랑스 칼레로 간다.
다시 여행하기 20년 전 영국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도버해협을 건너기 위해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도버를 출발해, 잉글랜드 남부와 웨일스, 잉글랜드 북부를 지나 스코틀랜드 최북단 존 오그로츠까지 영국 전체를 구석구석 꼼꼼하게 훑는다.
때로는 타인의 입장에서, 때로는 거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국은 저자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사건들로 얼룩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에게는 젊음이 함께했던 사랑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영국은 축구라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가고,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도 날씨가 좋다고 말하며, 길 찾는 이야기로만 반나절을 떠들 수 있는 특이한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영국인들은 언제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고 '뭔가 부족하거나 없어도 잘' 지낸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애정을 담아 가꿔온 집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그 영국 여행(1995년)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행 초기에 저자는 주로 자신이 몸담았던 장소들에 대한 추억거리를 풀어놓는다.
지금보다 더 낯설고 더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들은 이제 가볍게 떠들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 영국은 그때는 몰랐었던 낯선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자 영원한 탐구대상이다.
30마일을 가기 위해 120마일을 이동해야 하는 영국의 철도체계나 2175년이면 모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영국의 귀족들, 사람과의 접촉을 꺼렸지만 20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무도회장을 가졌던 포틀랜드 공작, 말장난으로 가득한 영국인들의 작명 센스 등 저자의 시점으로 재탄생한 영국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거기다 그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발칙한' 유머는 덤이다.

지금까지 그의 여행기가 늘 그랬듯이 이 책에도 거침없는 입담뿐 아니라 그의 해박한 지식이 여실 없이 드러나 있다.(이런 입장은 출판사의 의견...)
특히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은 눈물겨울 정도다.
아마도 2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는 안정적이고 오랜 역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어린이 그림책에 나올 법한' 전원풍경을 갖게 되었는데도 영국인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 문화재라는 것도 영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별 것 아니다.
한국이나 동양 각 국의 문화재와 비교하면 누추할 수도 있는 것들...
어느 곳에나 넘쳐나는 오래된 가옥들, 들판의 울타리 담장들, 빨간 공중전화부스들이 그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닌 자신이 사랑했던 곳과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떠난 그의 여행은 '좋든 나쁘든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는 마지막 고백으로 끝난다.
그의 고집스런 영국 사랑은 우리에게 신비로우면서도 낯선 영국과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준다.
또한 자신이 살아온 곳, 내가 사랑하는 곳에 숨겨진 나만 아는 이야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가 전하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도록 좋은 곳', 영국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보통의 여행기가 그렇듯이 저자 역시 자신의 감정과 주관에 근거하여 영국의 이곳저곳에 대한 분위기와 풍경을 설명해준다.
특히나 저자는 20년간 삶으로 살았던 영국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면서 여행기를 써내려갔기 때문에 남다른 추억과 감정, 그리고 정보들을 책 속에 쏟아낸다. 
자신의 과거 추억과 기억이 여행기에 많이 담기면서 여행기는 다소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감정과 판단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다.
(저자의 다른 나라에 대한 여행기를 읽어보지 못했기에 영국에 대한 여행기만 그런 것인지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아이오와주 태생의 앵글로색슨의 후예라는 느낌이 강하다.
 
가볍게 여행기를 읽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저자의 인문사회적인 식견이 천박하게 느껴져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다소 불편했다.
문학적인 소양과 표현력도 부족하고(기자출신이라 신문기사나 칼럼같은 느낌), 글 속에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자본가와 노동착취에 대해서 선입견과 편견이 가득하다.
저자가 영국에서 보낸 시간만큼 영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애정의 뿌리나 알맹이는 없는 '앵글로색슨'이기 때문이라는 느낌만 남는다.
 
그래도 저자의 장점은 오랜기간 영국에 있었고 기자생활을 오래했기에 영국 곳곳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 책 속에는 웬만한 영국 내 여행지는 대부분 담겨 있다.
특별한 생각이나 계획없이 영국 전체를 돌아보기 위해 저자의 책에 의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다...
 
 
* 책 속의 문장
- 오랫동안 나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회조직을 두고 한 매우 유의미한 그 실험이 러시아인들이 아닌 영국인들의 손에 맡겨졌다면 훨씬 더 잘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혹독한 사회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영국인들에게는 고스란히 제2의 천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처 부인이 증명해 보였듯이 독재정권도 용인하며 수술이나 생필품 배달이 몇 년이나 늦어져도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릴 사람들이다. 중얼중얼 권력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절대로 반항하는 법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을 쥐었던 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줄도 안다. 이들은 스물다섯 살만 넘으면 동독 사람들처럼 옷을 입는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를 시행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란 뜻이다.(/ 5장 중에서)

- 버지니아 워터는 영국에서 가장 특이하고 별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섞여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 주인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존경스럽다. 그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지냈다. 파자마를 입고 수세미 머리를 한 남자가 제과점 한쪽 구석에 서서 벽을 보고 큰소리로 열변을 토해내도, 눈동자를 굴리며 연신 미소를 짓는 사람이 술집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한 스프에 각설탕을 떨어뜨리고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6장 중에서)

-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들의 태도에 당황하곤 했다. 그들의 낙관주의는 엄청나게 불안한 국면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달라질 거야.'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이만한 게 다행이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싸니까 기분 좋잖아.' '이정도면 정말 괜찮은 거지.' 하지만 나도 점차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갔다. 황량한 해변을 산책 나갔던 어느 날 축축해진 옷을 입고 추운 카페에 앉아 있다가 밀크티 한 잔과 케이크가 나오자 '오,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나 역시 똑같아지고 있음을. 내 삶이 풍족하고 부유해졌다.(/ 7장 중에서)

-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별 이상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 웅장한 집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마련해 머물면서 방문을 뚫어 메시지 상자를 달고 그 안에 쪽지로 글을 적어 하인에게 전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음식은 부엌에서 식당까지 조그만 철로를 만들고는 그 위로 운반했다. 어쩌다가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공작은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면 하인은 가구라도 되는 것처럼 모른 척 하고 그곳을 지나갔다. 이것은 모두 사전에 미리 준비된 훈련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은 하인은 공작의 개인 스케이트장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16장 중에서)

- 솔테어는 1851년에서 1876년 사이에 타이터스 솔트 경이 세운 공업단지다. 그는 19세기가 배출해낸 산업주의를 지향하는 자본가로서 절대금주주의자이고 독선적인데다 하나님을 숭배했다. 한마디로 그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가 지은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고 그가 다니는 교회에 예배를 드려야 했으며 그의 지시를 일언반구의 어김없이 따라야 했다. 마을에는 선술집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았고 지역의 공원에서도 고성방가, 흡연, 오락 등의 꼴사나운 행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사람들은 실든 좋든 간에 아주 맑은 정신을 유지한 채로 부지런하고 얌전하게 지내게 있었다.(/ 18장 중에서)

- 오래전부터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씩 꺼내보고 좋아하는 신문 스크랩이 하나 있다. [웨스턴 데일리]의 일기예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날씨 전망,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입니다. 하지만 비가 조금 내려 기온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날씨를 완벽하게 표현한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웨스턴 데일리]에서는 이 기사를 매일 고대로 내보내도 틀리는 법이 거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신문사라면 정말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24장 중에서)

- 애버딘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히 거슬리는 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나는 천천히 새로 들어선 쇼핑센터 주위를 따라 상당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두들 특색 하나 없이 금방 잊힐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마구 뒤섞이다 끝없이 다시 나눠진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다른 나라에 있다가 애버딘에 처음으로 왔다면 매우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날로 번영하며 깨끗한 도시라고. 서점과 극장, 대학 등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확신한다. 다만 다른 곳과 너무나 닮아 있을 뿐이다. 영국에 있는 도시니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27장 중에서)

-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집 하나가 있다. 나의 조국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집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작은 나라에는 이곳 못지않은 장소가 너무도 많다.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던 나쁘던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래된 교회도, 시골길도, 지나친 낙관주의자들도, '정말 죄송한데요'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내가 모르고 팔꿈치로 툭 쳤는데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도, 병우유도, 토스트에 들어간 콩도, 6월에 건초를 만드는 일도, 바닷가 부두도, 왕립지도원에서 만든 지도도, 밀크티와 핫케이크도, 여름 소나기도, 안개 자욱한 겨울날도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모두 사랑했다.(/ 30장 중에서) 
 [ 2011년 1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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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주변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거에는 나 역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1년에 10권이 채 되지 않는 정도의 책만 읽었는데, 대부분 밥벌이에 필요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또는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책만 읽고 말았다. 책을 본격적으로 가까이하게 된 처음 계기가 무슨 거창한 '진리'를 탐구하려 하거나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약 9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사업을 크게 벌였는데 5년 정도 진행하거나 손실과 부채가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 포기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까웠던 비지니스 파트너들과 크게 분쟁이 벌어졌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유흥과 오락에도 큰 취미가 없었던 내가 좌절하거나 미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친듯이... 그랬기 때문에 처음 고른 책도 인문학이나 경제경영 분야가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소설이었다.
 
1년 정도 자연과학과 소설을 중심으로 책을 읽다보니 스스로 차분해질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책 읽는 습관도 만들어져서 분야를 조금씩 넓혀갔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평이나 독후감, 널리 인정받는 책, 존경할 만한 분들이 추천하는 책 등 자연과학과 소설 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경제경영 등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독서가 생활로 자리잡으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회나 국가 인류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등 드디어 '진리'에 대한 '공부'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작년 3월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스님의 유고집 중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다가 스님의 정신과 세계관이 알고 싶어졌다. 그 이후 여름부터 법정스님 유고집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고 스님의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들어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내 나름대로 독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나름 열심히 책을 읽어온 가운데 내가 깨달은 점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과 평생에 걸쳐 '책 읽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달 공부모임 진행 중 한 여성 참석자로부터 소개받았다. 지난 주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가 장회익 교수의 <공부의 즐거움>과 장회익, 최창덕 교수의 <이분법을 넘어서>였는데 이 책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별도로 읽게 된 것이다. 
 
지난 1980년 대에 한국사회에는 '전쟁같은 노동'이라는 시구와 노래가사가 있었다. 성장과 개발만을 전국가와 국민의 구호로 삼아 숫자와 규모와 덩치만 키우던 개발독재 대한민국은 1960~1980년 대에 노동자를 '노예'처럼 다루고 착취해왔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전쟁같은 노동일'이 한국에서 100%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왜 우리 어린 학생들은 '전쟁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가? 성적과 시험공부에 스트레스 받은 중,고등학생들이 꾸준히 자살하는 가운데 이제는 카이스트 대학생 마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지도 않고 독서를 장려하지도 않는다. 우리 학생들은 존재의 근원이나 행복의 조건, 개인과 사회와 민족과 국가와 세계의 연관관계, 자연과 우주의 진리, 올바른 삶이나 도덕적인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해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리고 왜 '공부'는 '학교' 다닐 때에만 하는 것이고 '졸업'하면 공부에 담을 쌓는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 대해 모두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도대체 우리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과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에서 현대 국가체제의 옹호자들과 학교가 '공부'에 대해 퍼트린 거짓말을 폭로한다. 학교가 사회에 제도로써 설립된지 200년 남짓할 뿐이다.(한국의 경우 겨우 60년 정도) 그 이후 학교는 '공부'를 독점하였고 학교가 내세우는 세 가지, 즉 '공부는 때가 있다', '독서는 공부와 별개다', '창의성만 있으면 된다'가 거짓말임을 밝혀낸다.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 공부법]에서 파괴되고 짓밟혀진 '공부'를 제대로 일으키기 위하여 저자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앎의 꼬뮌'과 '암송과 구술',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이다. 암송과 구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공부에 어떤 변화와 힘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전에 대한 독서가 학생들과 사람들의 삶을 풍족하게 할 것임을 알려준다.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에서 공부를 위한 스승과 친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돈과 출세 등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은 공부가 아니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삶을 위한 공부가 참다운 공부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해줌으로써 공부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부하는 것, 암송과 구술을 통해 소리로써 타인들과 공명하고 스승과 친구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앎의 즐거움', '배움의 열정'에서 시작된 공부의 의미를 찾고, 무엇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며 함께 성장하는 공부의 목적을 알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체험과 현재 운영 중인 사례를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공부의 의미,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학교’를 비롯하여 ‘토요서당’, ‘일요서당’ 등의 청소년 프로그램 등 고전을 응용한 공부,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우(師友)들의 일상생활 공부를 풀어내 공부가 우리 삶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현장 또한 보여준다. 
 
 
'공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법은 참신하고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저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향과 방법론 또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얼마나 접근하여 실천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검증되겠지만...
 
저자는 현재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학과 교실의 붕괴', 사교육의 기승, 교육당국의 무능, 학보무들의 본능, '공부'에 대한 왜곡된 사회문화의식과 현상 등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삶과 행복을 찾고 이루기 위해 학습과 공부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가능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의무교육 제도에 의해 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저자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올바른 '공부'를 위해 제도권 밖에서 '꼬뮌'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는 주장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위험한' 면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공부 만능주의'에 가까운 공부에 대한, 독서에 대한 과도한 강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는 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행복에는 '많이 아는 것'만이 지름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동양이나 서양의 고전 속에는 반드시 '지행일치'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공부의 내공이 높고 '썰을 잘 푸는' 사람이 꼭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쓴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인생역전'이라는 단어는 심했다.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일반 독자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는 책의 제목 - 공부의 달인 - 도 다분히 상업적으로 보인다.)
 
예로 부터 실천이 따르지 않는 배움과 학식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망칠 가능성이 높고 한 나라와 민족도 망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제시대와 해방 후, 군사독재 시대와 지금까지 고전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과연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을 살았던가 싶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하고 실천이 부족한 사람들은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부정한 권력에 몸을 담아 민중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을 뿐이다. 즉,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그 힘이 선하고 올바르게, 참되고 모두에게 베풀어지려면 인간성과 세계관, 끝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나 앎보다 그런 것들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공부와 독서와 '많이 아는 것'에 대해 장점만 강조할 뿐 단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 책 속의 문장 : 
- 10대와 60~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단연코 공부 밖에는 길이 없다. ... 노인은 원숙한 시야를 바탕으로, 청년은 젊음의 역동적 기운으로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면 된다. 그리고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세대 차이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공부야말로 노화를 방지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p.47)
 
-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꼬뮌'. 꼬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그 꼬뮌에 접속한다는 뜻이다.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꼬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p.81)
 
- 암송은 형식 자체가 집합적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의 사적 소유라는 주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한두 사람이 튀는 것보다 다 함께 리듬을 타야만 즐거운 공부가 가능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속의 배치 속에선 뛰어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서로를 소외시킬 필요가 없다. (p.92)
 
- 그렇기 때문에 구술 능력은 리더쉽으로 연결된다. 사실 리더쉽의 많은 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걸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한번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학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p.102)
 
-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 <주역>처럼 실제로 우주의 비의가 담겨 있는 것도 있고, [불경]이나 <성경>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탐구하는 것도 있고, <돈키호테>나 <열하일기>처럼 삶의 지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도 있다. 한 인간이 평생 겸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그 협소한 시공간을 넘어 아득한 역사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탐구할 수도 있다. (p.117)
 
-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 기술,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이반 일리히 <학교없는 사회>)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p.146)
 
- 돌이켜보면, 저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은 온갖 탄압과 고난 속에서도 책을 읽고 사유를 했다. (중략)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객관적 상황은 말할 나위 없이 좋아졌지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세계를 사유하지도, 변혁을 꿈꾸지도 않는다. 실존적 고뇌에 대해서는 잊은지 오래다. 그럼, 우리시대의 노동자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다만 노동조합의 일원이 되었을 뿐이다. 가족의 품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휴가를 얻기 위해 싸우는 평범한 중산층이 되었다. (p.200)
 
[ 2011년 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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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7:11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시집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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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들에게 그의 시와 노래 ’노동의 새벽’은 뼛 속 깊은 울림이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전쟁같은 밤 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자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그 시인은 노동자의 새벽을 열기 위하여, 노동해방을 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고 조직을 건설하여 그 거대한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거대권력 앞에 가로막혔고 거대권력의 철창에 갇혔다.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온몸을 던져 살아온 박노해.
그의 삶과 투쟁은 1980~90년대의 우리 땅의 모습 그 자체였다.
1980년대 군사정권의 강권통치로 어둠이 가득했던 시절, 그는 우리들의 희망이자 노동해방과 민주화의 상징이었으며, 19990년대 분단 대치 중인 한국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자본주의와 강권통치에 맞섰다.
사회주의가 노동자,농민,서민을 해방시키는 길임을 믿고 혁명운동에 온몸을 던졌던 그는 사형선고를 받던 그 때,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붕괴 현실을 목도해야만 했다.
이후 그는 ’실패한 혁명가’로서 정직하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그 결과에 절망하면서 그동안의 과정과 시대의 변화에 맞는 내부로부터의 성찰과 자기쇄신을 통한 새로운 진보이념을 개척하기 위해 함구해왔다.
 
그리고 민주화가 되고 자유의 몸이 된 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 ’말할 때가 있으면 침묵할 때가 있다 / 누구나 옳은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 지금, 삶이 말하게 할 때이다’ (’깨끗한 말’) 라며 그는 홀로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현장에서 글로벌 평화나눔을 펼쳐왔다.
동시에 "온몸을 던져 혁명의 깃발을 들고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는 처절한 자기고백과 함께 지구 시대의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에 착수해왔다.
스스로 잊혀짐의 시간을 선택한 박노해.
그 긴 침묵의 시간이 잉태한 시대정신의 한자락이 이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의 이번 신작 시집은 12년만에 출간된 것이다.
이 시집은 그가 10여 년의 침묵정진 속에서 육필로 새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4편을 묶어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저주 받은 고전’ <노동의 새벽>(1984)으로 문단을 경악시키고, 민중의 노래가 되었다.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1997),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1997)와 <오늘은 다르게>(1999), <겨울이 꽃핀다>(1999)를 출간한 이후,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긴 침묵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가 말을 꺼냈다.
이 시를 통하여 그는 이념이 붕괴하고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전지구와 한반도를 점령하는 이 시기, 길 잃은 이들에게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새로운 주체 선언으로 또 한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그의 시는 그가 발바닥 사랑으로 걸어다닌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의 넓이만큼 넓고, 그의 정직한 절망과 상처와 슬픔과 기도만큼 깊으며, 참혹한 세계 분쟁현장과 험난한 토박이 마을의 울부짖음과 한숨만큼 울림은 크다.
가난하고 짓밟히는 약자와 죽어가는 생명을 끌어안고, 국경 없는안ㄷ 적들의 심장을 찌르는 시.
가진 자들에게는 서늘한 공포와 전율을, 약자들에게는 한없는 위안과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는 묵직한 감동과 뼈아픈 성찰을 안겨준다.
그의 시는 지구시대 유랑의 시이고, 순례의 시이고, 목숨 건 희망찾기의 시이다.
이 시집은 21세기로 다시 태어난 <노동의 새벽>이다.
 
시인은 가치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나에게 차분히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그 분의 말처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깨닫고 정립하고 싶다.
그 분처럼 내 주변에서부터, 이웃에게, 부족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나에게 기대해본다.

내가 이 시집을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모든 이들에게 직접 음미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 감명깊게 접한 시들
- ’ 넌 나처럼 살지 마라 ’(p.14)
- ’ 너의 눈빛이 변했다 ’(p.25)
- ’ 자기 삶의 연구자 ’(p.36)
- ’ 아이폰의 뒷면 ’(p.49)
- ’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p.52)
- ’ 사람의 깃발 ’(p.61)
- ’ 말의 힘 ’(p.83)
- ’ 안 팔어 ’(p.85)
- ’ 도시에 사는 사람 ’(p.121)
- ’ 혁명은 거기까지 ’(p.130)
- ’ 건너뛴 삶 ’(p.142)
- ’ 유산 ’(p.152)
- ’ 속울음 ’(p.184)
- ’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 ’(p.195)
- ’ 그리운 커닝 ’(p.197)
- ’ 다 아는 이야기 ’(p.222)
- ’ 거대한 착각 ’(p.248)
- ’ 삶이 말하게 하라 ’(p.253)
- ’ 어린 수경 ’(p.254)
- ’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p.266)
- ’ 우리 밀 ’(p.298)
- ’ 촛불의 아이야 ’(p.300)
- ’ 보험 ’(p.311)
- ’ 두 가지만 주소서 ’(p.319)
- ’ 주의자와 위주자 ’(p.347)
- ’ 시간의 중력 법칙 ’(p.370)
- ’ 너의 날개는 ’(p.385)
- ’ 내가 쓰러질 때 ’(p.387)
- ’ 경운기를 보내며 ’(p.393)
- ’ 크게 울어라 ’ (p.395)
- ’ 사람이 희망인 나라 ’(p.397)
- ’ 나랑 함께 놀래? ’(p.400)
- ’ 젊은 피 ’(p.408)
- ’ 틀려야 맞춘다 ’(p.410)
- ’ 구명 뚫린 잎 ’(p.425)
- ’ 참 사람이 사는 법 ’(p.443)
- ’ 성숙이 성장이다 ’(p.449)
- ’ 명심할 것 ’(p.461)
- ’ 사과상자 ’(p.467)
- ’ 대한민국은 투쟁 중 ’(p.475)
- ’ 고모님의 치부책 ’(p.501)
- ’ 정점 ’(p.504)
- ’ 뉴타운 비가 ’(p.513)
- ’ 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p.519)
- ’ 래디컬한가 ’(p.535)
- ’ 겨울 사랑 ’(p.545)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p.552)
 
이 책의 제목이자 시집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히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흙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히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대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2011년 1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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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논의의 최전선
레베카 클로센 외 지음, 김철규 외 옮김 / 필맥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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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식량부족, 삼림파괴, 동식물 멸종, 핵발전소 위기, 공진화 위기, 생태학적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사회, ...
이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각종 언론과 논문, 정치가와 환경운동가들에게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단어들이다. 인류가 자신들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구 생태계에 끼친 각종 폐해와 죽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미 지구 전지역에서 뜻 있고 양심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고자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으며,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 시민운동가들이 각종 생태계 위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가져온 것이 특정 세력과 집단만의 문제일까? 탐욕에 굼주린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 언론, 사회, 종교, 문화의 상층 인사들만이 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크기의 차이가 있고 전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난 300년 정도의 인류사회의 전개과정이 지금의 지구 위기를 급속하게 가져왔다고 볼 때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인류사회의 작동방식이 상호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 가설을 세워본다면 아마 자본주의적 생존양식이, 즉 자본주의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도덕 등이 지구 위기의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달(4월) 2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연에서 강사로 나온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는 "기후변화시대, 그러나 재앙은 평등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연을 듣고 나서 생태학과 생태문제에 대한 관련 책을 찾던 중, 저자가 번역자로 참여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생태사회주의를 기본적인 관점으로 해서 환경문제 또는 생태문제에 내포된 정치경제적 맥락과 그 의미를 짚어본 것으로 세계의 3대 진보저널로 꼽히는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환경문제 특집호에 실린 글들을 번역해 엮은 것으로, 책에 실린 글들의 기본적인 관점은 '생태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생태사회주의'는 환경문제의 발생과 확산, 심화를 인간이 자연과 자본주의적 관계를 맺은 결과로 설명한다. 총11장으로 구성된 이 글들은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환경문제의 해결을 어렵다고 단언한다. 자본주의와 환경위기의 연관성 및 체제이행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동시에 다양한 환경문제 가운데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농업, 물과 관련된 쟁점을 중심으로 환경문제의 본질과 환경문제에 대한 기존의 대처방안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구의 생태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지점까지 와있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3장(1장 [생태, 그 결정적인 순간], 2장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생태], 3장 [균열과 전환: 환경위기의 뿌리 찾기])은 환경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왜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준다. 이 책의 이 부분은 특히 최근 진보적 생태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사회와 자연환경 사이의 물질대사(metabolism)'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우리에게 어떤 전망을 열어주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물질대사는 스티븐 슈나이더가 <실험실 지구>에서 제시한 '(지구생태계의)공진화' 개념과 유사하다.
 
저자들은 인류가 중대한 생태적 문턱을 넘어서고 있어 머지 않아 여러가지 '티핑 포인트'에 이를 것이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환경주의자들 사이에 절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생태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혁명적인 해결책이 요구되지만 기존의 사회체계에서는 결코 혁명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생태문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본다.
 
4~9장은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주요 환경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한 글들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환경문제는 기후변화(4장 [기후변화, 성장의 한계, 사회주의]), 석유정점(5장 ‘[유정점과 에너지 제국주의]), 대안의 에너지원으로 선전되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바이오연료가 갖고 있는 문제점(6장 [액화천연가스와 화석자본주의]와 7장 [바이오연료의 정치경제학과 생태학]), 생태위기와 농업의 관계(8장 ‘[계사적 시각에서 본 생태위기와 농업문제]), 수산업 등 자본주의적 경제방식에 따른 바다의 오염과 퇴화(9장 [바다의 위기: 자본주의와 해양생태계의 악화]) 등이다. 여기서는 특히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과 기후변화에 관한 각종의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와 석유정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미국의 LNG 산업이 갖고 있는 생태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서술과 바이오연료를 둘러싼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이른바 ‘농업혁명’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해양생태계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10장 [인도의 수자원 위기: 근대적 대형 댐의 정치학]은 인도에서 전개돼온 대형 댐 건설사업의 문제점을 들여다 보았, 11장 [푸른 협약: 대안적인 물의 미래]는 물에 대한 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국제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글이다. 이 두 글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운하사업 또는 4대강 정비사업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많은 사례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의 종합적인 결론은 환경문제 등 제반 생태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요소이자 자본주의의 본질적 존재원리인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 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문제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생태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이란 대개 "기술적 처치나 개인적 행위의 변화를 통해 지구생태계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따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생태 문제"를 낳을 뿐이라는 것... 저자들은 결국 생태사회주의를 위한 노력과 투쟁을 통해 생태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주장한다.
 
저자들이 현재 전지구적으로 수 많은 이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무의미하다거나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무수한 환경,생태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지금의 노력과 결실들이 모아지지 않으면 어떤 미래도 만들어 갈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의 문제의식은 법정스님이 남긴 글과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와 아메리카 인디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후손들과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열린 가슴과 머리로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 책 속의 문장 :
-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경제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고, 주로 지구의 생태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처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가 ‘환경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정치경제의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의 경제적 시도들은 그 가운데 가장 대담한 것조차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p.21~22)

- 자본주의가 자연을 자원 조달처와 쓰레기 배출처로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이 결국은 자원 조달처로서의 자연과 쓰레기 배출처로서의 자연 둘 다를 훼손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으며, 그 부정적인 결과는 처음에는 단지 지역 차원에서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기후 자체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계와 지구 전체의 토대를 해치게 된다. (p.27)

- 지배적인 경제적 세력들은 사회를 크게 변혁하지 않고도 자본, 기술, 시장을 이용해 모든 위협을 다 막아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장담하면서 기회포착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지구적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작물연료와 핵에너지도 포함되고, 탄소를 포획해 땅속에 격리시키는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도 포함된다. (p.52)

- 자본주의 체제가 손상되지 않고 유지되는 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개인적인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중상층 환경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짜로 양심적인 환경주의자라면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헌신하든가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헌신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조만간 올 것이다. (p.83)

- 지난 10년 동안 종종 치열하게 벌어진 석유정점 논쟁은 이제 두 가지 기본입장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이른 정점론자들(early peakers)’(석유정점 주창자들이라고 하면 보통은 이들을 가리킨다)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석유정점이 아마도 2010~12년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어쩌면 2005~06년에 이미 석유정점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늦은 정점론자들(late peakers)’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2020년이나 2030년에 가서야 세계가 석유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p.103)

- 부시 행정부가 2006년에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을 장려하는 등 대체연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바로 휘발유의 가격과 국가 에너지안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석유정점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2007년의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가운데 20%가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쓰였다. 이런 움직임이 부분적인 이유로 작용한 결과로 세계적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p.110)

-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제국주의는 이미 전쟁확대로 귀결되고 있다. 워싱턴이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하고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쟁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시먼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내재적 수요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잠재적 격차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추잡하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p.117)

-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만족할 만한 식량이 공급되기 전에는 농지를 연료생산을 위한 작물재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67억 명인 세계인구가 이번 세기 중반까지는 9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든 농지가 다 식량생산을 위해 이용돼야 하며,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식량의 양이 증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p.164)

- 2000년의 통계를 보면 8,000만 톤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130억 갤런의 연료가 사용됐고, 그 과정에서 약 1억 3,4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이는 세계의 어업이 식품으로 공급한 단백질 에너지보다 12.5배나 많은 연료 에너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쪽)  
 
[ 2011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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