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법정 증언 PEACE by PEACE
이재봉 지음 / 들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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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

이 문장은 대한민국 법원의 증언대에 서는 모든 사람이 판사 앞에서 맹세해야 하는 ‘증인 선서’다. 저자 이재봉 교수는 재판의 증언자로 나서게 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증인 선서’의 보호 아래 ‘양심에 따라 숨김고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증언한다.

‘증인 선서’가 이재봉 교수를 ‘보호’해주는 이유는, 이 교수가 증언자로 나서는 소송 사건이 대부분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0여차례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에서 전문가증언을 해왔다. 주로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걸려든 사람들의 재판이었다. 이재봉교수는 통일과 북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증언을 그치지 않아 왔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검찰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증언이 조선, 중아, 동아일보나 종편 등 극우언론에서 왜곡되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 교수는 그의 법정증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 교수는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국가자격, 김일성 주석, 주체사상, 북핵과 미사일 개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연방제 통일방안, 정전협정, 주한미군, 반미운동 등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까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증언한다.

또 한국현대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공산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며, 공산주의가 항일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처음 접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운동은 일제치하에서부터 시작됐고, 평양보다 서울에서 훨씬 활발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한반도역사에 준 영향이 적지 않지만, 반공주의에 갇힌 역사교육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와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사안을 다루는 태도는 ‘한미동맹’의 상대방인 미국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친미반공의 사회구조안에서 말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주도했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남사회 내에서 ‘종북’으로 받아들여져 국가보안법의 처벌받을 수 있는 반미운동에 대한 기원과 성질을 짚어본다.

반미운동은 1945년 미군이 한반도에 착륙하자마자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식민통치구조의 연장에 불과한 미군정으로 인해 반미감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반미감정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 독재정권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행보로 인해 폭발하고,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됐다. 민주화운동이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며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통일을 실현하자는 반외세 민족자주운동이 전개됐고, 미국은 통일의 걸림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교수는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남한으로의 핵무기 배치와 핵공격 위협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라 지적한다. 북한은 핵을 가진 주변국들과 주한미군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와 인력을 축소하여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저자는 ‘북핵문제’를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발상의 전환’으로 풀어나가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단계에 걸친 핵문제해결방안을 제안한다. 최근 급속히 악화해 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회복하려면, 1단계로 북의 핵 동결 선언과 북미 평화협정 등을 먼저 추진하고 그 이후 북핵 완전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하자는 현실적인 2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세력에 의해 '빨갱이'로 묘사되고 있는 사상인 공산주의가 사실 이념적으로는 이상형에 가까울 만큼 바람직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 사회주의 체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 1990년대 소련 붕괴를 시작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히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견제해왔기 때문에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시장민주주의'나 ‘국가 개입’ 등을 통해 부단히 변화해 왔지만, 사회주의는 사상의 변화는 곧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변화를 거부한 탓에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북한에도 적용하고 있다. 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은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상이지만, 이것이 김일성주의의 '수령론'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나, 이 과정에서 등장한 '선군정치'의 배경이나 의미를 지적한다.

그리고 최근 이른바 군사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북한의 '병진노선'까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적시한다. 이렇게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북한이 발겨 벗겨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른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보게 된다.

남한의 이른바 공안 정국 상황에서도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통일 방안을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학자적 양심마저도 읽힌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연방제 제안이 변화해온 과정을 일일이 추적하며, 최근에는 이른바 남한에 흡수될까 하는 우려마저 보이고 있는 '수세적 연방제안'으로 바뀌었다고 통찰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남북 간에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른바 '북방한계선'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하며, 남북 모두가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 북방한계선을 평화지대로 만들고자 북한과 협의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남북한의 갈등을 불려오고 있는 것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 교수는 자신을 이른바 '친북주의자'라고 단호히 말한다.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북한과 친하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의 아주 상식적인 논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이러한 상식이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으로 매도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친일파의 등장에서 최근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학자의 양심으로 갈파하고 있다.

<이재봉의 법정 증언>은 저자의 말대로, 특히 보수 언론의 왜곡으로 북한을 두둔하거나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책이라는 왜곡된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으로 남북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관해 쓴 드문 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북한과 관련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학자나 언론인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종석, 정창현, 김진향, 박노자 등 정말이지 열 손가락을 넘기기 어렵다. 일부 극우선동가들이 이 교수를 ‘쳐 죽여야 할 빨갱이’라고 매도하곤 하지만, 오히려 ‘존경스러운 노교수’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기간 동안 제대로 청산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야권과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분열시키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히고 생계를 박탈당하고 사회정치적으로 매장당했다. 분단을 정권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온 ‘분단 기득권 세력’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라도 국가보안법으로 박해받는 양심수들을 위해 ‘증언’하는 이 교수의 양심과 노력에 감사드린다.


[2017년 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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