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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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낙청 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읽고 / 2006. 05., 284쪽, 창비


‘한민족의 염원’이자 한반도 남북에서 발생하는 주요 문제들의 구조적인 해결방향은 ‘평화적 통일’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식도 아니고 베트남식도 아닌 ‘한반도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반도식 통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이 저자인 백낙청 교수의 지론이자 전략이자 사상이다. 이 책은 통일담론과 관련한 그의 사회평론집이다.

백낙청은 1980년대 말부터 줄기차게 분단체제론을 전개해 왔고,19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으로 분단체제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쪽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999년 이후 저자가 <창비> 등에 발표한 글 중에서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서 연대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대표되는 참여정부 중반기의 남북 분단 상황을 점검하고, 이후 남북 관계를 조망하는 글들을 다수 실었다.
그는 이 책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6.15시대’를 가져왔고 ‘흔들리고 있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백낙청은 이 책을 통해 한반도식 통일이 이미 현재진행형 상황에 들어섰음을 주장한다. 
통일을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국민들이 더 나은 체제에서 살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인식 하에서, 국가연합 형태의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을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는 저자는 이른바 '6.15 시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전쟁 같은 불가피한 파국을 전제로 하는 일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은 어느 순간 '도둑같이' 찾아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을 6.15 시대의 목표로 제시하는 등 보다 확장된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NL(민족해방파, 자주파), PD(민중민주파, 평등파), BD(부르조아민주주의, 온건개혁세력)의 3자결합을 제안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난 최장집 교수의 시각을 분단시대에 대한 고려가 간과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 외에 다국적 민족공동체이자 네트워크로서의 한인공동체 건설에 대한 주장,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체할 '생명지속적 발전'의 제안 등을 담았다.

이 책에서 크게 공감한 대목은 남한-분단체제-세계체제로 이어지는 구조적 연관성과 ‘한반도식 통일’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런 한반도식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분석 결과, 마지막으로 6.15 남북공동선언문 제2항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태생적으로 반민주적이며 비자주적인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어느 한쪽에서도 온전한 민주주으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분단시대에 대한 모든 인식을 낡은 민족주의라고 배제한 채, 대한민국을 ‘하나의 자족적인 국가’로 설정하여 북유럽 또는 서유럽의 선진 민주사회의 척도로 재단할 때, 분단시대와 그에 앞선 식민지시대의 억눌리고 찌든 삶을 딛고 이룩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눈물겨운 성취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분단체제의 고착기를 특징지은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는 작업이 명쾌하지 못하여 3당합당, DJP연합, 노무현정권의 ‘변형’ 등을 수반하며 구질구질하게 진행되어온 현실은 분단체제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고, 여기에 굳이 변형주의라는 외국 문자를 갖대댈 필요도 없다.”(65쪽)

먼저,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의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분단체제의 하위 구조로서의 남북의 체제’라는 백낙청의 체계 구성은 한반도의 역사적인 과정과 현재 실제로 구성되어 있는 역학구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의 관점을 확대시킨다.
남북의 정치체제와 한반도 분단체제가 세계체제의 하위체계라 함은,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 양쪽에서 ‘결손국가’ - 이 개념은 ‘정상국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외세에 의해 분단이 강제된 상태에서 독립과 통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가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평화와 복지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측면을 강조한 개념이다 -가 탄생되고 유지된 이유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간 경쟁과 제국주의(패권주의)와 제3세계 식민지의 저항이라는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대결구도 속에서 외세에 의해 분단이 강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열강과의 협의와 협조, 관계 개선 없이 남북 간의 노력과 합의만으로 분단체제의 해소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분단체제의 해소 없이 남북 각 정치경제체제가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그리고 대다수 민중의 행복한 삶과 자유, 평등, 평화가 이룩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한반도식 통일’이라 함은, 한반도 분단의 주체와 형성 그리고 고착화 과정으로 인하여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독일이나 베트남, 예멘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다른 체제로 흡수되는 독일식 통일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전제와 그에 따라 분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독일 민중의 명시적,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서독과 동독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 과정과는 크게 다르고 고착화 과정 또한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반도에 적합한 방식이 되기 어렵다. 내전을 통해 일방 체제로의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의 통일 방안 역시 한국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는 한민족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며, 양쪽 정부의 상층부끼리의 담합에 의한 통일 후 합의가 불괴되어 다시금 몇 년간의 전쟁을 거쳐 통일을 이룩한 예멘의 통일 방식도 절대 다수의 민중의 동의와 참여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반도식 통일의 사례라 할 수 없다.
백낙청이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은 '6.15시대’와 같은 남북 화해와 교류, 경제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수의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통일 과정을 의미한다. 전쟁을 통하지 않는 통일, 일방의 이념이나 체제를 강요하지 않는 통일, 최종 목표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 남북의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다수 민중과 한민족 전체가 통일 과정에 주체로 참여하는 통일을 의미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전인미답의 길이 바로 ‘한반도식 통일’이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식 통일’은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또 하나의 강국이 탄생할 경우, 설혹 통일 한반도가 자본주의 사회라 한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을까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한 통일이 될 것이다.

셋째,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은,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한 남한의 군사독재 체제의 극복이 분단체제를 ‘흔들게’ 만들었고 6.15 공동선언을 통해 분단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곧 통일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즉 "분단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각기 사는 곳에서 그날그날 수행하는 크고작은 싸움이 모두 분단체제 극복운동의 내용을 이룬다. 통일작업과 직결된 교류확대라든가 민주적 권리의 확보, 대외적 자주성의 신장 등만이 아니라, 생활현장에서의 성차별이나 인권침해, 환경파괴 등을 제거하고 자기 자신부터 그러한 습성에서 벗어나는 갖가지 실천이 곧바로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일회적 사건으로 이룩되는 분단극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그리고 우리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온갖 형태로 뿌리내린 분단체제의 극복’이기 때문이다.(84쪽)

마지막으로, 백낙청은 6.15 공동선언의 '남다른 의미’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합의하고 서명한 문건”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선언문 제2항이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에 대해 백낙청은 내용이 두루물싱할뿐더러, 남북 각자가 이제까지 배격해온 상대방 제안에 끌려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의 애매모호한 표현이야말로 6.15공동선언을 빛내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 실현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는 실천적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그는 제2항의 합의정신을 “통일을 하기는 하되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과 어떤 형태의 통일인지를 미리 못박지 말고 지금 가능한 통일작업부터 진행한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신뢰구축 작업을 명기한 공동선언 제4항이 비로소 힘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의 신뢰구축은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해도 불가능하고 ?┥爭貂? 통일하자고 외쳐대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백낙청은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고 제창한다. "단일형 국민국가로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할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엇이 통일이며 언제 통일할거냐를 두고 다툴 것 없이 남북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나가다가 어느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니라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하고 합의하면 그게 우리식 통일이라는 겁니다.”(21쪽)

이 책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은 백낙청 교수의 2015년 신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2015 창비)를 읽고서 통일담론과 한국사회 변혁에 대한 그의 담론의 궤적을 알기 위해 읽은 것이다.
거의 10년 전 저서임에도 남북의 민중 모두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고 통일담론과 한국사회 변혁담론을 이끌어 가는 백낙청 교수의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다. 그리고 고맙다. 평론집 중 통일담론과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도 되었고 배운 점도 많았다. 
다만, 제3부 ’14.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서 박정희를 평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 어떻게 하더라도 괜찮다’는 관점이 지난 100년 간 한국사를 망쳐왔기 때문이고, 인간의 본성에도 한국 민중의 성과와 고통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기고 싶은 문장]

“선진국이라면 PD와 NL만의 ‘변증법적 결합’을 꿈꾸어봄직하지만, 분단국가에서 분단시대에 대한 인식, 그런 의미에서 ‘NL적 시각’이 빠진 상태로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사민주의 이외의 ‘결합’을 생각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 PD를 배제한 NL과 BD만의 결합은 민족주의 과잉의 통일 이외의 어떠한 변혁전망도 제거된 반민중적 노선이 되기 십상이며, 그렇다고 NL과 PD의 ‘재결합’ 또한 당위론에 불과함은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 내 양 정파의 ‘내분에 시달리는 동거’가 잘 보여준다. 내분의 ‘재봉합’이야 물론 가능하겠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면 개혁정권 및 온개혁세력과의 좀더 확실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책적으로도 연합하면서도 자신을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내분’이 ‘건강한 의견차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해줄 공감대가 바로 분단체제극복이 현시기 최대의 변혁과제인 동시에 남한사회의 구체적 개혁작업이기도 하다는 인식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곧 분단체제이고 남북 각기 상대적인 독자성을 갖는 사회이긴 하지만 분단체제의 매개작용을 통해 세계체제의 규정력을 받영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다면, 자주통일론과 세계적 시각을 지닌 계급운동은 한국사회의 구체적 개혁과정에 촛점을 둔 시민운동 및 개혁정당(들)과도 자연스럽게 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68쪽)

“북핵문제 자체에 관해서는 위라가 정부 차원이건 시민사회에서건 할 수 있는 일이 엄연히 한정되어 있다. 핵무기를 배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북이며, 이러한 북을 공격해서 파멸시킬 수도 있는 무력을 보유하고 그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두 당사자 모두에게 한국의 입장은 절대적인 변수가 못 된다.
그 점에서 ‘민족공조’든 ‘한미동맹’이든 모두 상대적인 의미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이 대등한 맹방이 아님은 너무나 뻔한 사실인에다 오늘날 미국과 대등한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마당에, ‘한미동맹’을 절대시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맹종을 서약하는 행위 밖에 안 된다. 다른 한편 북측의 핵개발 문제를 한국정부와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북의 안전을 담보해줄 능력도 없는 마당에 ‘민족공조’를 절대시하는 일 또한 허황되고 무책임한 처사가 되기 쉽다.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단호하고 지혜롭게 해나가야 한다.”(238쪽)

[ 2015년 9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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