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조안 말루프 지음, 주혜명 옮김 / 아르고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 조안 말루프(Joan Maloof) 저, 주혜명 역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Teachong the Trees, Lessons from the Forest >를 읽고 / 2005. 11., 199쪽, 아르고스


동양 사회에서는 옛적부터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 만가지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성찰이 존재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생영체로서 무의식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동물과 식물을 먹고 산다하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명제는 천지의 진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성현들을 통해 대대로 내려온 동양의 세계관인 셈이다.
<나무를 안아보았나요>의 저자 조안 말루프 역시 선현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나무를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그는 <나무를 안아보았나요>에서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를 숲 속 나무 사이로 이끈다.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숲은 나무와 새와 곤충, 진균류 등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그는 이들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보여준다.

“숲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공기'였다!”(15쪽)
저자는 지구상 많은 이들에게 상식이 되어 버린 이야기를 다시금 꺼낸다. 제도교육을 하는 나라들의 경우 보통 위 문장 중에서 ‘공기’가 아닌 ‘산소’로 가르친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지구 전체에 필요한 산소 중 얼마를 생산한다는 식으로. 물론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산소가 아니라 공기라고 표현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즉 산소 이외에 인간과 생명체의 활동에 소중한 각종 화학물질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본 원소들과 화학 합성물질이 포하된 지구의 공기를 통해 인간은 진화해왔던 것이다.
또한 화학 합성물질의 요소인 질소나 탄소, 수소 등과 같은 기초 원소들 역시 공기와 물, 흙과 바위를 구성하고, 식물과 동물 등 샘명체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은 숲 속 공기 안에서 120개의 화학 합성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나마 제대로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화합물은 단지 70개뿐이었다.”(16쪽)

“너도밤나무는 붉은등도룡뇽, 비치드롭, 리스테라 오스트레일리스, 버섯파리 외에도 다양한 진륜류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단지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너도밤나무 씨앗과 그 씨앗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너도밤나무 열매는 다람쥐, 쥐, 새 등 작은 동물뿐 아니라 곰도 무척 좋아한다.”(54쪽)
사람들은 보통 ‘숲’이라고 하면 으례 ‘나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게 아님을 알려준다. 숲을 구성하는 생명체들은 셀 수조차 없다. 숲은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사는 벌레와 곤충과 딱따구리, 나뭇잎과 열매, 나무에 달려 있는 잎에서 살아가는 벌레, 열매를 먹고 살아가는 벌레와 곤충과 새, 떨어진 나뭇잎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작은 벌레와 균류, 나뭇잎이 흙과 섞여 썩도록 만드는 균류와 박테리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하늘다람쥐가 가장 좋아하는 보금자리였다.”(61쪽)

“왜 서양의학은 아직도 숲 속 화학 합성물질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것일까? 혹시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18쪽)
“메릴랜드 주에는 대략 80억 그루의 나무가 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나무들의 95%가 지름 13cm 이하의 작은 나무라는 사실이다.”(79쪽)
“사람들은 대개 현대 과학이 대부분의 식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작물이 아닌 대다수의 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우리는 달나라에 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이 뒷마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94쪽)
저자는 인류가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엄청난 과학기술을 자랑하지만, 인간의 수준이라고는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수준임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돈 중심의 세계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발한다.
인류는, 특히 미국이나 유럽같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의 정부와 자본은 오직 돈이 되는, 이윤이 되는, 자본증식이 가능한 분야에만 편향된 과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는 숲과 식물 그리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자연스러운 지구의 생태계를 조작하고 교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구와 자연, 숲의 생태계를 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은 숲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할 필요조차 없다며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상처받은 땅에 대해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풀을 벨 필요 역시 없다. 숲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좀더 빨리 숲을 보고 싶다면 새들이 쉬어갈 수 있는 3m의 푯대를 세우면 된다. 기다리기만 한다면 자연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다.”(120쪽)
“식물은 탄산가스를 들어마셔서 세포 안에 가둔다. 그것이 숲을 지키고 나무를 베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121쪽)

이렇게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는 ‘살아 숨쉬는 나무와 숲 공동체’에 대해 독자들에게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조금이라도 현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스스로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체제에 의한 숲 파괴, 숲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파괴, 지구공동체에 대한 파괴를 경고한다.

숲 속 공기 안에 들어 있는 피톤치드 이야기,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싶어하는 독수리 이야기, 바구미가 들끓는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 이야기 등을 읽다보면, 자연과 호흡하며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지은이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성찰을 담은 릴케의 시와 소로우의 글, 200년 전에 그린 존 애보트의 삽화가 지은이의 경험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는 이 책은 나무에 관한 과학 책이면서도 자연에 관한 수필로도 손색이 없다.

역자는 ‘나무를 껴안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tree hugger’를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로 번역했는데,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은 동물의 종들이 계속 변화해왔듯이 식물의 모습 또한 변해왔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최근에 진화에 성공한 식물들이다. 공룡 시대의 숲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꽃을 피우는 식물보다는 양치류와 소철이 더 많았다. 꽃을 피우는 식물과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그 이후다.”(153쪽)

“독수리의 시력은 아주 좋아서 8km 이상 떨어진 곳도 우리가 망원 렌즈를 통해 보는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수리는 인간이 땅에 그은 금을 이해하지는 못한다.”(177쪽)

“달팽이, 의갑류, 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무들이 숲 바닥에 몸의 일부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숲에서 살 수 없다. 나는 숲 바닥에서 살고 있는 일부 생물들의 삶에 대해 알고 나서 불필요하게 생명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맨발로 숲을 걷는 자이나교 승려들을 존경하게 됐다.”(192쪽)

이 책은 법정스님의 추천 도서 중 서른 일곱 번째였다.

[ 2015년 10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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