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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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저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읽고 / 348쪽, 2015. 01., 창비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은 가닿을 수 없는 수많은 금요일을 보내고 있고,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의 모두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아이들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 열 세분의 사연이 담겨 있는 책. 

한 가족 한 가족의 사연을 대할 때마다 감정이 복받치고 빰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240일 동안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열 세명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펴냈다.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기록들이 객관적이고 간결한 기억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우리가 포기한 어떤 지점들을 부모들은 그대로 뛰어넘었다. 부모들은 예단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으면서 유연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릎도 꿇었다. 고통 앞에 솔직했고 자신들의 바람 앞에 명확했다. 그리고 지혜롭고 현명했다. 부모들의 이 지혜로움과 현명함은 자식을 위해 당신들의 온 마음을 낸 결과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슬프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이 책은 기존의 언론매체가 보도하지 못한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들이 시달리고 있는 극심한 트라우마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참사가 있고난 뒤 9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건 당일의 일분일초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전대미문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뛰어난 기록문학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한 작가기록단과 더불어, 8명의 대표적인 만화가가 총 13편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는 일에 동참하여 그림으로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깨우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1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록'은 희생자들을 추억하는 가족들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공황장애 때문에 집안에서 주로 생활해온 김건우 학생 어머니는, 진상규명 활동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나올 결심을 하곤 한발 한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스로 걸음을 내딛는다. 인터뷰 내내 속내를 내비치지 않다가 결국에 듣는 이 모두를 울려버린 유미지 학생 아버지 편은 오래전 딸이 맹세한 약속이 죽은 뒤에나 지켜졌다며 한탄하는 부정(父情)을 담았다. 신승희 학생의 언니가 수능을 앞두고도 매일같이 동생을 추억하며 2학년 동생들을 모두 살려내고자 밤마다 꾸는 꿈 이야기는 그 간절함만큼 비애감도 크다. 단 하나의 혈육을 잃고 혈혈단신이 된, 김소연 학생 아버지 편은 한부모 가정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 그의 사투리에 실려 애잔하게 전달된다.


"아들을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 백살까지 살겠다” (1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딸의 생일이 3월 16일. 사고난 날이 4월 16일. 아이가 발견되어 찾은 날이 5월 16일. 16일은 부모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숫자" "아빠와 함께 하늘여행을 하겠다는 약속을, 딸이 죽은 뒤에 지켰다”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진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후 나중에 후회를 안 만들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세상에 딸하고 자신, 둘만 남겨졌는데 그 아이를 잃었다”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


제2부 '기억하는 사람들, 기록하는 사람들'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활동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서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신호성, 이창현, 문지성, 박수현 학생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진상규명 활동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들딸에 대한 의리이자 그들이 자신들에게 내준 숙제이며 결국 스스로를 위한 치유라고 말한다. 대통령과 통화한 5분간 사적인 청을 자제하며 자기 아이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못해 끝내 아쉬워하는 애끓는 마음, 본인이 암 말기에 접어들어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는 한 어머니가 다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장면 등이 읽는 이의 코끝을 시리게 한다. 참사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에게 유가족들이 스스로 내린 답이 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나서 호성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 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

“맨날 잔소리해서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지” “앞으로는 두려울 게 없다고나 할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숨기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요. 지금은 욕도 많이 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솔직해지고 남들이 보는 누도 그렇게 두렵지 않고 대담해졌다고 할까.” “어쨌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에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 씨)

"대통령과 5분간 통화했는데 그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아이를 찾았는데 얼굴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섬들을 찾아헤맸어요.” “무슨 보상을 해주려면 그동안 우리가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게산이 돼? 정신 없이 쫓아다니면서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그 동영상이 휴대전화 안에 들어 있었던 건 아빠가 나서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진상규명을 담당하라는 의미라고요. 동영상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저는 그랬어요. 그건 우리 아들이 내준 숙제인데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진상규명이 끝나고 나면, 희생된 304명의 모든 유가족과 국민, 그리고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하나 올릴 거에요. 이 사건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 우리 수현이에게도 보여주어야죠. 숙제검사는 꼭 받아야 하니까.”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암과 씨름하던 인생에 난데없이 딸의 죽음이 먼저 찾아왔다. 그날 이후 세상에는 지독한 슬품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찼다.” “이번 일로 정말 잔인하고 몹쓸 세상도 경험했짐나, 사회를 지탱해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국민들 다수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언론이 다 조절하고 검열하니까. 그런데도 잠깐잠깐 분향소든 ‘이웃’이든 시국미사든 가보면 소수는 알고 있고 움직이더라구요. 아, 소수라도 이렇게 힘써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덜 억울하구나, 내가 덜 바보구나, 내가 덜 외롭구나 싶어요.” (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


제3부 '사람의 시간, 416'은 아픔을 딛고 자신의 처지를 용감히 직시하고 성찰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어한 아이를 굳이 떠밀어 보내곤 이를 죄스럽고 슬프게 회고하면서도 아이의 생전 친구 부모들과 모임을 만들어 서로 힘을 북돋우며 마음을 추스르고자 한다. 21년 전 서해페리호 사건 당시 의경으로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는 구조의 면면에서부터 법의 현황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이번에는 반드시 미래의 안전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함을 몇번이고 당부한다. 이번 참사로 단 한명만 살아 돌아온 2학년 10반의 가족대표를 맡은,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가 말하는 ‘부모들의 공동체’의 소중함, 분노와 슬픔을 넘어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밝은 얼굴로 전해주는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등의 말들은 도리어 우리 어깨를 도닥인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글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좀체 잃지 않는다. 


“동생 태준이도 중2인데 저한테 자기가 공부할 필요 없다고, 열심히 살아도 허망할 거 같다고 말해요. 자긴 영어문제 푸는 데 오래 걸리는데 형은 영어 단어 5분이면 100개를 외울 정도로 잘났었는데, 그런 형이 갑자기 그렇게 됐는데 공부는 왜 하느냐고. 아빠도 회사 다니며 훌륭한 사람 돼야 한다고 떵떵 호령했는데 지금 저리 됐지 않느냐고. 그러면 할 말이 없어요.” “내 마음을 자꾸 키워가려고 해요" (7반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 장순복 씨)

“진도에 빈자리가 많아지니 더 못 떠나겠더라고요.” “진도에 내려가서도 내 자식 보고 싶고 그리워 울고 싶어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못 울어요. 몰래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울고 오지. 우리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새해 페리호 사고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21년 후 세월호 사건을 또 겪은 거지, 내가. 그 애기를 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바뀐 게 없어서야. 아무 것도.” “배 타기 싫다는 딸에게 내가 큰 배는 빨리 가라않지 않고 통제에만 잘 따르면 된다고 애기해서 보냈어. 우리 딸이 내 말을 잘 듣는데. 세희가 살면서 터득한 게 항상 나중에 가면 아빠가 했던 말이 맞는다는 거여서 내 말을 잘 들었거든. 그것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픈 거야.”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바지선을 직접 구해 사고해역으로 나가봤어요. 사람은 많은데 어느 놈 하나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 거에요. 조명탄만 터뜨리고, 배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어요. 시간만 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진도군청에 있었던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는 계속 언론플레이를 했어요.” “부모들은 여당과 야당이 야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도 정치권의 한계를 깨닫고, 그럴수록 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 국민의 힘이 있어야 진실규명이 가능하다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부모들이 깡다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87년 6월 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아요. 사회의 모순은 더 고착되고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허울만 좋은 민주주의에 국민들이 완전히 속았어요.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에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 씨)


“가만히 멍하게 있으면 아이들이 생각나고 거기에 끝없이 빠져들어요.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듣지도 않으면서 하루종일 텔레비젼을 그냥 틀어 놔요. 집에 떠드는 소리가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얘가 앨범 두 개도 못 채우는 인생을 살았구나. 얼마나 꽃다운 나이에, 엄마 아빠하고 겨우 이제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 때에…” “목 디스크를 오래도록 앓고 있었는데 사고나서 진도에 갔다온 후에 목이 하나도 안 아픈 거에요. 통증이 사라진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아들이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엄마 병을 가져갔나 보다고 그렇게 애기를 해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 괴롭게 갔느데 그만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건 엄마 아빠의 도리가 아닌 거 같아요.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가 눈 뜨고 있을 때까지는, 눈 감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빼앗긴 아빠 엄마들에게 이제 4월 16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이후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이 어둠 속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부실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 거리에는 유가족들이 믿어왔던 상식이 없었다. 국가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없었다. 다만 일부 선량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 책에는 13명의 단원고 학생의 부모들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지만 304명에 달하는 세월호 희생자 역시 각각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느 가족의 사연이 안타깝지 않고 슬프지 않겠는가마는, 304명의 희생자는 304개의 우주만큼의 행복과 사랑과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304개의 가정과 304개의 가족이 저마다의 일상생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당했을 것이고, 각각의 가족의 살아왔던 기억과 가족관계 속에서 가정의 삶이 붕괴되고 해체되고 유지되고 이어나갈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지배계층의 모습과 언론의 행태와 사회시스템은, 유가족들이 당한 피해와 희생이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가정에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사회의 문제와 구조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가족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월호 진상규명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남단이라는 공간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 속에 함께 살아왔다. 우리는 서로가 몇 다리만 걸쳐도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직접 닥친 피해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학생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속살인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갖고, 유가족의 사연에 공감을 하고, 진실을 밝히고 재방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고통이 떠나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들이 닥쳐와 부모들의 상처를 후벼파기도 했다. 아팠다. 아파서 또 울었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순식간에 절대적인 호의에서 절대적인 반감으로 바뀌는지, 그분들은 어리둥절해댔다. 세상이 참으로 교활했다. 언론이, 정치인이, 일부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선장보다 해경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갔다. 가족들을 조롱하고, 보상금으로 공격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 비정상적인 현상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부모들은 천천히 또 길을 갔다.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기이하고, 많은 고통을 준다 해도, 그들은 없던 길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내동댕이친 것도 사람이지만 자신들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사람인 것을 알기에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는 유가족들뿐 아니라 이 사회이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또다른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의 삶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유가족들의 몸부림이 헛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약속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 2015년 4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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