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추천 [서평] 김태형 저 <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를 읽고 / 2010. 11., 307쪽,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IMF 금융위기와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고 난 이후 시기의 한국인들의 마음에 대한 최초의 심리학 보고서이다. 더 정확하게는 “ IMF 경제위기라는 크나 큰 정신적 외상을 겪은 한국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보고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은 단군 이래 최악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화려하게 포장하여 발표하는 외형적인 경제 지표 이면에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려주는 통계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나라이다.
이 보고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위협당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김태형은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한마디로 ‘불안’, 즉 생존위협에 대한 만성화된 공포라고 규정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데 출산율은 줄어드는 한국사회가 이미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또한 IMF경제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환경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까지 개인의 문제로 돌려왔던 불안, 우울 등 한국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은 사실 바로 한국사회로부터 비롯되었다. 급속한 경제 성장 후, IMF라는 부작용을 경험한 한국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의 트라우마의 원인 중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사회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IMF 경제위기 이전부터 한국 땅에 상륙한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한국의 주류세력을 통해 국민들에게 검침없이 확산시켰고,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을 손아귀에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국인들의 마음은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고 그것은 어느새 치명적인 마음의 병이 되어버렸으며,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인들은 과거 어느때보다 불안하고 우울하며 무기력하고 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광풍이 대다수 한국인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 한국인들은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에 일중독, 자녀교육 중독에 빠져버렸으며, 그 불안의 원인은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무한경쟁’이다. “경쟁에서 낙오될까봐 어른들이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고 자식들을 공부에 올인시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과 ‘한국경제의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인들의 트라우마를 계속 악화시켰다. 
그때부터 한국인들은 자신말고는 "그 누구도, 아무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교훈을 떠안은 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는 것이다.

미국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만들어진 한국식 경쟁의 특징은 ‘승자독식의 원리’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도입되는 무차별성’이다. "과거에는 노동자, 농민, 학생과 같은 사회집단들의 경우 비록 개인이기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집단 내부에는 공동체주의 혹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살아 쉼 쉬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이나 노동자집단 내부에까지 경쟁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된 결과 오늘날의 학생들이나 노동자들한테서 공동체의식을 찾아보기란 아주 어려워졌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한국인들의 내면에 들어와 튼튼히 자리를 잡고 앉아 지속적으로 생존위협을 가한다.”

그러한 ‘생존위협’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 역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함과는 별도로) 제도적인 측면과 구조적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가 강요한 규제완화, 민영화, 비정규직화, 물질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피해는 애꿎은 어린 학생들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분노하면서 바꾸려고 저항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무기력과 우울함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사법, 학계 등 도처에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가 보이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불안, 공포, 두려움과의 연관성에 대해, 저자는 “사람은 육체적 생명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명도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적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그 개념을 뒤집으면 “사람이 사회집단에서 배제되거나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허락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반만년 이상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공유해온 한국인들은 공동체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때문에, 다른 민족이나 사회보다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저자의 심리학적 분석은 ‘내면화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사람들에게 우울, 무기력, 고독 등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며, 부정적인 감정은 ‘도피’ 동기를 가져오고, 그 동기는 불안과 공포를 유발시키며,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방어기제를 남용하는 사람은 결국 정신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제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분출하거나 그 자극원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해결해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현재 한국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9가지 심리 코드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마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저자가 제시한 심리 코드 9가지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기본 원인이 한국사회에 있다면 마음수양이나 치료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좀 더 근본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개혁을 위한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회적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부 원인을 안다 하더라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개혁이 불가능하며 그것은 오직 사회집단만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처해 있는 불안증폭사회의 해결책과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자신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이 병들어서이고, 자신을 병들게 하는 것은 병든 한국사회 때문이라는 사실을 의식화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몇 가지 실천을 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을 재검토하여 건강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 소속되고, 스스로 소규모 공동체라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개인적 사회적 병인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적으로든 공동체를 통하서든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사회를 개혁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만이 ‘불안증폭사회’를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증폭사회를 저지하는 사회 개혁의 방향 중 시급한 것은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영역을 줄어야 하며,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구현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하고, 건전한 정치세력이 등장함으로써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건전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필히 사상, 정치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허용해야 함을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정치판에 시장원리와 경쟁원리를 도입해 시장독점을 타파하고 불량상품을 퇴출시키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상황은 좋아질 수도 없고, 대안세력도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태형의 심리학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원인 이외의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고 신선하다. 기존 한국 심리학계에서 제시하는 심리분석은 마치 '신자유주의의 심리학판'처럼 개인 위주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한국인의 집단 심리와 병리현상이 몇 년 사이에 한꺼번에 형성되지는 않았을텐데, 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트라우마 한국사회>가 단연 돋보인다.

심리학자 김태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통해서다. 그는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한국현대사를 통해 형성된 한국인들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세대별 트라우마와 집단 트라우마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트라우마 한국사회>의 전작이다.
한국인들의 사회적 심리와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룬 저자의 ‘한국인의 심리 3부작’의 최종인 <싸우는 심리학>까지 읽어야 '김태형 심리학’을 다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 2015년 4월 19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