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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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칼 폴라니(Karl Polahyi) 저,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을 읽고 / 1944(2009), 657쪽, 도서출판 길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을 출간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저물어가던 1944년이었다.
<거대한 전환>은 그가 18세기에 발흥하여 20세기 초까지 200년 동안 전세계를 장악하던 자유시장경제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하여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1920년대 인민정부 구성,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과 파시즘의 확산,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붕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경제라는 탈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써내려간 것이었다.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을 출간한 직접적인 목적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성장했던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경제 체제가 사회에 대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 과제를 자신의 독특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20세기 초반 40년간에 대한 폴라니의 관점과 해석 또한 남다르다. 독자들은 그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서구의 정치경제적 역사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자유진영 : 파시즘 진영'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몰락과 사회체제의 거대한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경제 또는 (자유)시장경제를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규정한다. (자유)시장경제란 인간, 자연, 화폐를 상품으로 보고 '시장'에 맡겨두는 것인데, 시장경제에 맡겨둔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 따라 시장경제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과 자연, 사회를 보호하려는 자발적, 산발적, 집단적 운동이 발생하게 되며,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확산과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라는 '이중적 운동'으로 인간 사회가 변화, 발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이중적 운동의 정치경제학"이다.
시장경제를 극복하면서 폴라니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회'라는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며, 국가도 시장도 이 사회라는 실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구 주류경제학에서 자본주의 체제 또는 자유시장, 자유무역, 경제자유주의에 대한 신념(환상)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거세진 것은 신자유주의가 지구촌 경제를 망가뜨리기 시작한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부터였다. 마르크스와 다른 관점에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다시 거론된 것도 2008년 이후였다. 더군다나 생산수단의 소유 관계로 경제체제를 분석했던 마르크스와 달리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본질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통해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과의 ‘이중적 운동’을 사회의 운영원리로 제시한 폴라니의 관점은 21세기 경제학자나 사회과학자 그리고 정치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폴라니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유시장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의 경제결정론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경제학-철학 수고>에 나타난 젊은 마르크스의 인간적, 철학적 혜안에는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한다. 그가 유일하게 흔들림 없이 공감하고 존경하는 대상은 로버트 오언이었다.

책의 제목인 '거대한 전환'이란 1930~40년대의 거대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가로질러 근대 세계에 일어난 것을 의미하며, 폴라니는 바로 경제적 자유주의(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죽음을 말하고자 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경제적 자유주의(자기조정 시장경제)는 200년간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았다. 경제 현상들이란 사회 현상의 특정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 최초로 그것을 사회에서 분리하여 그 자체로 별개의 체제를 구성했고, 오히려 나머지 사회적인 것 전체가 그 별개의 경제 체제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가 탈사회화된 것인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온 세상은 이렇게 탈사회화된 경제를 재사회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이 '거대한 전환'은 자유주의적 경제 이데올로기에 빛을 부여한 예전의 전환을 거꾸로 뒤집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p.61 루이 뒤몽의 프랑스어판 서문)

이처럼 폴라니의 독창성의 원천은, "사회 전체 체제와 그 일부인 경제 체제"라는 관점에서 근대 사회의 자유 경제를 비근대 사회에 비추어 그리고 대립시켜서 고찰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거대한 전환> 제2부 '시장 경제의 흥망'의 제3장(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 5장(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에서 다루고 있다.

제2부의 제6장(자기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토지, 화폐)부터 제10장(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에서는 자기조정 시장경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그리고 경제적 자유주의가 인간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분석하면서 '사회'를 재발견하게 된다.
폴라니는 제6장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자기조정 시장경제)의 핵심 요소를 자유로운 노동 시장과 자유무역, 그리고 금본위제라고 분석했고, 이러한 자기조정 통화 매커니즘의 교리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개되었으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해낸다. 
제7장에서는 1795년 영국의 스피넘랜드법에 대해 다루는데, 스피넘랜드법은 인간의 삶이자 생존, 그리고 존재였던 노동이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본가들과 봉건 기득권자들이 충돌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요한 폴라니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제3부 '사회의 자기보호'는 크게 두 가지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제11장(인간, 자연, 생산조직)에서 제13장(자유주의 고래의 탄생 2)까지는 경제적 자유주의,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 교리가 탄생하는 과정과 특징을 다룬다.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교리는 실제로 이해집단의 폭력과 국가의 개입으로 사회체제에 강제로 구현되었으며, 구현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와 사회의 단결과 연대가 붕괴되어 갔다.
제14장(시장과 인간)에서 제18장(체제 붕괴의 긴장들)에서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망가뜨리는 인간과 사회를 보호하려는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준다. 시장경제의 자기조정 기능은 스스로에 의해, 그리고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폴라리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서구사회의 모습에서 '체제 붕괴의 긴장들'을 목격한다. 결국 최저임금 제도나 노동조합 제도, 사회복지나 단계적 누진세와 같은 정책들이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인 것이며, 나아가 중앙은행 설립이나 금본위제 폐지,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파시즘과 사회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은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자멸 또는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부 '진행 중인 전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에서 '진행 중인 전환'을 다루고 있다.
제19장(인민 정부와 시장경제)에서는 1920년대 들어 마침내 국제 체제가 무너지게 되자 여러 국가에서 인민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대부분의 인민 정부 역시 자유무역과 금본위제라는 시장 경제의 근본적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파시스트들이나 부르주아지에게 정권을 빼앗기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제20장(사회 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국가에서 어떻게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지, 보호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되는지, 러시아가 왜 일국 사회주의로 변해가는지 설명해준다.
제21장(복합사회에서의 자유)에서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 이후 시장 유토피아를 벗어던지게 되면 맞이하게 될 새로운 사회 체제를 '복합사회'라고 규정하면서,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할 자유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폴라니의 결론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사회 실재의 현실을 불평 없이 묵묵히 발아들인 이상, 인간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불의와 비자유라면 모조리 제거해내고 말겠다는 그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인간이 그러한 스스로의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이것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제시한지 70년이 지난 현재 시점의 인류 사회는 폴라니의 긍정적 전망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 경제위기와 빈부격차, 그리고 만성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과 초국적 금융자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채 ‘시장의 무제한적 자유’를 선동하고 있고, 정부의 규제를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전세계의 사회 보호운동을 매도하며 탄압하고 있다. 그 결과 21세 인류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지적하다시피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서구사회에서 보여졌던 극심한 빈부격차와 소득격차가 확대로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가 그렇다고 해서 폴라니의 통찰력과 해결방향이 틀리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지금이라도 전세계의 정치가와 학자들이 폴라니의 분석과 해결방향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돈’이 아닌 ‘사람’과 ‘사회’를 보호하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거대한 전환>에 대한 각 장별 세부적인 공부 내역은 링크 http://blog.daum.net/hy2oxy/8692142 를 통해 참조할 수 있다.

- 인상적인 문장 -

"파시즘은 베르사이유 조약과 상관이 없는 만큼이나 제1차 세계대전과도 별 상관이 없으며, 이탈리아인의 기질 따위만큼이나 독일의 융커 군사주의와도 별 상관이 없다.
파시스트 운동은 불가리아와 같은 패전국에서도 나타났고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승전국에도 나타났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와 같은 북쪽 기질의 나라에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같은 남쪽 기질의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와 같은 아리아 인종의 나라들에서도, 헝가리, 팔레스타인, 일본과 같은 비아리아 인종의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포르투칼과 같은 가톨릭 전통의 나라들에서도 네덜란드와 같은 개신교 전통의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프러시아와 같은 군사적 전통의 나라에서도 오스트리아와 같은 문민적 전통의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프랑스와 같은 오래된 문화에서도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새로운 문화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어떤 나라에서든 일단 파시즘이 출현할 만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적이건 문화적이건 민족적 전통이건 그것의 출현을 막아주는 종류의 배경이란 사실상 있을 수 없었다."

"1917~23의 기간 동안 각국 정부는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따금씩 파시즘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시장 체제를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데에는 법과 질서만 회복되면 충분했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아직 충분히 전개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24~29년 동안 ?毓? 체제의 회복이 확고해진 것으로 보였기에, 파시즘은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30년 이후 시장경제가 전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단 몇 년 만에 파시즘은 전 세계적인 권력이 되었다."

"19세기 문명은 외부 혹은 내부의 야만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그 문명의 생명력을 잠식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황폐화도 아니었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나 파시스트 하류 중산 계급의 반란도 아니었다. 그것이 붕괴한 것은 이윤율의 저하라든가 과소소비 혹은 과잉 생산 같은 이른바 경제 법칙 같은 것들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이 해체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원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기조정 시장의 활동으로 사회가 절멸당하지 않기 위해 취해진 여러 조치들이었다."

"절대적인 강제 따위는 결단코 사라져야 한다. 모든 '반대자들'은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며,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선택지가 주어져야만 한다. 그리하여 순응을 거부할 권리는 자유로운 사회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될 것이다."

"파시즘의 승리를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계획, 통제, 규제를 사용하는 모든 개혁을 철저히 가로막은 데 원인이 있다. 파시즘으로 인해 자유가 완전히 좌절을 맞게 된 것은 사실 자유주의 철학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시장 유토피아를 벗어던지게 되면 우리는 사회 실재의 현실이라는 것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사회 실재의 현실이야말로 자유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파시즘 및 사회주의를 다른 편으로 갈라놓는 구분선이다. 그리고 파시즘과 사회주의 사이의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문제이다. 심지어 파시즘과 사회주의 양쪽이 동일한 경제적 논리를 구사하는 지점에서마저도 각각이 체현하고 있는 원리는 다른 정도가 아니라 실로 상극이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둘이 갈라지는 궁극적인 지점은 또 다시 자유의 문제이다."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갈라서는 지점은, 사회 실재의 현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비추어보았을 때 자유의 이상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파시스트들은 스스로를 체념하여 자유를 포기하고 권력을 사회 실재의 현실로서 찬양하게 된다. 반면 사회주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하는 것은 파시스트들과 동일하지만,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한 주장을 드높이 들어올린다."

[ 2015년 3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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