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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ㅣ 탐구히스토리
에드워드 H. 카 지음, 길현모 옮김 / 탐구당 / 2014년 9월
평점 :
추천! [서평] E. H 카(Edward Hallett Carr)
저, 길현모 역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 1961, 238쪽, 탐구당
20대
시절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2)
당시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라는 것이 어떤 굳어진 ‘정의’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개념’ 아니라는 것, 교과서나 방송 또는 언론이나 학자들이
제시하는 것 이외에 숨겨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다른 ‘역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역사에서 위인이나 영웅 개인보다 다수의 개인과 집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 시간이 좀 더 지나거나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교체되면 과거의 사실에 숨겨져 있는 이면이 드러나고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역사는 진보할 수 있으며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한 편으로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이 희미해지고 한국사회에서 부정과 불의가 뿌리깊은 것을 목격하면서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이 희석화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나마 정의와 양심이 조금씩이나마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면서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천명의 나이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롭고 각별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차를 첫 번째 ‘역사가와 사실’에서부터 마지막 ‘넓혀지는 지평선’까지 여섯 개로 나누었다. 여섯 개의 목차를 통해 역사가의 의무와
역할, 역사와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 역사와 과학과 도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등을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와 역사가와 역사서와 인간과 세계를 두루 관통하는 ‘역사철학’을 다루고 있다.(자세하게
공부한 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2525 에서 참고)
○
‘위인’ : 위인에 대한 헤겔과 E. H 카의 정의를 보면, 외국의 위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칭송과
우상화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친일파나 군사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 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헤겔)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使役人)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E. H
카)
○
‘역사가와 사실’ : 세계사나 동양사, 한국사 등 인류가 이룩해 놓았다는 제반 역사서들은 과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가들이 특정 사실을 골라서 자신의 역사철학에 맞도록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역사 또는 역사서 읽기를 전후하여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 H 카는 친일파와 서구숭배주의자들이 구성한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대사가 불신받을 수밖에 없는는 이유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p.30)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된 사실과, 그러한 사실선택을 이끌어 준 임시적인 해석 - 그것이 타인의 것이건
자신의 것이건 - 과의 양자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미묘한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p.42)
○
‘사회와 개인’ : 인류사회에서 사회와 개인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며, 개인과 집단의 의식과 행위는 사회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역사에서 특출했던 개인은 당시 시대적 과제나 일부 또는 다수의 요구, 외부적인 힘의 작용에 필요한 활동을
했기에 당시의 역사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 개인이 시대적 과제나 다수의 요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탄생 직후부터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단순한 생물적 단위로부터
사회적 단위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사시대나 역사시대의 여하한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고 있는 집단에서 받은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언어와 환경은 다 같이 그의 사고의 성격을 결정짓는데 기여하며 그의 초년기의 관념조차도 타인들에게서 받는
것입니다.”(p.44)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p.45)
○
‘역사와 과학’ : 역사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떼놓을 수는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가가 보편성과 일반성을 다루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 있으며, 과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비슷하게 역사가의 주관성과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p.92)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p.93)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p.99)
○
‘역사와 종교와 도덕’ : 진지한 천문학자라는 것과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마음대로
유성의 궤도를 바꾸고 일식이나 월식을 지연시키고 우주의 운행규칙을 변경시킨다고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될 수 없는 것처럼 개인적인 도덕적 판단을
역사의 인과관계에 개입시키거나 교훈을 얻는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분리되어야 한다. 역사가는 역사적 인물의 공적인 판단과 행위를 역사서 속에서
평가하는 것이지 사적인 판단과 행위를 역사서 속에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도덕가에게 맡길 일인
것이다.
“진지한 역사가란 신이 역사 전체의 행로를 명령하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고 믿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특정한 인종이나 종족에 대한 살률에 끼어든다거나, 요슈아의 군대를 돕기 위해서 달력을 속여서 낮 시간을 연장한다거나 하는 구약성서식의 신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개개의 역사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끌어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p.108)
"파스퇴르나 아인슈타인은 사생활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기도바도 성자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설사
그들이 불성실한 남편, 잔인한 아버지, 절조 없는 동료였다고 한들 그들의 역사적 업적이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p.111)
“역사가들은 노예 소유주 개인에 대해서는 심판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노예 소유제
사회를 평가한는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또는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역사란 하나의 투쟁 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들이 그것을 좋게
판단하건 나쁘게 판단하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일부 집단이 타 집단을 희생시켜가지고 성취할 것입니다. 결국은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p.116)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을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즉 E. H 카의 말대로,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가들 역시 미래에 일어날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
예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조건을 따져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대한 개연성 또는 합리적
추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 달에 A라는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역사가가 할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이, 일부는 A 국가의 사태에 대한 개별적인 지식을부터, 일부는 역사의 연구로부터 끄러내려고 하는 결론은, A 국가의 정세는
이러이러하니까 만일 누군가가 일을 일으킨다든가, 정부측에서 손을 써서 이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짙다는 정도의
것입니다. 또한 이상의 결론에는 전망까지도 뒤따를 수 있습니다만 그 전망은 일부는 국민 각층이 취하리라고 생각되는 태도에 관한 딴 여러
혁명으로부터 유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p.102)
"볼세비키 당원들은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끝장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혁명도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고,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들 가운데서 나폴레옹을 가장 닮은 트로츠키를
불신하고, 나폴레옹과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신임했던 것이다”
○
‘진보로서의 역사’ : E. H 카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써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며,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라고 규정한다. 결국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보를 믿지만, 진보로서의 역사의 특징은 “역사에서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는 없다.”는 것과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명의 탄생이라는 것은 진보의 가설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잡아볼 수는 있겠지만, 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은 아니며, 때때로 극적인 비약이 수반되었다고 여겨지는 무한히 점진적인 발전과정"이라 말합니다. 기원전 3천년, 4천년 전에 나일강이나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창안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p.171)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라는
것을 믿는 일은 없었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각도의 역전이라 해도 반드시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라 할 수
있다.(p.174)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독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수백, 수천 년 전의 역사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과 과학적 증거의 확인, 그리고 삭제되거나 묻혀진 사실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50~100년 전 역사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과 가해자/피해자의 존재, 그리고 그 후손들과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 속에서 사실 관계가 부족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과거사, 지배계층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해석에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 ‘진보’와 ‘역사’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분단과 민족 문제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한반도의 현실은 그런
태도를 절실히 요구한다.
오랜만에 E. H 카의 역사철학을 다시 읽으면서 다시금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본다.
그렇지만 20대의 열정 이후 또다시 2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지내오면서 배우고 깨닫고 느낀 지금 시점에서는 '역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그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했듯이 ‘역사’는 우주나 지구처럼 자연스럽거나 법칙적으로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접어들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과거의 오류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향도 많고.
21세기 인류는, 서구사회에서 20세기 초 이래 100년 만에 소득과 부의 불평등성이 최고조에 도달한
것처럼, 수천~수만 년에 걸쳐 이룩한 인류의 진보가 후퇴할 수 있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비록 역사가 중단과 후퇴와 전진을 반복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세대가 역사에서의 전진이 아닌 중단 또는 후퇴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2015년
한반도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이들이 겪고 있는 생생한 삶인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를 살아야 하는 자식들과 후손들이 존재하는 한, 현 세대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 현재의
역사가 헛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인상깊은 문장-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p.45)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인 정의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는 도안에 자칫하면 그러한 싸움이 추상적인 관념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p.48)
“역사가 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한없는 재물과 부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p.71 칼 마르크스
인용)
“2,500만의 가슴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던 굶주림, 추위, 가차 없는 억압,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즐기는 변호사나 돈 많은 장사꾼이나 지방귀족들의 금간 허영심이나 적대적인 철학 같은 것보다도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동일한 이치는
국가 여하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모든 혁명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p.71 토마스 칼라일
인용)
“이러한 이름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많고 적고 간에 무의식적인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개인들이며,
그들에 의하여 하나의 사회적인 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p.72)
“역사에 있어서 수(數)라는 것이
중요합니다.”(p.73)
“특권 없는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보수의 대가는 특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혁신의
대가만큼이나 무거운 것입니다.”
"일반화라는 것이 개개의 사실을 맞추어 넣을 수 있는 역사의 대체계의 구성을 허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체계를 세웠다거나 믿고 있었다거나 해서 흔히 비난을 받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그의 서한에서는 일반화의
원칙이 들어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놀랍도록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라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이 제공하는 열쇠를 가지고서는 결코 이상과 같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p.95)
“사회과학자들의 모든 관찰에는 반드시 그의 편견이 들어간다는 것 또한 진리는 아니다.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다. 즉 자기 행동이 분석과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은 결과에 대한 불길한
예언에 의해서 사전 경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른 행동의 수정이 가해지게 되고, 설사 그 예언이 아무리 정확한 분석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적중되지 않는다는 일도 생길 수 있다”(p.103)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며 사형선고만을 내리는 가혹한 재판관은 더욱 아니다.(노울즈) 그러나 히틀러나
스탈린, 매카시 상원의원 등처럼 역사가 및 일반 사람들과 동시대의 인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행위로부터 직간접으로 피해를 받은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직능이 아니라는 주장을 누군가가 비판할 때” 역사가들이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고 밝힙니다.(p.114)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단죄를 열을 올려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 중에 집단이나 사회 전체를
위한 구실을 마련할 수가 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도덕에 집중하게 되면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낳아 놓은 사회에 대한
역사가들의 도덕적 판단, 자신들의 집단적 과오에 대한 성찰은 실종될 수 있다.(p.115)
“우리들이 역사나 일상생활에서 적용하고 있는 도덕적 기준이란 은행수표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쇄된 부분과 써넣은 부분이 있습니다. 인쇄된 부분은 자유와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얼마만큼의 자유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가, 누구를 우리들과 동등하게 인정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는 것을 딴
부분에 적어 넣기 전에는 수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수표의 내용을 기입해 나가는 그러한 방식이야말로
바로 역사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추상적인 도덕개념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란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도덕적 판단은 개념적인 틀 속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만, 그 개념적인 틀 역시 역사적 산물 이외의 겻은
아닙니다.”(p.120~121)
“평등, 자유, 정의, 자연법 등의 가상적인 절대자들도 그 실제내용은 시대가 변하고 대륙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집단은 역사에 뿌리박은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고 있는 믿음이나 우리가 설정하는 판단기준이라는 것도 역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연구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인간행위의 그 밖의 측면과 조금도 다를 것은 없는
것입니다."(p.123)
“피부색은 생물학적인 유전이고, 언어는 인간의 두뇌활동을 매개로 하여 전승되는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천년, 몇 백만년을 단위로 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것으로써,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는 아직도 이렇다 할 생물학적인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획득에 의한 진보는 세대를 단위로 하여 측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써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이라 규정한다.(p.170)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이 ‘자산’에는 물질적인 재력뿐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변형하고 이용하기
위한 능력도 포함된다. 그리고 '진보의 내용'은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p.178)
“역사 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 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p.186)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p.196)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p.198)
[
2015년 6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