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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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저 <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2013. 04., 204쪽, 철수와영희


<박헌영 트라우마>는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의 주요 간부들이 국가전복 음모로 평양에서 체포된 지 60년을 맞아 기획한 책이다. 저자는 박헌영이 남과 북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20세기 후반의 우리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박헌영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독자들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고, 남과 북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적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수록하였다.


박헌영(1900.5~1956.12)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국내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사이자 혁명운동가이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며, 1945년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 재건시 당수로 선출되었다. 해방 후 한반도 남단을 무력 강점한 미군정에 의해 조선공산당(남조선노동당)이 불법화된 후 월북하여 해주에서 활동하였으며, 한국전쟁 전후까지 한반도 남단의 남로당 활동을 지도했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외무상이었으나 정전 후, 북한에서 "미제국주의 간첩 및 국가전복 음모"라는 죄명으로 사형되었다.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후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의 첫 아내였던 항일여성운동가 주세죽은 2007년 남한에서 복권되어 건국훈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과 전세계적인 냉전 이후 반공주의와 반북주의가 성경처럼 유지되어온 대한민국 정부와 학계에서는 대부분의 사회주의계열의 항일독립투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박헌영은 남한에서도 항일투사이자 사회주의 혁명가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불법화시킨 계기가 되었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조작에 대한 재심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 역사에서도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자 ‘반역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일제강점기 때 고군분투한 항일운동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박헌영에 대한 북한의 조사와 재판을 ‘고문에 의한 사건조작’이며 ‘정적에 대한 부당한 숙청’으로 규정한다.


<박헌영 트라우마>는 2014년 한국현대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구했던 책인데, 최근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청산 등 일제강점기 관련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박헌영씨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 원경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헌영의 삶과 활동에 대해 재평가를 시도했다. 더불어 책의 부제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처럼, 이 책은 박헌영의 아들과 한국사회 전반의 '치유'에 대해서도 저자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박헌영의 방송연설문과 8월테제, 연표를 담아 당시 박헌영이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의 개념도 재조명해 본다. 남과 북이 통일되었을 때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는 공통된 목표가 될 수 있어서다. 물론, 그다음 단계를 어디로 갈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을 창립해 원장과 이사장으로 일했던 손석춘이며, 2011년부터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저자는 남과 북의 박헌영에 대한 거짓과 위선적인 태도를 끝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남과 북이 통일로 가는 길에 박헌영은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한국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박헌영과의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책 서문에서 박헌영을, 박헌영의 삶과 죽음을,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남과 북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적 트라우마'로 규정하며, 장기적으로 한민족이 통일을 향해 나아갈 때 박헌영에 대한 복권과 트라우마 치유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 반대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공감되는 부분은 박헌영을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투사로서 복권시키고 재조명해야 한다는 점과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불법화했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조작 여부를 재조사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반면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은 특정 개인(강상호)의 주장을 토대로 북한에서 이루어진 박헌영에 대한 재판이 ‘정치적’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점과 박헌영 사망 시기에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아들(원경스님)의 기억과 진술로 박헌영과 주변인물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려 한 점이다.(물론 그들의 증언도 사건의 목격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북한에서 내무성 정치국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러시아 거주 강상호(1909~2000)의 증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는, 그가 생애 마지막 10년을 국제적으로 ‘북한민주화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민주화 운동’이 국제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지닌 채 하나의 주권국가를 위협하고 국가간 갈등과 긴장을 유도할 뿐 국제적인 평화나 화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은 CIA나 국정원 등 한미 권력기구가 배후로 의심되는 단체의 자금을 수령하면서 자금을 횡령하거나 국제적인 사건사고를 일삼는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커녕 남북화해와 평화를 가장 앞서서 가로막고 있는 세력 중 하나가 바로 ‘북한민주화 운동단체’이다. 북한에서 1990년대 후반 노동당 중앙위원까지 엮임한 후 특별한 반북활동을 하지 않았던 박병엽의 증언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2010 유영구,정창현 선인)과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2010 유영구,정창현 선인)이 오히려 신뢰가 간다.

아들(원경스님)의 증언 역시 그의 생애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대해서는 동정과 공감을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 박헌영이 젊은 시절 추구했던 양심과 정의를 따라 살았다기보다는 권력의 공안기관과 접촉하며 ‘목숨을 연명’해왔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들의 희미한 증언을 토대로 박헌영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민족의 후세들에게는 이처럼 논쟁이 많은 박헌영의 생애에 대한 지속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일제강점기 시절 그가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한 부분과 해방 후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 지도자로서 활동한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조선공산당이 불법화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조작’ 역시 해방 후 한국현대사와 한미관계,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사의 관점에서 재조사와 재평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게 협력했다는 의혹과 해방 후 미군정 정보부서에서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북한의 조사 결과, 해방 후 조선공산당이 근로인민당 및 조선신민당과의 관계 및 남조선노동당 설립 과정, 사회주의 항일투사 김삼룡의 체포 과정, 해방 후 남한 내 빨치산 투쟁, 한국전쟁 과정에서 박헌영과 남로당의 활동, 이승엽 이강국 등 남로당 지도부의 간첩 및 국가전복 음모, 북한에서의 재판과정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재조사와 재평가는 필요할 것이다.


해방 전후 박헌영과 남로당의 활동에 대한 진실과 평가를 위해서는 앞으로 꾸준히 박헌영과 남로당, 김일성과 남북현대사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 같다.


[ 2016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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