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평화 -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
이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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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이종석 저 <칼날 위의 평화 :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2014. 개마고원)


이종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에서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그리고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탄생 시기부터 약 4년간 대통령을 보좌했다. 특히 (역대 정부가 모두 그러했지만) 한국의 외교안보에 숱한 어려움과 과제가 밀어닥쳤던 참여정부 전기 3년 동안 대통령의 전략 구상과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했던 NSC 사무처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그는 이 회고록(비망록)을 발간한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추진했던 일들에 대해 그 성공과 실패, 성취와 시행착오, 긍지와 아쉬움을 회고하며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지시와 정책적 결정을 내렸는지 보여줌으로써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게 부당하게 씌워진 각종 이념적, 감정적 비난과 의혹들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밝힌다.
이종석은 노 전 대통령의 꿈이 ‘자주국가’와 ‘평화통일’이었다고 회고한다. 노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에 한국민의 방위를 내맡기는 ‘인계철선’이라는 용어를 혐오했으며, 한국이 처한 불리한 지정학적인 상황을 한국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였다. 이종석이 NSC에서 담당했던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큰 숙제는 북미 관계와 북핵 문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6.15 공동선언의 이행)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중이었고,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 3년차였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집권하자마자 군사일변도와 극우적인 정책으로 일관하여 2001년 아프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상태였고,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관계 개선 방향과 정반대로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아 2002년 10월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태였다. 북미 관계가 고착상태에 빠지자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로 다시 풀리기 시작한 남북 관계와 북핵과 북미 관계 3가지가 모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 이외에도 주한미군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서부터 자주국방과 국방개혁, 한일-한중 외교 등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수많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이 책에서 이종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추구한 가치는 “평화, 자주, 균형”이었다고 증언한다. “참여정부의 국가안보 전략기조가 ‘평화번영정책 추진’ ‘균형적 실용외교 추구’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포괄안보 지향’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노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평화, 자주, 균형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상식이며 공동선이다. 외세의존의 대결적 분단국가 지도자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를 증진하고자 했으며, 우리 공동체의 자주적 결정에 의한 삶을 추구했다. 또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게 균형적인 동맹관계를 추구하고, 중국의 성장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국제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균형외교를 추진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진보주의자였지만, 그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추구한 가치는 진보와 보수를 따지기 이전의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것들이었다.”(p.06)

그렇다면 저자 이종석이 NSC 사무차장으로서 참여정부 근무기간 중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그는 책 속에 긴박했던 자신의 업무와 대통령의 지시, 관련부처간의 업무공조와 북한 및 미국과의 협상 등에 대해 설명한다.
참여정부 출범 전인 2002년에 북미 갈등과 북핵 위기가 발생하여 대선 기간과 인수위 과정에서도 이종석을 비롯한 외교안보팀은 외교적 협상이 다각적으로 진행 중이었고, 취임식 전에 노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2003년 초부터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부시 대통령과 합의를 이끌어낸 후, 2월부터 미국이 자신들의 전세계적 군사전략 변경에 의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제기하여 그로부터 2년 넘도록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평택 미군이지 이전 재협상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2004년 6월에는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몇 년 동안 감축 협상을 진행하였다. 10월에는 미국이 이라크에 전투병을 추가 파병할 것을 요구하여 참여정부의 지지자들과 민노당, 시민사회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한 상황에서 미국과 협상을 진행했다. 2004년 9월부터는 주한미군이 ‘개념계획 5029’를 일방적으로 ‘작전계획화’하려 시도했고, 2005년에는 2월에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여 6자 회담 당사국과 미국, 북한과 북핵 폐기와 북미 협상에 뛰어들어 6자 회담에 의거한 ‘919 공동성명’을 끌어내고 남북정상회담 준비까지 마쳤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은 곧바로 미국이 ‘BDA 사건’을 일으키면서 당사국들의 이행을 끌어내지 못했다.자주국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시작전권 환수는 2003년부터 미군과 협상을 시작했지만, 미군보다 한국 국방부와 보수세력의 애매모호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인해 2006년이 되어서야 2012년 말에 환수하기로 합의가 되었다.(이 합의를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연기하더니, 박근혜 정부는 ‘무기한’으로 미루어놓았다.)
이종석은 2006년 2월 NSC를 떠나 통일부 장관을 맡게 된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KEDO의 경수로 사업을 청산하고 '김영남 모자 상봉’을 성사시켰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북미간에 증폭된 불신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여 급기야 2006년 9월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이종석은 책임을 지고 통일부 장관직을 사퇴했다.

이종석은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북핵과 한반도 비핵화, 6자 회담, 이라크 전투병 파병, 작계 5029, 전시작전권 환수 등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그리고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NSC가 4년 간 노력했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해 놓았다.

먼저, 이종석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국정철학과 정책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통일’보다 ‘평화’를 먼저 이룩하고자 했으며, ‘통일’은 후손들이 이룩할 과제로 생각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노 전 대통령과 NSC(이종석)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북미간 적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며, 반드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자주국가와 자주국방, 그리고 자주외교와 균형외교를 꿈꾸었고 참여정부 집권기간 동안 한반도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이종석의 비망록을 들여다보면, 미국이야말로 자신들의 ‘국익’과 전세계적인 군사패권전략에 철저하게 우선하여 국방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과 ‘한미동맹’은 미국의 국익과 군사전략에 부응할 때만 언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 행정부는 자신들이 필요한 과제를 설정하면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주한미대사관, 태평양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CIA, 언론, 의회 등을 조직적으로 총동원하여 한국 청와대, 국회, 행정부, 언론에게 압박을 가한다. 필요하면 한미 양국이 합의한 비밀정보마저 언론에 전달하면서 한국 정부를 벼랑에 내몰기도 한다.
("작전계획 ‘5029’는 누가 언론에 유출하였나?" http://blog.daum.net/hy2oxy/8692553 / "2006년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한국의 불안정은 해소되었나?" http://blog.daum.net/hy2oxy/8692552 )

그러나 어찌보면 미국 행정부와 의회, 언론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온갖 부당한 행위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역사는 어제의 동맹국가가 오늘 적국이 되고, 내일은 또 형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한미동맹’이라는 개념을 변화불가능한 교리로 받아들이는 한국 내 관료나 정치인, 언론이 문제일 것이다. 미국의 정책과 전략은 ‘무조건 선’이고 반드시 동조해야 할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문제다.
사실 이종석과 NSC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통일외교안보 분야 업무를 추진하는 데서 가장 어려운 점은 미국이나 북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었다. 정책수립과 추진을 반대하고 방해한 측은 국내 관료와 정치인과 언론이었다. 특히 국방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미국과 주한미군의 우산 아래 안주하였고,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 그리고 미군인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한국 행정부 내에 관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친미 사대주의자들은 국방부와 외교부뿐 아니라 언론계와 법조계, 학계, 경제계 등의 상층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국방이나 자주국가, 균형외교나 독립적인 정치를 해나가는 데 있어 장애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참여정부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사후 노 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정책과 참여정부에 대해 폄하하고 왜곡하고 조롱하는 보수세력과 여당, 언론의 공세가 꾸준히 전개되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가 임용하여 행정부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노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을 추진했던 관료들은 대부분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고 왜곡과 폄하와 조롱에 동조했다. 심지어 가담하기까지 했다.
때표적인 사람들이 외교부에서 근무하거나 장관이었던 반기문, 윤영관, 유명한, 윤병세와 같은 사람들, 국방부 장관이거나 참모총장이었던 김장수, 김태영, 김관진, 남재준 그리고 검찰이나 법무부에서 근무하던 김경한, 이귀남, 황교안, 임채진, 한상대, 김진태 등이다. 참여정부 인사담당자들이 ‘코드 인사’를 제시하며 선별했던 고위관료 중에서 거짓말과 왜곡, 심지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배신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에서 부실한 인물들이 중용되었다. 유유상종이었을까. 노무현 사후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정치인은 많아도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또 하나 이종석의 NSC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참여정부 내부의 알력 관계와 인사 문제 때문임을 알게 된다. NSC가 노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참여정부 초기 콘트롤 타워로 자리잡기 어려웠던 것은 국방부와 외교부에서 청와대로 파견나온 관료와 국방부, 외교부 장관과 정책참모들이 대통령의 외교통일안보 정책에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반기문(현 유엔 사무총장)은 외교장관 이전에 청와대 외교보좌관 시절에도 친미주의적인 입장과 관료주의적 태도로 외교정책에 큰 어려움을 조성했다. 이들은 모두 노 전대통령의 측근들과 국정상황실, 인사담당자들이 천거하고 임명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NSC는 청와대 내에서도 오랫동안 견제와 모략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이종석과 NSC는 여러 차례 국정상황실과 민정수석실에서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 주한미군 감축 협상, 전략적 유연성 협의 등에 업무추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내부감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종석은 NSC 사무차장직을 사직하면서 모두 털어냈다고 밝히지만, 책의 곳곳에 청와대 내부의 견제와 비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음을 토로했다.

이종석은 4년 간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경험을 통해 책의 제목처럼 한반도에 조성되어 있는 평화는 ‘칼날 위의 평화’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평화를 열망했다. 그래서 자주와 균형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 공고히 하고자 했다. 평화는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기본적인 열망이며, 남북공동번영과 통일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다. 그러나 그 평화는 이루기도 어렵지만, 이룬 것같이 보일 때도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평화였다. 또한 여전히 대결적 불신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주체들 간의 합의에 간신히 기대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상처받기 쉬운 그런 평화였다. 마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p.06)

행정이나 정치를 담당했던 과거 인사들은 대다수가 ‘남탓’을 하거나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거나 주체적으로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관계했던 인사들이 출간한 책들을 읽다보면, 대다수가 ‘남탓’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중동이 방해했다, 관료들이 배신했다, 한나라당이 발목을 잡았다, 열린우리당이나 진보진영이 도와주지 않았다" 등등... 
이종석의 책에도 그렇게 전형적인 ‘핑계’나 ‘변명’이 일부 들어있기는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나 다른 청와대 인사, 관료, 정치인, 언론들을 핑계대지는 않았다. NSC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업무에서 부족하고 잘못한 것은 책임자였던 자신의 과오로 받아들였고, 성과로 지적될 수 있는 결과들은 노 전 대통령과 창여정부의 성과로 평가했다. 이런 점이 그의 진정성과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 2015년 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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