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지음, 김동수.박수철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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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근현대사 공부를 하다가도, 박정희의 일본 전쟁범죄 면죄 사건을 대하면서도, 2015년 말 한일 양국 정부의 패륜적인 위안합 합의에 분노하다가도, 국내 수구기득권 세력의 ‘뼛속 깊은 친일 유전자’에 분개하면서도, 늘 느꼈던 것이 ‘일제 침략 및 학살사’에 대해 자신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분히 시간 나는대로, 관련 서적을 통해 ‘일제 침략 과거사’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찾아본 책이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이다.

 

이 책은 재일사학자 강덕상이 2003년에 출간한 <관동대진재 關東大震災. 학살의 기억>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저자가 초판을 발행한 1975년으로부터 24년이 지난 1999년, 역자 김동수가 일본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 처음 발견했다.

저자는 일본 제국주의의 불안과 지배 심리를 그대로 나타내는 관동대지진의 재앙, 재일 조선인 6천여 명 이상을 대량 학살한 그 참혹한 기억을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어났던 재일 조선인 대량학살(최소 6천명)의 진상을 방대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파헤친다. 당시의 실상을 알려주는 사진과 도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일본 내 각종 자료와 문서, 증언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면서 참혹한 기억의 현장에 다가간다. 

 

수많은 증언과 기억들을 통해 되살아나는 학살의 기록들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일본 정부의 비밀문서와 군사기록을 비롯하여 정부 고위관료의 수기, 당시의 신문 기사, 일반 시민.말단 경찰.군인의 증언 등이 현장감 있게 전개된다. 

또한 당시 경찰과 군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엄령과 학살을 진행해갔는지 정확하게 읽어내며, 드러나지 않게 그들을 움직였던 제국주의의 지배심리를 끊임없이 추적한다. 그리고 당시의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시켜 기록했던 일본 정부의 비밀문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계엄령의 발포 시점과 조선인 관련 정책, 희생자 조사 등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도 일본당국이 지닌 식민지 전쟁의식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실제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권력의 중추에 있는 관료와 군인은 1918~1920년 사이의 식민지 전쟁(기미독립항쟁, 국내에서 ‘3.1운동’으로 명명되는…)을 수행할 때 제일선에 있었던 자가 의외로 많다. 그 현장에서 조선인의 굳건한 항일의식에 공포감을 느꼈던 일본 관헌이 지진으로 권력기구가 마비되었을 때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일본에 적대 의식을 가진 세인이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권력의 와해를 틈타 혹시 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예단으로 선제공격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엄령의 발동이었다. 최강의 권력으로 변한 계엄권력 아래에서 관민(官民) 일체의 대학살이 감행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이런 추론을 반증해 준다. 적대시하는 시각이 엾었다면 계엄령도,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9쪽)

 

한편 저자는 식민지 지배시기부터 현재까지 일본 민중과 정부 모두가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재일 조선인 차별의식의 깊은 뿌리에 접근해간다. 당시 관헌의 업무지침으로 상세하게 하달된 조선인 식별자료, 조선인 감시 명부, 감시 상황, 조선인 유학생 관리 명부 등을 상세히 소개하며, 식민지 지배사상에 오염된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관은 어느 정도였는지, 관헌의 편견과 조선인 적대정책은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상세히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이 또다시 참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다수 정상적인 국가들은 자국 내 주권자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한국인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 묶여 있는 조선인들은 조국으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아왔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국내에서 살아갈 수 없거나 일제의 사기행각에 속아 일본으로 넘어간 후, 일본에 체류하다가 일제에 의해 학살, 징용, 징병당한 것에 대해 역대 한국정부가 무관심했다. 뿐만 아니라 역대 한국정부와 정치권은 해방 이후에도 재일동포에 대해 아무런 조사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물론 현재도 그런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뿐 아니라 대다수의 야당, 지식인, 진보단체, 시민사회종교단체 역시 재일동포의 수난사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정부에게 관심을 제대로 촉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재일동포 사학자나 연구자들이 재일조선인과 재일동포의 수난사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일부 헌신적인 연구자와 활동가들도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정부가 아닌 민간분야에서 조금씩 일제의 잔혹사를 연구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관동대학살 유족 "日, 6천명 죽이고 93년 외면…유골이라도" http://cbs.kr/FJ8uec

˝사실을 잊은 민족과 기억하는 민족은 앞날이 달라˝ http://chosun.com/tw/?id=premium*2016090600702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일본 정부 관여로 시작" #강효숙 #김성수 #조선인학살 #관동대지진 김성수 기자 http://omn.kr/9ykp

 

그러나 한국현대사의 뿌리가 친일매국노였다는 과거가 여전히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과거’일 뿐 아니라 그들이 ‘현재의 권력’이라는 데 있다. 친일은 배신과 탐욕과 부정과 폭력과 굴종의 유전자라 할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와 그들과 함께한 집권여당으로 이어지는 정치권력의 역사가 현존하고 있으며, 삼성과 두산 등 일제와 친일권력에 빌붙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온 재벌들의 경제권력, 그리고 법조계와 문화계, 학계와 종교계까지 친일의 뿌리가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고 심지어 잎사귀까지 되어 한국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도시라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와 기득권층의 태도가 그런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숫자는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잡고 있던 권력과 부는 적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동일한 정치경제적, 심리적, 문화적 영향을 끼쳐왔고, 상당 부분 구조적 체계적으로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뿌리를 뽑아내기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대가 꾸준히 태어났고, 대다수 한민족과 한국인들이 단 하루도 굴함 없이 친일세력과 부정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온 항일투쟁과 저항의 역사 또한 이어져 왔으니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내리라 믿어 본다.

 

[ 2016년 10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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